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안철수-박원순은 ‘신기업가 정신’에 대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유로자전거나라의 장백관 대표(45)가 딱 그런 경우다. 유로자전거나라는 여행사지만 그냥 여행사가 아니다. 스스로 표방하기를 ‘유럽 전문 지식 가이드 회사’다. 지식 가이드? 싸지만 감동 없는 단체 여행, 자유롭지만 두려운 개별 여행. 이 둘의 장점을 빼다 만들었다. 안전하면서도 감동 있는 자유 여행! 장 대표는 그 시장을 개척했다. “여행업의 시피유(CPU)는 가이드에 있다”라는 상식에 근거한 결과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지 유학생이나 상인을 ‘알바’로 일시 고용, 보수는 각자 해결. 대개 여행 현장에서 관광객을 통해 요령껏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예정에 없던 옵션 투어, 꼭 들러야 하는 쇼핑센터·식당, 노골적인 팁 요구 등이 횡행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가이드는 정보보다는 유머, 주마간산격 유적지 소개와 사진 찍어주는 인솔자 정도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나라의 가이드는 이 모든 걸 하지 않는다. ‘가이드 투어’라는 전문성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물관 전일 투어’는 자전거나라의 대표 상품이다. 박물관이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샅샅이 훑는다. ‘루브르 투어’ ‘바티칸 투어’ ‘대영박물관 투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지겹지 않나? 공부하러 간 것도 아니고’라고. 이에 대한 장 대표의 답변. “여행 문화가 바뀌었다. 특히 유럽을 찾는 사람들의 지적 욕구는 굉장히 강하다. 쇼핑, 보양 중심의 ‘관광’에서 지식을 얻고 자아를 찾는 ‘여행’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다.” 그런 수요가 자전거나라의 공급과 맞아떨어졌다. 가이드 설명을 듣기 위해 유치원생처럼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도 없다.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신기를 착용하면 동선을 넉넉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이 회사의 가이드는 ‘종일 투어’다. 아침 8시쯤에 만나면 밤 11시 야경 투어까지 책임진다. 지치지 않을까? “몸은 파김치지만 눈은 초롱초롱하다”라는 게 장 대표의 말이다.

자전거나라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어 사용이다. 가이드는 여행자들에게 “한국어를 쓰면 대화가 된다”라고 모국어 사용을 권한다. 무슨 뜻인가? “영어로 ‘익스큐스 미’ 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다. 유럽인이 자존심이 강해서 영어는 비즈니스할 때가 아니면 잘 안 쓴다. 그런데 ‘여보세요’라고 우리말을 쓰면 의외로 상대방이 영어로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관심을 보인다. 모국어를 쓰는 여행자에 대한 존경심도 느껴진다. 한번 해보시라.”

“사람을 돈으로 보면 피곤해”

“우리 회사는 사람이 재산이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어렵다.” “직원들 정년은 환갑이다.” 요

ⓒ자전거나라 제공이탈리아 전문 류재선 가이드(맨 앞)가 바티칸 박물관의 토르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로자전거나라에는 6개국에 지식 가이드 40명이 있다.
즘같이 노동자 목숨이 파리 목숨이나 진배없는 시절에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현실이다. 자전거나라는 유럽 6개국(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영국·체코·오스트리아)에 걸쳐 현지 가이드를 40여 명 두고 있다. 그들 모두가 정규직이다. 보수도 적지 않다. 6~7년차 차장급 연봉이 대기업 같은 직급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만 채용 과정은 까다롭다. 장 대표가 “우리 회사에는 연·고대 출신이 없다(웃음)”라고 말할 정도로 학연·지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문제는 적성과 열정. 1, 2차 시험은 서류와 인성, 스피치. 관건은 3차 면접이다. 책 읽기. 여기서 대부분 걸러진다. “서양사, 미술사, 종교사, 특히 성경을 모르면 유럽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두 달에 걸쳐 읽어야 할 책들을 일러준다. 이 과정에서 100명에 두세 명꼴로 남는다. 절실한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지 실습이랄 수 있는 ‘인스펙션’ 기간이 또 있다. 선임자를 따라다니면서 가이드 세계를 체험한다. 초기에는 실패도 많았다. 면접비, 체류비만 써버리고 도중하차한 사람이 여럿이었지만 지금은 안착해 이직자는 두 명 남짓. 이 회사 홈페이지(www.romabike.com)에 들어가 보면 여행 후기의 대부분이 ‘○○○ 가이드님 고마워요’라고 시작할 정도로 가이드 각자가 개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장 대표는 이런 주문을 한다. ‘내가 우리 직원들 중에 최하위다’라고 말하라. “우리의 최대 강점이자 무기는 사람이다. 직원 한 사
람이 무너지면 고객 전부가 무너진다. 사람을 돈으로 생각하면 피곤해서 이 일 못한다. 여행자 머릿수가 일당으로 보이면 사람이 적은 날은 일할 맛이 나겠나. 고객과 가이드, 인생의 여행자로 만나 서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하자고 매일 아침마다 다짐한다.”
 
장 대표는 IMF 외환위기가 만들어낸 실업자 중 한 명이다.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퇴직 뒤, 배낭을 메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민박집에 장기 체류하며 자원봉사 가이드를 해주었던 것이 입소문 나면서 유료 가이드 요청이 쇄도했다. 그 뒤로 ‘낮에는 가이드,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1인 창업을 하게 되었다. 2000년 첫해 1000명이던 고객 수가 2008년 2만8000명으로 크게 늘었던 데에는 구전 홍보 효과가 컸다.

자전거나라 서울사무소에는 ‘늘 가족처럼’이라는 사훈이 걸려 있다. 회사의 수입·지출은 하루 단위로 직원들에게 공개되고 당해 연도 결산과 이듬해 계획 역시 전 직원 워크숍(11월)을 통해 이뤄진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학술회의도 열린다.  유럽 각지에 흩어져 지내던 직원들은 자신의 업그레이드된 여행 지식과 자체 개발한 여행 동선을 발표하고 동료 의견을 청취한다. 직원들에게는 매년 두 달간 휴가를 주는데 한 달은 통상 ‘공부 여행’으로 보낸다. 그러한 ‘자아 확장의 경험’이야말로 자전거나라의 성장 동력이었다. 이런 게 지식산업이 아닐까?

ⓒ전문수장백관 대표(위)는 여행업의 새 시장을 개척했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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