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구입 보조비 4000만원, 집 청소비 1000만원, 가구 구입비 1000만원, 정원 관리비 800만원, 연못 오리집 330만원, 수영장 청소비 60만원, 가정부 고용비 2900만원, 애완견 사료비 9000원, 집안 전구 교체비 20만원, 킷캣 초콜릿 700원, 탬폰 5000원 등. 모두가 영국 국회의원이라면 합법적으로 의회에 청구할 수 있는 비용이다. 영국 국회의원은 연간 최대 4800만원의 ‘제2가구’ 주택수당으로 집세는 물론 모기지 이자, 주택 수리비,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과 텔레비전 시청료, 가구 구입비, 식음료 비용까지 청구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수증 없이 최대 50만원까지 청구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 주택수당은 본래 지역구가 런던이 아닌 의원에게 의회 회기 동안 런던에 머물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의회 규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러 국회의원이 가정부 고용, 초콜릿·변기 뚜껑 등을 구입하는 데 세금을 써온 것이다. 이로써 2008년 한 해 영국 하원의원 646명이 청구한 비용 1860억원, 의원 1인당 2억6000만원이 혈세로 지불된 점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5월 초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국회의원 비용청구 내역 사본을 정부 관리로부터 받아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두 달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데일리 텔레그래프뿐 아니라 영국 전역의 신문 및 뉴스 정치란은 연일 국회의원의 비용 문제로 매일 도배하고 있다.

의원이 청구한 ‘모든 영수증’ 공개 예정

특히 지난 6월 이후 일부 의원의 비용 청구 내역이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식 공개되면서 자기 지역구 의원이 무엇에 얼마나 쓰고 청구했는지 일반 시민이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 궁금증은 즉각 분노와 실망으로 연결되고 있다. 시민단체 및 언론인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정보공개법으로 인해 7월 중에는 국회의원이 청구한 모든 영수증이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 선거자료센터 콜린 롤링스 소장은 5월24일 타임스를 통해, 하원의원 646명 중 325명이 이번 스캔들로 의원직을 그만두거나 유권자에 의해 축출당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비용 공개를 적극 반대했던 하원의장 마이클 마틴은 지난 5월19일 하원 역사상 314년 만에 동료 의원 및 시민의 반대에 부닥쳐 의장직에서 도중하차했다.

국회의원 비용 공개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최근 여론조사 결과 집권 노동당 지지도는 22%, 보수 야당은 41%를 보였다. 영국 분석가들은 이 국회의원 비용 공개 문제를 전통적으로 친보수 성향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보수 야당이 합작한 정치적 승리로 읽기도 한다. 물론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정치적 모략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토니 블레어 총리 때부터 시작된 노동당의 서민 중심 정체성의 훼손이 근본 문제인 듯하다. 블레어 이후 영국 노동당은 서민 중심 정당이 아닌 중산층 이상을 겨냥한 신자유주의적 중도실용 정책을 실시했다. 교육, 복지, 이라크·아프간 파병, 대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보수당과 다르다고 할 만한 정책을 추진한 것이 하나도 없다. 고든 브라운 총리도 블레어와 다를 바 없다.

서민 중심 노동당의 정체성 상실이 이번 국회의원 비용 공개를 통해 드러난 예를 하나 보자. 선박 노동자 출신 골수 노동당 간부이자 전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존 프레스콧은 자신에게 달걀을 던진 시민에게 그대로 달려가 주먹을 날려 상류층 국회의원과는 달리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의 정치인으로 노동자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번 국회의원 비용 공개에서 프레스콧의 청구 내역에 문제가 많았다. 그는 영국 상류층의 튜더식 가옥으로 외관을 변경하기 위해 ‘원조 흉내 내기식’ 목재를 구입하는 데 60만원을 청구하고, 또 1년에 두 번이나 변기 뚜껑을 교체하는 데 국민 세금을 쓴 것이 드러났다.

보수 정당이 오히려 ‘서민 정치’

오히려 부자들 정당으로 알려진 보수당의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 국회의원 비용 공개 이후 비판 대상이 된 국회의원에 대해 의원직에서 물러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비용 공개로 손해를 더 많이 볼 것 같았던 당이 보수당인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반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보공개법에 따라 국회의원 및 공무원의 업무추진비·접대비·언론홍보비·해외출장비 등이 영수증 내역과 함께 영국처럼 낱낱이 공개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우리는 ‘제2가구’ 주택수당 같은 제도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2008년 기준 국회의원 세비에는 수당 520만원 이외에도 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상여금·복리후생비 따위가 포함되어 있다. 영수증 같은 것은 필요도 없고 쓰지 않아도 당연히 받는 것이 국회의원 세비이다. 1998년 이래로 91.4%가 인상되었고(참고로 경총 일반 기업 임금인상률은 52.1%), 2007년에서 2008년 연간 7.5%가 인상되는 등 최근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수당 등에 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연봉 5300만원의 5급 비서관을 한 명 늘리기까지 했다. 재적 국회의원이 299명이니 연간 177억원의 국민 세금이 더 쓰이게 된 셈이다.

그러면 한국의 정보공개법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해 말 정부와 언론, 시민단체가 합의했던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현재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행정안전부의 소극적 태도로 폐기 상태인 데다, 국정원이 주도하는 비밀보호법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정보공개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에서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전환되어 그 권한이 축소되었고, 현재 정보 공개 업무는 행정안전부 제도정책관 아래 있는 제도총괄과에서 담당한다. 이 업무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행정자치부 행정능률과에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행정자치부 공개행정과에서 담당했던 것을 비교하면 그 업무의 성격 변화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는 행정능률 차원에서, 노무현 정부는 정부혁신 기조 아래 독자 행정업무로서 정보 공개를 담당했던 것이다. 현 정부의 행정안전부 제도총괄과는 정보 공개 이외에도 각종 제안업무를 담당한다.

영국 국민은 집권 노동당이 서민 정치를 하지 않고 국민의 세금을 개인 용도로 마구 쓴다는 것으로 화가 나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러한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는 영국 민주주의가 부러울 따름이다.

기자명 케임브리지·송지영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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