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찰 풍선은 2월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 ⓒREUTERS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미국과 중국이 최근 미국 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용 풍선 문제로 또다시 난기류에 휩싸였다. 미국은 정상회담 후속타로 준비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을 전격 취소했다. 문제의 풍선이 수집한 정보가 미국 내 민감한 군사기지에 관한 내용으로 판명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 미·중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높이 60m, 무게 907㎏으로 추정되는 문제의 풍선은 2월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약 2만m 상공에서 미국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격추됐다. 최초 발견된 지 약 일주일 만이다. 현재 미국 당국은 해상에 추락한 잔해물을 수거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 국방부는 해당 풍선이 1월28일 알래스카 서쪽 끝에 있는 알류샨 열도에 진입한 직후부터 계속 추적해왔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쉬쉬했다. 그러다 2월1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격납고가 대거 운집해 있는 서북부 몬태나주 상공에서 한 주민이 이를 발견했다.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결국 국방부도 이를 시인하는 한편 풍선 격추 방안을 검토했다. 국방부는 약 2000명에 달하는 주민이 파편으로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류했고, 풍선이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의 상공에 진입하자 격추시켰다.

중국 정부는 해당 풍선이 ‘기상관측용’이며 통제력을 상실해 미국 영공에 표류했다고 해명했지만, 미국은 해당 풍선이 ‘정찰용’임을 100% 확신하는 분위기다. 국방부가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뿐이지 전임 트럼프 행정부 이후 지금까지 텍사스·플로리다·하와이·괌 등에서 최소 5차례 풍선을 통한 중국의 정찰 행위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문제의 풍선을 중국의 정찰용 풍선으로 단정하지 못한 채 ‘미확인 공중비행체’로만 규정하고 조용히 덮어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국방부와 정보 당국은 면밀한 재검토를 거쳐 지금껏 적발한 ‘미확인 공중비행체’를 중국의 정찰 풍선으로 재분류했다. 그러던 중에 종전의 풍선보다 더 크고 더 느리게 비행하는 정찰 풍선이 적발된 것이다.

문제는 미국 영공에 진입하는 순간,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 의해 100% 적발될 것이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중국이 냉전 시절에나 나올 법한 초대형 풍선을 무슨 목적으로, 그것도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띄웠느냐 하는 점이다. 통상 첩보위성과 달리 최첨단 센서가 부착된 정찰 풍선은 특정 상공에서 장시간 머무르며 우주에선 탐지할 수 없는 각종 무선통신 및 전파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문제의 풍선이 주민에 의해 발견된 몬태나주는 ICBM을 보관하는 격납고가 무려 150개나 배치된 민감한 군사기밀 지역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통신 감청을 관할하는 국가안보국(NSA)과 핵무기를 관할하는 전략사령부가 몬태나주처럼 핵무기가 배치된 지역과의 교신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바로 이게 대외 군사정보 해킹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공안국의 타깃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관계의 또 다른 변수, 공화당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적발될 가능성이 높은 이런 도발을 과연 중국 지도부가 허용했겠느냐 하는 점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안보학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중국 전문가인 테일러 프레이블은 〈뉴욕타임스〉에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감안할 때 중국 지도부가 문제의 풍선을 미리 파악했다면 미국으로 띄우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국방부 관리를 지낸 안보 전문가 드루 톰슨도 “해당 풍선은 중국의 핵무기, 재래식 미사일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로켓 부대가 풍선 적발 시 초래될 정치적·외교적 파장을 모른 채 띄웠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실제 해당 부대는 2011년에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J20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을 실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후진타오 주석은 사전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났다. ⓒAP Photo

하지만 후진타오 주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시진핑 주석을 건너뛴 채 중국 군부가 과연 이런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3선 연임에 성공한 뒤 ‘제로 코로나’ 정책 여파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회복시키는 한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절치부심해왔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대미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고 있던 차였다. 따라서 시 주석이 정찰용 풍선의 미국행을 알고도 허용했다면 중대한 판단 착오이자 미·중 관계 개선의 기회를 스스로 반납한 셈이다.

다만, 중국 정부의 방만한 관료 조직을 감안할 때 이번처럼 정찰 풍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 나아가 군부 등 강경파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 외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는 “중국 군부 혹은 중국 지도부 내 강경파가 타이완 문제를 포함해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분야를 조율하려는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썼다.

미국과 중국 모두 정찰 풍선 건으로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듯하다. 미국 국무부는 성명에서 “중국이 미국의 주권과 국제법을 침해한 상황에서 블링컨 장관이 당장 방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풍선의 미국 영공 침입 건을 사실상 사과했다. 미국의 풍선 격추를 ‘과도한 반응’이라고 비난했지만 보복을 암시하는 언행은 삼가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오판과 오해, 상호 신뢰를 해칠 수 있는 길을 피하기 위해 중국과 적절히 협력할 것을 희망한다”라며 온건한 성명을 냈다.

미·중 관계에서 공화당의 태도도 변수다. 공화당은 정찰 풍선 건을 계기로 바이든 행정부에 강경책을 택하도록 압박할 게 확실하다. 케빈 매카시 신임 하원의장이 조만간 타이완을 방문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매카시 의장이 펠로시 전임 의장처럼 타이완 방문을 강행한다면, 미·중 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치달을 게 분명하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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