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메리어트 호텔과 페샤와르에 있는 펄 컨티넨탈 호텔은 외국인이나 외신 기자들에게 아주 유명한 특급호텔이다. 하지만 이 두 호텔은 지금 파키스탄에 없다. 모두 자살 폭탄 테러로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파키스탄판 9·11 테러로 불리는 메리어트 호텔 폭파 사건은 2008년 9월21일에 일어났는데 50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쳤다. 지난 6월9일 북서 변경주 주도 페샤와르의 펄 컨티넨탈 호텔에서도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11명이 죽고 70명이 부상했다. 이 두 호텔은 모두 자살 폭탄 테러에 희생되었고 배후가 알 카에다와 연대한 탈레반이라는 사실이 공통점이다. 그 후 파키스탄에서는 ‘크고 유명한 호텔에 가면 그곳에서 영원히 잠든다’는 농담이 생겼을 정도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것은 바로 자살 폭탄 테러의 수법에 근거한다. 파키스탄 수사 당국에 따르면 이 테러들에는 600㎏ 이상의 엄청난 폭약이 사용되었고, 이 중에는 플라스틱 폭탄 제조 때 폭발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RDX와 콘크리트 구조물 파괴에 이용되는 TNT가 섞여 있었다. 이는 알 카에다가 이라크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건물을 폭파할 때 써오던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다. 탈레반이 알 카에다와 연합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9·11 당시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빈 라덴을 내줄 수 없다고 버티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와 미국이 벌인 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니었던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사실 거의  동의어로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무대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파키스탄이다. 즉,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파키스탄 탈레반과도 깊은 연대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탈레반을 색출하려는 미군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죽는 경우가 많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반미 감정이 높다. 위는 탈레반 소탕 작전을 펴는 미군.
지난해 미국은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 색출 작전을 대규모로 전개했다. 알 카에다에 지친 이라크 정부와 국민까지 가세한 이 작전은 꽤 성공을 거두어 이라크 전역의 알 카에다 조직을 어느 정도 소탕하는 데 큰 업적을 이뤘다. 그 결과 이라크라는 숙주를 잃은 알 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미치는 지역으로 대거 이동했고, 돌아온 알 카에다는 이라크에서의 실전 경험을 통해 9·11 이전보다 더욱 폭력적으로 진화했다. 일부는 레바논·팔레스타인·예멘으로도 이동했다고 하지만 알 카에다에게 탈레반이야말로 가장 친한 옛 친구인 셈이다. 미국이 당장은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를 ‘청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알 카에다는 고스란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그리고 기타 아랍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라크라는 한 나라에 몰려 있을 때도 미국이 대응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랍 곳곳에 흩어져 산개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탈레반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탈레반은 기본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종족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현상’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민족이면서도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됐던 4100만 파슈툰족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알 카에다는 점조직에다 미국과 서방 세계를 향한 지하드(성전)의 이념으로 모인 그룹이다.

일당 탈레반·파트타임 탈레반·투잡 탈레반

탈레반 취재를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해온 파키스탄 일간지 ‘더 네이션’의 사자드 기자는 “행동대원이 될 수 있는 ‘민족’과 리더십·전략·전술을 구사하는 머리를 지닌 ‘조직’이 만나 최고의 테러 가치를 창조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알 카에다라는 존재는 이미 이슬람권에서 반미 감정의 정당한 행위자이자 그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게 하는 대표 브랜드이고 어쩌면 미국에 의해 더욱 유명해지고 커진 존재인 셈이다. 이런 알 카에다와 탈레반의 만남과 연대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이다”라고 했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사건·사고를 통해 재결합 신고식을 치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방법과 똑같은 자살 폭탄 테러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미군은 이라크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냈다. 파키스탄 탈레반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서쪽 100km 지점까지 진격해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이 점차 반군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파슈툰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일부인 아랍 무장세력은 자금·피신처·훈련소·자살용 폭탄 등을 전수하며 더 거대하게 진화하고 있다.

6월9일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결합해 저지른 파키스탄의 펄 컨티넨탈 호텔 자살 폭탄 테러 현장.
곰팡이가 크려면 알맞은 온도와 습기가 필요하듯 이들이 진화하는 데에도 두 가지 환경적 조건이 있다. 첫째는 반미 감정이다. 2008년 9월3일,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특수부대원들이 한밤중에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와지리스탄 남부에 있는 한 마을을 급습해 20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알 카에다와 탈레반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는데,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08년 9월11일자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미 그 일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7월에 “파키스탄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도 미국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영토 내에서 지상 공격을 수행”하는 것을 허락하는 비밀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고 탈레반 수뇌부 박멸을 위해 그 후 미군은 무인 공격기를 이용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를 지속적으로 폭격했다. 당연히 그곳에서 부모 자식을 잃은 민간인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그 적개심은 탈레반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농사 짓고 양이나 몰던 평범한 사람까지도 탈레반에게 동조하게 된다. 민심을 얻기 전에는 단순 무장세력일지 몰라도 민심을 얻기 시작하면 국민적 정치세력으로 바뀌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되었지만, 머리에 똑같이 터번을 두른 민간인과 탈레반을 무슨 재주로 구별할 것이며 그렇다고 마냥 수수방관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력으로라도 박멸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미국의 딱한 처지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반미 감정이 탈레반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주고 그들을 정당화하는 최대 조건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료들의 부패와 가난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도움으로 아편을 재배하는 농가를 빼고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없다. 실업자는 넘쳐나고 현금을 벌 기회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념보다 단순히 경제적 이유로 탈레반 병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카불 뉴스’의 오마르 편집장은 “전투가 필요할 때마다 불려가는 ‘일당 탈레반’,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탈레반 활동을 하는 ‘파트타임 탈레반’, 경찰이면서 탈레반 활동을 동시에 하는 ‘투잡 탈레반’도 있다. 시민은 돈이 없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데 이들이 돈을 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은 탈레반과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면 ‘그 막대한 아프간 재건 기금은 도대체 어디로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돈이 모두 부패한 관료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의 부패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산악지대의 가난한 서민뿐 아니라 가즈니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미군 사이에서도 터져 나온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경찰은 차량에서 연료를 빼돌리고 판사와 검사는 예사로 뇌물을 받는 등 부패가 만연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없는 상황에서 정부보다 단호하고 일관되게 법을 집행하는 탈레반 세력이 당연히 민심를 얻고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이라고 다르지 않다. 죽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1990년대 부토 전 총리 재임 시절 체결한 계약마다 10%를 소개비 명목으로 받아냈다는 소문을 비롯해, 각종 부정부패 추문으로 ‘미스터 10%’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한 외국 구호단체의 직원은 “공공기관마다 말단 직원부터 장관급까지 부패는 이제 일상이다. 그들은 서민의 경제생활에 관심이 없다. 우리 같은 외국인 구호단체도 무슨 일을 하려 하면 그들의 주머니부터 채워줘야 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파키스탄은 경제까지 파탄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난해 11월24일 120억 달러 구제금융을 받았다. 정부의 부정부패에 지친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니 오히려 원리·원칙을 지키는 탈레반이 깨끗해 보일 지경이다. 이런 상황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탈레반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성장조건으로는 최적이며, 여기에 걸프 국가에게서 지원되는 자금까지 가세하자 ‘탈레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 르네상스’ 시대 열려

또한 이런 상황은 미국에 절대로 좋은 뉴스가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27일 미국의 새로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략에 관한 연설을 통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며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손아귀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 카에다를 축출하기 위해 주둔해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패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으로부터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패 문제를 못 본 체 할 수 없다”라며 부패 행위를 단속하도록 아프가니스탄 정부와도 함께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파키스탄 정부는 재빨리 ‘무장 세력을 진압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5년에 걸쳐 매년 15억 달러의 경제개발 원조 약속을 받아냈다. 과연 그 돈으로 탈레반을 ‘박멸’할 수 있는지, 아니 그 용도로 사용할 수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으로서는 궁여지책일 뿐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알 카에다는 한 술 더 떠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수중에 넣을 경우 미국과의 싸움에 이용할 것이며, 반드시 핵무기를 장악해서 미국과 투쟁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라고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 알 카에다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이 6월21일 알 자지라 방송에서 밝혔다. 지구 저편에서 이렇게 의기투합하고 있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미국이 이들을 상대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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