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수사와 실제 정책이 따로 논다. 정치권에서는 “사교육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라고 말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보면 사교육 빅뱅을 예고하는 교육체제 개편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법치주의’는 MB의 입버릇이다. 하지만 정작 교육정책은 입법부를 완전히 ‘제껴두고’ 진행된다. “법 개정도 없고, 그렇다고 기존 법을 준수하지도 않는 행정부의 일방통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MB 정부의 교육정책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만한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정책을 보면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율고는, 기존에 흔히 ‘자사고’라는 줄임말로 불렸던 자립형 사립고와도 성격이 다르다. 자립형 사립고는 재단 전입금이 학생 납입금의 25% 이상이어야 하지만, 자율고는 3(도 소재)~5% 이상(특별시·광역시 소재)이면 된다. 자립형 사립고는 기본적으로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해야 하지만 자율고는 절반만 이수하면 된다. 두 학교 모두 국고 보조 대신 재단 전입금과 학생 납입금으로 운영한다는 점은 같다.

사학재단의 처지에서 보면, 자율고는 자립형 사립고에 비해 돈은 더 적게 들이면서도 교과 편성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인 셈이다. MB가 대선 후보 시절 내놨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서도 자율고 100개 설립이 주요 공약으로 제시된 바 있다. 한편 자립형 사립고는 2002년부터 시범 운영 중이며, 현재 민족사관고등학교 등 6개교가 이에 해당한다. 6개 자립형 사립고 중 하나인 부산 해운대고는 재단 전입금 부담 등을 이유로 자율고 전환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전문수자율형 사립고는 우리 교육 환경에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올 전망이다. 위는 7월10일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자율고 반대 시위에 나선 ‘자율형 사립고 대응 공동행동’.
과연 MB 정부답게, 자율고 도입 역시 속도전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안에 30개, 2011년까지 100개 고교를 자율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부터 전국 시·도 교육청이 접수한 전환 신청이 7월10일 현재 39건에 불과하고 이 중 재단 전입금 기준을 맞춘 학교가 12곳뿐이지만 교과부는 아랑곳 않는 모양새다.

‘교과 자율’ 특례, 법 근거 없이 끼워팔았나

속도전에 사고는 없을까. 당장 법적인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은 “자율고가 국민공통 교육과정의 절반만 이수하도록 한 것은 위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자율고는 고교 2, 3학년의 선택 교육과정 전부와, 고교 1학년이 이수하는 국민공통 교육과정 절반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사학재단과 학부모가 이 대목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대입 맞춤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고교 6학기 중 5학기를 모두 대입 과목으로만 가르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교과부 안대로라면 이런 학교가 100개가 생긴다. 전체 일반계 사립 고등학교 655개의 15%에 달하는 규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훈찬 정책실장은 “학교를 온통 입시학원으로 만들어서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책이다”라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조차도 국민공통 교육과정은 일단 따르고 나머지 교과과정에 자율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더 특혜가 많다.

왜 위법이라는 걸까. 교과부가 자율고에 이런 특혜를 준 근거 조항은 교과부가 내놓은 ‘시행 규칙’에 숨어 있다(자율형 사립고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시행규칙 제4조). 이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05조의 3에 근거하고, 이는 다시 초중등교육법 61조에 근거한다.

즉, 학교에 교과과정상의 자율성을 준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61조다.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몇몇 법 규정을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학교 또는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다”라고 돼 있다. 특례 조항이다. 얼핏 보기에 이를 근거로 자율고에 특례를 주었으니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권영길 의원은 “국민공통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을 정한 23조에 따른 것인데, 61조는 이 23조에 대한 특례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특례를 인정하는 법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법이 보장하지 않는 특례(교과과정 자율화)까지 자율고에 ‘끼워 팔았다’는 게 된다. 일종의 꼼수라는 얘기다. 권 의원은 “법을 바꿔야 가능한 일을, 교과부가 국회를 우회하기 위해 시행 규칙에서 처리했다. 자율고 정책이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걸 두려워한 모양인데,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가 앞장서 법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산하 교육청소년위원회 송병춘 위원장은 “교육 문제에 보수적인 우리 헌법재판소의 성향으로 볼 때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MB 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교과부 이주호 차관 역시 17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자율고를 도입하는 안을 내놓았지만, 집권 이후 법 개정 대신 시행 규칙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체 사립학교의 15%를 탈바꿈시키는 ‘덩치 큰’ 교육정책이 국회 논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행정부처 손에서 뚝딱 만들어진 셈이다. 단 6개 학교를 시범 운영하던 자립형 사립고 정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입시 명문 100개교 등장해 고교입시제 부활”

“법적 문제는 오히려 별게 아닐 수 있다. 교육과정 자율화, 이를테면 체육시간에 수학을 가르치는 식의 자율화는 일선 학교에서 음성적으로 해오던 것들이다. 진짜 문제는 사회적 파장이다.” 전교조 동훈찬 정책실장의 말이다. “자율고에 학생 선발권을 줬을 때 문제가 커진다. 입시명문고 100개가 출현해 고교입시제가 사실상 부활한다. 현재는 지필고사가 금지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사학재단 처지에서는 우수 학생 유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국고 보조도 없는 자율고가 매력이 없다. 정부가 ‘자율고 100개’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결국 학생 선발 자율화라는 당근을 풀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이주호 차관은 지난 6월26일 사립학교 교장회의에서 자율고가 큰 매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내년에는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사학재단이 재단 전입금 완화보다는 학생 선발 자율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차관의 말은 사실상 학생 선발 관련 기준 완화를 시사한 것으로 들린다. 

‘돈 문제’도 골치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의 의뢰를 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일반고가 자율고로 전환하면 재학생은 평균 2.6배의 돈을 더 내야 학교가 재정수지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MB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자율고 100개를 만들면 재정 보조금 2500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상 이 2500억원이 거의 고스란히 교육 수요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이미 공교육비의 사적 부담비율이 18.2%에 달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핀란드·미국 0%, 포르투갈 0.1%, 독일 2.1%, 프랑스 6.2%, 공교육 체계가 붕괴됐다는 얘기까지 듣는 영국마저 13.1%로 우리보다 낮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고까지 도입되면 공교육은 사실상 ‘무늬만 공교육’이 된다는 염려가 나온다.

가계경제의 ‘쌍둥이 교육 적자’ 시대 오나

자율고를 늘리면 사교육을 잡을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도 근거가 없다는 분석이 많다. 시범 운영 중인 자립형 사립고의 전례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성기선 교수(교육학)는 지난 4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자율고 토론회 기조 발제에서 “자립형 사립고 학생 중 68.2%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인근 일반 사립고 학생보다 오히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조차도 방학 중에는 일반 사립고보다 사교육 비율이 높다고 성 교수는 밝혔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라는 경쟁구조에 변화가 없는 이상, 자립형 사립고에서 입시에 대한 강조와 사교육 의존성은 일반계 고교보다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라는 게 성 교수의 분석이다. 결국 공교육의 사적 부담률과 사교육비를 동시에 늘리는, 가계경제의 ‘쌍둥이 교육 적자’ 시대가 올 것이라는 얘기다.

‘중도 실용’ 노선을 선언한 MB 정부는 첫 화두로 교육 문제를 붙잡았다. MB의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총대를 멨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라고까지 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떠나간 중간층 지지자를 붙잡을 수 있는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 정책으로 나오는 것은 오히려 사교육 전성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자율고 공세다. 수사로는 “서민 대책”을 외치며 정책으로는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던 집권 1년차의 이율배반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사회적 논의도, 관련법 정비도, 교육환경 성숙도 기다리지 않고 속도전을 벌이는 것마저 그때를 쏙 빼닮았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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