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미국에서는 충격적인 비디오 영상 하나가 방송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는 와중에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탈레반에 납치된 미군 병사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였다. 미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사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해가는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다. 7월14일 촬영돼 18일 탈레반 웹사이트에 올려진 28분짜리 비디오에서 삭발하고 수염을 기른 미군 병사는 흐느끼는 목소리와 떨리는 표정으로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 고향을 말했고 납치범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람은 이 병사의 이름과 사회보장번호가 찍힌 군 인식표를 공개했다.

탈레반에게 납치된 미군 병사 보비 버그달 이병.
이 병사는 알래스카 기지 포트 리처드슨에 있는 미국 보병 연대의 보비 버그달 이병(23)으로, 6월30일 아프간 팍티카 주에서 실종된 병사이며 그가 아이다호 주 케첨 출신이라고 미국 국방부가 공식 확인했다. 사실 미군 병사가 탈레반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7월3일 BBC가 처음 보도한 후 공공연하게 언론에서 거론되었다. 하지만 미군 측에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탈레반이 유포한 뜬소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날 탈레반 웹사이트에 공개된 대로 탈레반의 미군 병사 납치는 사실로 밝혀졌다. 그동안 이라크에서도 미군이 종종 납치된 사례가 있었고 그 끝은 항상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으로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이번 미군 병사의 납치도 희망을 갖기가 힘든 상황이기에 미국 사회가 초긴장 상태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6월부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대적으로 탈레반 소탕 작전을 벌이는 상태라 실종된 미군의 모습을 담은 이 비디오는 미국의 테러 작전에 큰 타격을 주었다.

‘버그달 이병 구하기’ 신중하게 진행

어떻게 미군 병사가 탈레반에게 납치될 수 있을까. 동영상 속 버그달 이병은 자신이 정찰 중 처져 납치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 측은 그가 아프간 사람 3인과 기지 밖으로 무단 이탈해서 납치되었다고 공식 발표했고, 탈레반은 술에 취한 미군 병사를 잡아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야기가 다 다르지만 미군 병사를 납치할 정도면 탈레반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무장한 미군을 납치하는 것은 탈레반의 납치 기술이 상당함을 의미한다. 아프간 톨로 TV 사마르 기자는 “그동안 숱하게 납치 사건을 벌여서 이득을 챙겨온 탈레반이다. 한국군을 철군시키고, 포로 협상을 통해 잡혀간 탈레반 지도자를 빼내오기도 하고, 중간에서 협상금까지 받아낼 정도로 그들은 납치에 능수능란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군 병사는 그들에게 대어이다”라고 말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
아프간 재증파에 따른 부정적인 여론에 시달려온 미국 정부는 이 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고, 파장을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프간 주둔 미군 대변인 그레그 줄리언 대령은 “우리는 이 비디오를 사용하고 수감자에게 공적 수치심을 일으킨 것을 비난한다. 이 병사를 안전하게 귀환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가 어디 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서 그를 빼내오도록 주력하겠다”라고 했다.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 ‘버그달 일병 구하기’를 신중하게 진행한다. 이 병사가 잡힌 곳은 탈레반 소탕 작전이 한창 진행 중인 아프간 동부 지역이다. 7월 초 마우라비 상긴 탈레반 사령관의 대변인 압둘라 잘랄리는 A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억류 중인 미군이 건강하다면서 미군이 가즈니 주 지로와 팍티카 지구에 대한 공습을 멈추지 않으면 그를 처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후 미군 대변인 엘리자베스 마티아스 대위는 탈레반 측의 위협에 대해 언급을 피했으나 “최근 그 지역에 폭격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언론에 말했다. 미군 처지에서 한발 물러선 듯한 발언이다. 아직은 살아 있는 자국 병사를 살려보고자 최선을 다하는 미군이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버그달 이병의 고향에서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동영상에서 버그달 이병은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 포로가 돼서 매우 불안하다. 난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도 있고, 미국에 정말로 좋은 가족이 있다. 그러나 다시 이들을 보지 못할 것 같고, 다시 그들을 안아줄 기회가 없을 것 같다”라며 불안해했다. 그의 고향 아이다호 주 케첨에는 버그달 이병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촛불집회와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살았던 헤일리 마을에는 미국 취재진 100여 명이 장사진을 쳤고, 동네 커피숍과 상점에는 “안전하게 집에 오길”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자”라는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붙었다.

미군 납치 작전 큰 성과 얻어

그의 부모는 7월 초 아들이 탈레반에 납치된 사실을 국무부로부터 통보받았으나 아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봐 지금까지 침묵했다. 취재진과의 만남도 피하고 있다. 가족 대리인으로 나선 월트 펨링 수사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가 납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가족은 아직 침묵을 지킨다. 우리는 서로 그 사실을 존중해서 아무 말 않고 있지만 많이 걱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동네 어귀에 몰려들어 노란 리본을 달고 있으며 자원봉사자 중 한 주민은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가족에게 그를 데려다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우리는 이 젊은이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가족에게 전했다.

이쯤 되면 탈레반의 납치 작전은 무척 성공적으로 보인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과 대적하기보다는 미국의 최대 약점인 ‘가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도 좋고 경찰 국가라는 위신도 미국에게는 중요하겠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미국인에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대 이슈이다.

전쟁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이 부시 대통령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기대에 넘쳤다. 하지만 오바마가 취임 6개월을 지나 미군 2만1000명을 증파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의 아들이 탈레반에 의해 위험에 처했다. 누리꾼은 탈레반을 비난하는 글과 더불어 아프간 파병을 성토하는 글을 버그달 이병 관련 기사마다 덧붙인다. “오바마도 부시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가. 얼마나 더 많은 우리 젊은이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계속하는 한 더 많은 미군 파병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와중에 누구든 제2의 버그달 이병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미국인에게 이번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미국 정부는 버그달 이병 구하기에 매진하면서도 미군 철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위는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대를 정찰하는 미군.
아프간에서도 이 사실은 크게 보도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주요 방송사에서도 버그달 이병의 동영상은 첫 뉴스로 연일 방송된다. 아프간 TV의 나사르 기자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군복을 벗고 아프간 옷을 입은 미군을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고 불쌍하게 보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중장비로 무장하고 무섭게 다니는 모습만 보다가 불쌍한 미군을 보니 오히려 낯설다. 그리고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인도 아니고 미군이기에 탈레반이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카불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리프 씨(56)는 “누군가의 아들이 탈레반의 인질이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나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군이라는 사실이다. 미군은 우리 아프간 사람의 수많은 아들을 한번에 100명 넘게 사살한다. 우리는 수천, 수만의 아들을 잃었지만 미국인에게는 단 한명이다. 이제 미국인도 아이를 잃은 우리 아프간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아프간에 있는 미군 당국은 공식 언급을 피하며 어떻게 ‘버그달 이병 구하기’를 진행하는지 함구하고 있다. 동영상에서 버그달 이병은 “극도로 무섭다. 미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 미국인은 정부를 움직여 파병 미군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힘이 있다. 제발 우리를 집에 보내달라. 이곳에 있는 것은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다”라며 눈물과 함께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를 호소했다. 물론 탈레반이 시키는 대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미군은 미군 철수를 요구한 탈레반의 요구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줄리언 대령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안보를 증진하려는 아프간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아프간 국민이 우리를 원할 때까지 머무르겠다”라고 단언했다. 이미 탈레반 사령관은 미군이 실종 병사를 찾으려고 압력을 가하면 그를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던 터라 앞으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듯하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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