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아무의 덕도 보지 않았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홀로 삽질하는가, 한심하고 아득하던 때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지금도 가끔 그런다. 혼자 덤불 속을 헤치는 것 같은 날, 제대로 가고 있나 묻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날, 그만 주저앉아 남 탓이나 하고 싶은 날. 읽히지 않는 책장을 덮고 영화를 봤다. 감독 강유가람이 지난날 여성주의 현장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현재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처음엔 과자를 옆에 끼고 한없이 게으르게 보다가 어느 순간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필기까지 하며 봤다.

영화에 나오는 다섯 인물은 모두 1990년대 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른바 ‘영 페미니스트’다. 나이나 활동 시기는 비슷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저마다 다르다. 학창 시절 여성을 위한 대부업을 성공적으로 꾸린 즐거운 기억에 웃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자 선배에게 재떨이 세례를 받은 참담한 기억에 씁쓸해하는 이도 있고,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다 그만둔 이가 있는가 하면 10년 넘게 그곳을 지키는 이도 있다. 이제 그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수의사로, 농산물꾸러미 사업가로, 성폭력상담소 일꾼으로, 의료생협 활동가로, 싱어송라이터로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경험이 늘어진 나를 깨웠다. 하릴없이 나이만 먹는 게 두려웠는데 영화에 나오는 씩씩한 어라(출연자)가, “나는 나이 드는 데 선망이 있었어. 크면서 성장하는 걸 아니까. 친구가 많은데 뭐가 두려워” 하고 말하는 걸 보고 기운이 났다. 맞다,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도 100세가 다 돼서 그린 그림에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던가.

더구나 내겐 친구들이 있다. 늦되는 나를 이끌어주는 젊은 벗들, 함께 공부하는 독서회 친구들이 있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고, 지역에서 묵묵히 활동하며 뒤늦게 찾아온 후배에게 “근사한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은 탓에 단절이란 착시”가 생기기도 하지만 착시를 교정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 그 노력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도 내 일이라 믿으며 고른 책,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다.

〈우리는 매일매일〉이 1990년대 영 페미니스트의 활동을 기록한 영화라면,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는 1980년대에 여성학을 공부하고 활동해온 앞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현장 경험을 담은 책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놀란 것은 그들의 전방위적 활동이다. “여성운동은 통일 문제에서 쓰레기 문제까지”라는 어느 운동가의 말처럼, 정치·사회·의료·언론·생태·교육·평화에 국제연대까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잠시 발만 담근 게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말뚝을 박고 삽질을 하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이뤘으니, 그 뚝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냉소와 무관심은 호구 되는 지름길

15인이 함께 쓴 이 책의 1부는 정치 영역에서 ‘성 주류화’를 실천한 이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모든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정치에 대한 냉소적 시선을 떨치지 못했던 나는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세상 바꿀 엄두는 내지 않고 세상 탓만 한 걸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서대문구의회 최초의 선출직 여성 의원인 서정순에게 “왜 하필 그 더러운 진흙탕 속으로 들어갔니?” 하고 힐문했다는 친구처럼, 많은 여성들이 정치는 부패한 권력 다툼이라 여기며 “난 정치에 관심 없어” 하고 선언한다. 만약 모든 여성이 이렇게 무관심했다면 여성이 정부 요직에 진출하지도 못했을 테고,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데 성별영향평가를 고려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작게는 우리 동네에서 안전한 귀가 서비스 같은 사업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소수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한다고 대다수 여성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지자체에서 안전한 밤길 사업을 한다고 밤길이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국회와 행정부,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여성들 역시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쉬 바뀌지 않는 현실을 이유로 포기하고 냉소하는 대신, 공공정책에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성 주류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나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리 호이나키의 책을 떠올렸다. 책 제목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바른길로만 직진하는 삶은 없다. 때로는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리면서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나아갈 때 삶도 세상도 새로운 전망을 얻는다는 걸 이들은 실천으로 보여준다. 냉소와 무관심이야말로 호구가 되는 지름길임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15인의 여성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주의도, 헌신하는 분야와 활동 모습도 저마다 다름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에겐 양성평등이 여성주의이고, 어떤 이에겐 건강한 환경이, 어떤 이에겐 생태주의가, 어떤 이에겐 적극적 평화가 여성주의다. 그 모든 다름을 아우르는 여성주의란 차별 없는 생명의 존엄함일 것이며,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실천일 것이다.

영화와 책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여성주의자들을 만난 지금, 나는 기꺼이 그들처럼 살기를 꿈꾼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공고한 이념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상상이며, 틀릴까 두려워 숨지도 않고 다르다고 선 긋고 내치지도 않는, 한없이 넓고 깊게 흐르는 물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물이 되어 만나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기자명 김이경(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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