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중국 신장 위구르 수도 우무루치까지 거리는 4600km가 넘는다. 당연히 국경도 맞닿아 있지 않고, 터키와 위구르 사이에 딱히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 터키가 하는 행동을 보면 남의 나라가 아닌 듯하다.

7월8일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가 유엔 안보리의 의제로 채택되도록 제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7월9일 니하트 에르군 터키 산업장관은 위구르 유혈 사태와 관련해 중국산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자국민에게 촉구했다. 터키 국민은 터키 정부가 여전히 중국 눈치를 본다며 더 세게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앙카라 주재 중국 대사관과 이스탄불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는 위구르인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터키인 시위가 연일 벌어진다.

터키는 중국과 친한 나라로 알려졌다. 군사·외교적인 협력 관계도 각별하다. 그런데 왜 터키 정부와 국민이 위구르 문제만은 민감하게 나서는 것일까? 여기에는 범투르크 민족주의(Pan-Turkism)라는 배경이 있다.
 

7월7일 신장 위구르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유혈 사태에 항의하며 경찰과 대치하는 주민들.

범투르크 민족주의는 위구르 독립운동을 이해하는 열쇳말일 뿐만 아니라, 왜 중국이 그토록 위구르 문제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중앙아시아 독립국과 자치공화국 사이에 벌어지는 지정학적 구도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한국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동북아 몽골 민족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

7월5일 발생한 신장 위구르 유혈 충돌로 최소한 150여 명이 죽고 800명 이상이 크게 다쳤다. 위구르 측은 최소 500~6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G8 정상회담 와중에 급거 귀국할 정도로 이 사건은 중국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티베트보다 위구르가 중국에 더 위험

이번 위구르 유혈 참극은 지난해 3월 분출한 티베트 독립운동과 닮은 점이 많다. 언어·역사·문화가 다른 자치구 소수민족이 한족에게 차별 대우를 받은 것이 배경이었다. 민족 문제와 빈부 격차 등 경제 문제가 서로 얽힌 것도 닮았다.
 


유명하기로 따지자면 그간 티베트 독립운동이 위구르 독립운동보다 더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위구르를 티베트보다 더 위험한 지역으로 생각한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문화인류학)는 “티베트 민족은 오로지 티베트 지역에만 살지만, 위구르족은 주변에 언어·종교·역사가 같은 동족이 독립국을 세우고 버티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은 이웃 국가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범투르크 민족주의라는 시각에서 위구르는 티베트보다 훨씬 더 잠재적 폭발력이 큰 곳이다”라고 말했다.

위구르와 국경을 맞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물론 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독립국은 모두 터키어를 쓰며, 이슬람 종교를 믿고,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옛 투르크족(돌궐족)의 후손이다. 투르크인이 사는 땅을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는데,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은 위구르를 ‘동투르키스탄’이라고 일컫는다. 1949년까지 신장 위구르 지역에 존재했던 독립국 이름도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었다. 위구르 독립운동은 동투르키스탄 재건운동이며 범투르크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현재 투르크족의 맹주는 오스만튀르크의 적자를 자처하는 터키다. 터키(Turkey)라는 나라 이름은 투르크(Turk)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위구르 사태 발생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해보자. 지난 6월24일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다. 귤 대통령은 6월28일과 29일에 걸쳐 귀국길에 우루무치를 들렀다. 터키 대통령이 신장 위구르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혈 사태 5일 전 터키 대통령(가운데)이 우루무치를 방문했다.

터키 언론에 따르면 터키 대통령이 우루무치 방문을 제안했을 때 중국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경호상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투르크 민족주의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게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터키 대통령이 우루무치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위구르인들에게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줬다. 터키 일간지 후리예트에 따르면 위구르 사람들은 “터키 대통령이 위구르에 뭔가 해줄 것” “위구르 민족의 사기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고 썼다. 과거 터키 정부 관계자가 우루무치를 방문할 때면 꼭 후폭풍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에 터키 부총리였던 유력 정치인 데블렛 바셀리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슈가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바셀리가 방문하는 동안 위구르어 사용 금지령을 새로 내렸고, 그가 귀국한 직후에는 위구르 역사·문학 서적 5000권을 불태우는 위구르판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위구르 출신으로 6년 전 터키에 망명한 ‘이스탄불 마립 연대기구’ 의장 히다예툴라 오구즈는 6월30일 터키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방문(터키 고위층의 방문)이 있고 나면 꼭 위구르인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타이밍을 맞췄다. ‘희망을 품으면, 우리는 좌절시킨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이번 방문도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예언은 들어맞았다. 터키 대통령이 돌아가고 5일 뒤 광둥성에서 위구르 노동자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우루무치에서는 학살에 가까운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아마도 터키 대통령의 방문과 유혈 사태 발발이 겹친 것은 우연일 것이다. 터키는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의 국경을 인정한다고 밝힌 우방국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압둘라 귤 대통령은 외무장관 출신으로 범투르크 민족국가 6개국을 유럽연합(EU)처럼 통합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했고 지금도 추진하는 인물이다. 중국 정부는 범투르크 민족주의의 위구르 유입을 가장 두려워한다.

 

 

 

 

7월6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위구르계 터키 소년들이 터키 국기와 위구르 깃발을 함께 펄럭이며 위구르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범투르크 민족주의는 오랫동안 죽은 단어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오스만튀르크를 중심으로 주창됐던 범투르크 민족주의는 중앙아시아 투르크족에게 큰 영향을 줬다. 1933년 위구르 카슈가르에 처음으로 동투르크 공화국이 탄생한 것도 범투르크 민족주의의 영향이 가장 컸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뒤 20세기 중반을 지나 범투르크 민족주의를 말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지금도 범투르크 민족주의는 중앙아시아의 지배적 정치사상은 아니다. 하지만 물밑에서 조용히 범투르크 민족이 뭉치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범투르크 민족주의 부활의 첫 번째 배경은 20세기 말 소비에트 연방 붕괴였다. 투르크 민족국가인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키르기스스탄이 이때 독립했다. 중앙아시아에 ‘투르크 벨트’가 열린 것이다. 9·11 테러 이후에는 이슬람주의도 한몫 했다. 투르크 민족이 모두 이슬람을 믿고 있는데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이 민족운동과 결합하는 현상이 생겼다. 아랍 민족주의와 투르크 민족주의는 이런 면에서 닮은꼴이다.

요즘 투르크 민족국가 6개국이 서로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1990년대부터 이 6개국은 EU와 같은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종종 정상회담을 열어왔다. 2006년 정상회담 때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지역공동체의 준비 단계로 먼저 의회 연합을 제안했다. ‘터키어 사용 국가들의 의회 연합(TURKPA)’이라는 구체적인 이름도 나왔다. 지난해 이 기구의 창설에 각국은 동의 서명을 했고 올해 9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TURKPA 정상회담이 열린다.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에서 “TURKPA 출범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선언하며 “이런 지역 협력은 유라시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 형제애는 특정한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마음과 정신을 통합해 지역을 번영시키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터키는 이미 투르크 5개국에 대한 비자 발급을 면제하고 이 지역 내 투르크어 문자 표기를 통일하려고 노력한다.

터키의 이런 범투르크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터키 내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의 배경이 범투르크 민족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범투르크 민족연합 탄생할까

만약 범투르크 민족주의가 성공해 6개국이 뭉치면 만만치 않은 세력이 된다.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인구가 2770만이 넘고 카자흐스탄(1640만), 아제르바이잔(817만) 등도 꽤 큰 나라다. 이런 투르크 독립국가의 단결은 이웃 미독립 투르크족을 자극할 수도 있다. 중앙아시아에 1000만명이 넘는 투르크 민족이 자치구 형태로 러시아 등지에 퍼져 살고 있다. 인구 500만 이상 투르크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하지 못한 집단은 동투르키스탄(신장 위구르)뿐이다. 범투르크 민족주의는 6개 독립국가를 중심으로 위구르를 포함한 20여 투르크 자치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원대한 꿈이다.

범투르크 민족연합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독립국 집권 세력은 투르크 민족주의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투르크 민족의 단결을 바라는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 3대 강국이 모두 투르크 민족의 분열을 바란다. 러시아는 러시아 연방에 속한 알타이·바슈코르토스탄·추바시야·하카시아·사하·타타르스탄·투바 등 투르크계 자치공화국을 단속해야 한다. 좀 더 넓게 보면 체첸 공화국 독립운동도 범투르크 민족운동의 가지에 걸쳐 있다. 체첸 민족은 투르크-잉구슈어를 쓴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를 지키기 위해 범투르크 민족주의가 발호하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최근 위구르 사태가 발생한 뒤 중국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투르크 민족, 세계 역사의 큰 변수 될 수도

미국 역시 범투르크 민족주의가 달갑지 않다. 중앙아시아에 퍼진 투르크계 국가 지도는 미국에게 ‘알 카에다 루트’로 여겨진다. 이 지역의 민족해방운동이 이슬람 무장운동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위구르 출신으로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을 돌다 미군에 잡힌 관타나모 포로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열강의 압력 속에 이 지역 투르크 민족의 정치적 독립이나 지역 공동체의 탄생은 당장 실현되지 않겠지만, 경제적으로 이 지역은 서서히 통합되고 있다. 2008년 카자흐스탄과 신장 위구르 무역량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중국 교역량의 70%를 차지했다. 2007년 61.8%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 전체 교역량이 5% 정도 늘어난 것과 비교해도 큰 폭이다. 카자흐스탄의 신장 위구르 무역 규모는 84억 달러로 러시아 다음으로 크다. 카자흐스탄과 신장 위구르 사이의 교역은 두 지역만의 무역이 아니라 ‘범투르크 벨트’와 위구르 사이의 무역이다.

‘투르크 벨트’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가진 곳으로 아랍의 석유만큼이나 중요하다. 유라시아 철도 물류 거점이기도 하다. 투르크 민족은 1000년 전에는 실크로드를 지배하며 세계를 호령했다. 지금 그들은 ‘에너지 로드’를 장악하고 있다. 비록 갈기갈기 찢겨지고 일부는 강대국에 복속되어 있는 형편이지만, 이들 민족의 움직임이 유라시아와 세계 역사의 향방에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발생한 위구르 유혈 충돌은 이 조류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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