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사회화가 아주 더디게 진행된 듯싶다. 늦게까지 이불에 오줌을 지렸고, 유년기에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중학교 때 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대학도 또래보다 늦게 입학했고, 군대도 늦게 갔으며, 대학원도 재수를 했는가 하면, 자퇴를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옮겨 졸업했다. 이런 모호한 인간이 그래도 남보다 조금 뛰어났던 일은 ‘언어’를 매만지는 능력이었다. 일찍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과 일기 쓰기를 즐겼는데,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문학 평론가랍시고 살고 있는 삶의 원형이 된 듯하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첫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요즘 내가 즐겨 읽는 책은 그래서 ‘아기’와 관련한 것이다. 보리스 시륄니크의 〈관계〉라는 책도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읽게 됐는데, 읽다보니 골똘해질 일이 많아졌다. 이 책은 ‘사랑과 애착의 자연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가 신경정신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 까닭에 정서적 ‘애착’과 ‘분리’에 따른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때로는 비교동물학적으로, 때로는 인간적으로 잘 해명하고 있다.

정체성을 다루는 모든 심리학 저작은 아기와 부모의 초기 애착 과정과 이로부터 분리되어 사회화되는 메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아기와 어머니 간의 근원적 친밀성이 자아 안정성의 근본이고,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아기가 사회화의 기본 형식을 터득한다. ‘애착’도 중요하지만 부모와의 정서적 ‘분리’에 따른 ‘자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책들과 시각이 비슷하다.

정작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실패한 아기일지라도, ‘말(언어)’을 배움으로써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못 놀라운 통찰이었다. 저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가공해내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역사를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결정론적인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은 꿈꾼 만큼만 살 수 있다. 내가 말을 배움으로써 어둡고 고통스러운 자기 모멸의 터널을 벗어난 것처럼, 상처로 충만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멋진 어른이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육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상처에 대한 사회문화적 보상 체계다. 그러니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말과 같다는 진술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기자명 이명원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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