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는 6월21일 하주석 선수에게 10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300만원 등의 징계를 내렸다. ⓒ연합뉴스

6월21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화 이글스 내야수 하주석에 대한 상벌위원회 징계 결정을 발표했다. 10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300만원,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40시간이었다.

하주석은 그 5일 전인 6월16일 대전 롯데 자이언츠전 8회 말에 퇴장을 당했다. 0-2로 뒤진 1사 1루에서 롯데 투수 구승민이 좌타자 하주석에게 던진 초구는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갔다. 송수근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했고, 하주석은 제스처로 불만을 나타낸 뒤 판정에 항의했다. 타석에 다시 들어선 하주석은 볼카운트 1-2에서 5구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하주석은 배트를 홈 플레이트에 내리치며 초구 판정에 대한 불만을 다시 드러냈고, 주심으로부터 퇴장 지시를 받았다. 야구 규칙은 선수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스포츠맨답지 않은 언행을 했을 경우 심판에게 퇴장 권한을 준다.

하주석은 퇴장 선언 직후 다시 주심과 언쟁을 벌인 뒤 한화 구단 관계자들의 제지로 1루 쪽 홈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더그아웃에 들어서면서 헬멧을 정면 벽을 향해 강하게 집어던졌다. 벽을 맞고 튕겨져 나온 헬멧은 웨스 클레멘츠 수석코치의 뒤통수에 맞았다. 하주석은 사과도 없이 더그아웃 밖으로 나갔다. 이 장면은 TV 영상으로 그대로 전국에 중계됐다. 이 일로 하주석은 KBO 상벌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주석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했다. 순전히 경기 상황 면에서 보더라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한화는 6연패 위기에 빠져 있었다.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네 개만 남겨둔 상황에서 주심의 초구 판정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평정심을 잃어버리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퇴장까지 당했다. 주장이자 유격수인 하주석은 한화 공수에서 비중이 큰 선수다. 어떤 퇴장은 긴박한 상황에서 팀의 투쟁심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하주석의 퇴장은 그 반대였다는 게 여러 야구인의 의견이다.

그런데 하주석에 대한 징계는 적정한 수준이었을까. KBO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판정 항의로 상벌위원회가 열린 경우는 모두 18회다(가중처벌 제외). 이 중 14회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문제였다. ‘KBO 리그 규정’ 벌칙 내규 1항에 따르면 심판의 판정에 불복해 퇴장당한 감독·코치·선수에게는 경고, 봉사활동, 제재금 100만원 이하, 출장정지 5경기 이하 등 징계가 내려진다.

앞선 18회의 상벌위원회에서는 모두 출장정지 없이 엄중경고, 봉사활동, 제재금 처분만 내렸다. 제재금 최고액은 2006년 8월5일 문학구장 ‘질주 난투극’의 주역인 롯데 외야수 펠릭스 호세와 SK 와이번스 투수 신승현에게 내려진 300만원이었다. 당시 빈볼 시비가 난투극으로 이어졌지만 KBO는 ‘심판판정 항의 사례’로 분류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하주석에 대한 상벌위원회 징계는 전례 없이 강한 수준이다. 최원현 상벌위원장은 “1항뿐 아니라 7항도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7항은 ‘심판판정 불복, 폭행, 폭언, 빈볼, 기타의 언행으로 구장 질서를 문란케 했을 경우’ 출장정지 30경기까지 처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헬멧을 던져 사람을 다칠 뻔하게 한 행동을 엄중하게 봤다”라고 설명했다.

흥행 산업 프로야구가 빠지는 ‘여론’의 함정

하주석은 매우 위험한 행동을 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 과거 상벌위는 그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의 징계를 했다. 가령 2010년 9월 롯데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는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뒤 7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상벌위원회 징계 사유는 주심에게 배트를 겨누는 위협적인 움직임을 했다는 것이었다. 야구 배트는 형사사건에서 흉기로 다뤄질 때가 많다. 여기에 가르시아는 그해 5월 이미 한 차례 판정 문제로 퇴장을 당해 가중처벌 대상이었다. 하주석의 중징계 근거가 된 7항 중 ‘기타의 언행’은 문구의 모호성 탓에 남용될 우려가 크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KBO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중징계를 내리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허구연 신임 총재는 6월21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선수는 젊은 팬들부터 용납 못한다. 선수들에게 일탈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인식을 각인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흥행 산업인 프로야구에서 소비자인 팬 의견을 존중하는 건 중요하다. 프로스포츠에서는 승부조작이나 도핑 등 특정 종류의 일탈에 대해 사회상규보다 강한 제재를 해야 할 이유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매체 환경에서 ‘여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단순화하자면 이런 과정이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다. 시간 싸움을 하는 다수의 어뷰징 매체는 사안에 대한 충분한 취재 없이 ‘반응’을 기사화한다. 포털사이트에서 중요한 꼭지로 다뤄지면 ‘여론’이 된다. 그러면 레거시 미디어도 이를 뒤따른다.

그래서 부정확한 TV 중계 화면을 근거로 ‘볼 판정 오심을 했다’고 낙인찍힌 심판은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2015년 7월 대구 구장에서 ‘유령태그’를 한 김광현은 ‘비겁한 선수’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당시 많은 야구인은 왜 그 플레이가 논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국회 국정감사에까지 올랐던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야구대표팀 선수 선발 문제는 또 어땠나. 처음에는 대표선수 선발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이었다. 이 일은 결국 이상한 질문을 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됐다. 그 과정에서 처음 제기됐던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는 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여론’의 특징이기도 하다. 평론가 한윤형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에 대해 “모두가 피해자 서사를 구사한다”라고 분석한다. 내가 피해자 위치에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가해자가 돼야 한다. 그래서 처벌에 대한 주장이 강해진다. 한윤형은 “이런 지형에서 비례성에 대한 고려를 거론하면 인터넷 비속어로 ‘X선비’가 된다. 징계를 결정해야 할 책임 있는 기관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위기 대응의 논리를 우선해 기업 홍보팀처럼 행동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흥행 산업’인 프로야구는 이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

기자명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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