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와넛 동쪽 지역에서 야간 매복 전투를 통해 탈레반 13명을 사살하고 소총 10정과 로켓추진 수류탄 발사대, 탄창 30개 등 군수물자를 획득했다. 미군은 이 전리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리품은 모두 미군이 아프간 군인에게 지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탈레반이 사용했던 탄창 중 17개에서 ‘WOLF’와 ‘bxn’이라고 찍힌 탄피가 나왔다. WOLF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울프퍼포먼스총탄’ 회사가 제작한 것이다. 이 회사는 중개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군대 및 경찰에 총탄을 공급했다. bxn은 냉전 때 체코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낸 실탄으로, 2004년 이후 체코 정부가 잔여 총탄을 아프가니스탄에 기증했다. 또한 마을 은닉처에서 헝가리제 AMD-65 소총 70여 정이 발견됐는데, 이 소총도 미국이 아프간 경찰에게 지급한 것이다. 전투 당시 미군 9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해 현장에 있던 미군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미군이 공급한 무기를 탈레반이 미군을 사살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세계 각국의 무기로 무장했다. 위는 지난 5월 아프간 군대가 칸다하르 지역의 한 마을에서 찾아낸 탈레반의 무기.
어떻게 미군이 보급한 무기가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을까. 그것은 아프간 군대와 경찰의 극심한 부패 때문이다. 당시 실탄을 습득한 부대의 지휘관인 제임스 C. 하우웰 대령은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의 부패가 심각하다. 이들을 통해 실탄이 적에게 흘러갔으리라 추정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불 타임스’의 자히르 기자는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은 고위 간부에서 하급 군인까지 조직적으로 짜고 무기를 빼돌린다. 이들에게 보급품은 눈먼 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걸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다”라고 전한다.

1980년대 CIA가 탈레반 무장시켜

이처럼 아프간 전쟁 개전 이후 8년 동안  탈레반에게 흘러 들어간 미군의 무기 수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의회 회계감사국(GAO)은 올해 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보급한 무기 24만2000점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8만7000점이 관리 부실로 추적이 불가하며, 이 가운데 자동소총·유탄발사기·야간투시경 등 상당수가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수중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하원 국가안보·외교문제 소위원회 존 티어니 위원장은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이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구입한 무기에 의해 죽는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라며 황당해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거의 8년을 끄는 가운데 탈레반의 전투력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탈레반 하면 으레 터번이나 두르고 바위산을 뛰어다니며 재래식 무기로 싸우는 원시적 게릴라를 상상하기 쉽다. 그런 식이라면 벌써 일망타진하고도 남았을 그들이 어떻게 미군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과시하는 걸까. 이 전투력의 기본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보급되는 무기에 있다.

탈레반이 사용하는 무기는 198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탈레반에게 제공했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바주카포, 로켓포, 견착식 스팅어 미사일, 대포, 탄약 등 모두 21억7000만 파운드(약 4조3400억원) 상당에 이르는 무기를 제공했다. 이 무기들은 파키스탄에서 노새에 실려 산맥을 가로질러 아프간 군벌에 전달됐다. 소련군이 패퇴한 이후 이들은 이 무기로 미군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또한 1982년 CIA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게릴라 세력인 무자헤딘을 AK-47 자동소총(칼라쉬니코프)으로 무장시킬 것을 결정하고 파키스탄을 통해 40만 정을 아프가니스탄에 공급했다. AK-47은 기존 AK 소총보다 훨씬 정확하고 유효 사정거리가 길면서도 가벼워 누구나 간단하게 작동할 수 있는 소총으로 러시아 장교 미하일 칼라쉬니코프가 개발한 러시아 최고 히트 상품인데, 지금은 탈레반의 반미 무장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소총이다. 세월이 흘러 미국은 자신들이 30여 년 전에 제공한 무기로 무장한 탈레반과 맞서게 된 것이다.

마약 생산·판매와 걸프 국가들의 원조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탈레반은 무기상의 주요 고객이다. 위는 탈레반의 무기·마약을 수색하는 나토군과 아프간군.
미군의 보급품으로 탈레반이 미군을 공격하는 현실에 대해 미국 정부는 난감해한다. 미국 행정부가 최근 미국 의회에 제출한 대외무기판매(FMS)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미국 무기에 대한 예상 구매 순위에서 아프가니스탄이 1위(63억5800만 달러)를 차지해 아프간 정부는 재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무기 수입에 사용하고 있고, 그렇게 구입한 무기가 탈레반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탈레반이 사용하는 무기는 미국에서 온 것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무기가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 들어온다. 마약 생산과 걸프 국가들의 원조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탈레반은 세계 무기상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존재이다. 미국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탈레반에게 필요한 무기 수효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 많다. 이 수효를 돈으로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무기상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분위기에 이란·러시아·중국까지 편승하고 있다.

2007년 영국의 타임스는 이란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이 재집권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아프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해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아프간 서부 국경경찰 책임자인 라흐마툴라 사피 대령이 이란이 아프간의 적인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라고 보도했으며, 아프간 소식통도 이란 마약 밀수업자를 통해 아프간 남부 지역에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제보했다. 이후 미국의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차관은 현재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 무기를 넘겨주고 있다며, 이 같은 이란의 행동은 중대한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일부 이란제 무기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공급업자, 이란은 유통업자?

이란에서 탈레반이 공급받은 대표 무기는 철갑탄으로 폭발물형태발사체(EFP)라고도 불린다. 기존 무기로는 파괴되지 않았던 미군의 장갑차를 뚫을 수 있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에게 ‘공포의 무기’라 불린다. 그런데 이 철갑탄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미군 대변인 마크 폭스 제독(해군 소장)은 “아프간에서 중국산 미사일과 철갑탄을 발견했다. 탈레반에서 발견된 이 철갑탄의 공급원은 이란이고, 이란은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중간 유통업자이고 실제 공급자는 중국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철갑탄뿐 아니라 다른 중국제 최첨단 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는 구입처를 밝히지 않고 ‘한층 정교한 신형 무기를 구입했다’고 언론에 자랑한 적이 있다. 그해 9월 아프간 주둔 영국군이 탈레반과 5~6차례 교전을 벌인 뒤 포획한 무기를 확인하면서 ‘한층 정교한 신형 무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아프간 정부 관리들은 그 무기가 중국 육군이 사용하는 HN-5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지뢰, 로켓추진 총유탄(RPG) 등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황급히 그 사실을 부인했으나 탈레반이 사용하는 중국산 무기 대부분이 일련번호가 삭제돼 유통경로를 추적하기 어렵게 돼 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직접 개입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이 최첨단 무기들을 생산할 당시부터 탈레반에게 수출할 것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타임스는 또한 다른 소화기는 물론 저격용 소총과 탄약 수백만 발, RPG, 도로변 폭발물 제작용 물품 등 일부 무기는 중국에서 항공편으로 직접 아프가니스탄으로 수송되고 있다고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프간 데일리’의 편집장 아물라 씨는 “탈레반은 중국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인 HN-5도 보유하고 있다. 가끔 탈레반에 의해 저격되어 떨어지는 연합군의 헬기나 수송기는 이 휴대용 대공 미사일의 활약에 의한 것이다. 값싸고 수송까지 서비스해주는 중국의 무기를 탈레반이 애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거듭되는 중국 정부의 부인으로 지금까지도 진실 공방이 진행 중이지만, 아프간에서 탈레반은 여전히 중국제 무기를 사용한다.

중국제 무기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연합군과 미군이 탈레반 소탕 작전을 벌이면서 속속 밝혀지는 탈레반 무기의 출처는 그야말로 글로벌하다. 영국제 303 리엔필드, 체코제 ZB-26 경기관총소총, 러시아제 RPG-7 등 그 옛날 골동품부터 최신 중국제 첨단 무기, 미군 보급품까지 탈레반은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다. 아프간 ‘아리아나 텔레비전’ 샤리프 보도국장은 “탈레반은 그 어떤 무기든지 가져다만 주면 자동으로 그 사용법을 익힌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장난감 대신 총을 가지고 놀며 컸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무기도 필요한 이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든지 널려 있다. 이제 그들에게 탈레반은 매우 중요한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무리 탈레반을 ‘박멸’하려 해도 쉽지 않은 것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아프가니스탄 상황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갈수록 첩첩 산중인 탈레반과의 힘겨운 싸움 속에서 미군 병사들의 희생은 늘어만 가고 그들을 죽이는 무기는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공급되고 있다.

※이번 호로 ‘김영미의 탈레반 리포트’ 연재를 마치고 다음 호부터는 ‘김영미의 오바마와 아프간’을 연재합니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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