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돼, 19년째 복역 중인 이른바 ‘송정 저수지 추락 사건’의 당사자 장동오씨가 재심 법정 앞에 한발 더 다가섰다. 지난해 “재심을 열어야 한다”라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검찰이 낸 항고를 고등법원이 기각했다. 장씨는 2021년 12월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다”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앞서 검찰은 원심 격인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리 과정에서 “재심을 열어 달라”는 장동오씨 측 주장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다가, 재심을 개시해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오자 뒤늦게 항고했다. 광주고등법원 심리 중에는 의견서를 한 차례도 내지 않았다. 형식적 불복을 통해 시간만 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고등법원은 3월29일 '송정 저수지 사건'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검찰이 낸 항고를 기각했다. ⓒ시사IN 조남진
광주고등법원은 3월29일 '송정 저수지 사건'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검찰이 낸 항고를 기각했다. ⓒ시사IN 조남진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박혜선)은 3월29일 장동오씨에 대한 광주지법 해남지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부당하다며 검찰이 제기한 항고를 기각했다. 장동오씨 측 주장과 해남지원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수사 경찰관들의 위법 행위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 검사의 항고는 이유 없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재항고를 하지 않으면 장동오씨는 사건 발생 19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17년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다.

송정 저수지 추락 사건은 2003년 7월9일 장동오씨와 아내가 탄 차량이 저수지에 추락해, 아내는 사망하고 장씨만 빠져나왔던 사건이다(〈시사IN〉 제773호 ‘사건인가 사고인가 19년 전 그날의 진실’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47910). 경찰은 장씨 부부가 가입해둔 여러 건의 보험 내역을 확인하고 계획 살인을 의심했다. 경찰 의심이 시작된 직후 장동오씨 자녀 삼 남매도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고의로 아내를 살해한 증거를 찾지 못해,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장씨를 처음 불러 조사한 날 그를 긴급체포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해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씨는 곧바로 항소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2005년 9월28일 대법원도 장씨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건은 2017년 충남 서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던 전우상 전 경감이 다시 조사를 시작하면서 재조명됐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등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전문가들과 사건을 재검증하고, 전우상 전 경감과 과거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던 막내딸 장수경씨를 만나 사건을 되짚었다. 박 변호사는 2021년 12월31일 장동오씨를 대리해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는 2022년 3월부터 7월까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 심문을 진행했다. 통상 서면으로 진행되지만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측과 검찰을 법정으로 불러 직접 의견을 들었다. 장씨 측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 심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증거들을 제출했다. 과거 수사 경찰관들이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압수수색을 절차에 따라 진행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확인됐다. 현장 검증조서, 사체 부검 감정서, 보험 가입 내역 등에서 발견된 사건 전반의 허점이 재심 사유로 법원에 제출됐다. 저수지에 추락한 차량을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재심 개시 결정 여부 심리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 결과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가 작성한 감정서는 살해의 직접 증거가 없는 이 사건 유죄 판단의 핵심 간접증거였다.

2003년 7월10일 저수지에 추락한 화물차가 인양되고 있다. ⓒ진도경찰서 수사 기록
2003년 7월10일 저수지에 추락한 화물차가 인양되고 있다. ⓒ진도경찰서 수사 기록

재심 개시 결정 여부를 심리한 해남지원 재판부는 과거 수사 경찰의 책임을 먼저 물었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관련 서류를 사후에 작성하고 △결재란에 실제 수사 책임자가 아닌, 당시에 근무하지도 않은 다른 경찰관의 도장을 찍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롭게 발견됐고,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죄와 허위공문서작성죄, 허위작성공문서행사죄를 범한 사실이 인정된다. 다른 재심 청구 사유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수사 경찰 위법행위만으로도) 이 사건 재심 청구는 이유 있다”라며 2022년 9월6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시사IN〉 제781호 ‘19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다시 재판받는다’ https://www.sisain.co.kr/48445 기사 참조). 검찰은 해남지원 판단에 불복해 이틀 뒤인 9월8일 즉시 항고했다.

공을 넘겨받은 광주고등법원은 해남지원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수사 경찰관들의 위법행위와 고의가 새롭고 명백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남지원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경찰 위법행위만으로도 재심을 열 이유가 충분한 만큼, 다른 사유는 살펴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형식적 불복, 재항고 여부 주목

장동오씨에 대한 재심이 언제 개시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검찰이 대법원에 재항고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시사IN〉이 확인한 재판 서류와 대법원 사건 검색 등을 종합하면, 검찰은 앞선 재심 개시 여부 결정 심리 과정에서 장동오씨 측 주장에 대해 적극 반박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과거 수사기관의 위법을 입증할 증언과 증거, 전문가 감정서가 공개되고 실물로 제출됐으나 검찰은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았다. 별도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남지원 재심 개시 결정문에는 검찰 측 의견에 대한 재판부 설명이 거의 없다.

검찰은 해남지원 판단이 나오자 뒤늦게 “법원 결정이 부당하다”라며 항고했다. 그러나 광주고등법원에 항고한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장동오씨 측 주장, 또는 해남지원 판단에 반박하는 의견서 등은 이번에도 내지 않았다. 검찰이 광주고등법원에 제출한 서류는 7쪽 분량의 항고이유서가 유일하다. 항고이유서에서도 표지와 해남지원 재심 개시 결정문을 인용한 부분을 빼면 검찰 주장은 1~2쪽 분량에 불과하다.

박준영 변호사는 “검사의 항고 이유는 새로운 증거들의 의미와 가치, 과거 유죄 판단 근거가 된 간접 증거들의 모순을 반영하지 않은 ‘형식적 불복 주장’이었다. 재심 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검사의 형식적 불복 절차로 재판이 지연되고 인신구속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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