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이 나빠져 피하수액 주사를 맞게 된 반려견 풋코.ⓒ정우열 제공

“신장 수치가 조금씩,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이제 슬슬 피하수액을 시작해볼까요?”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씁쓸한 미소는 마치 모든 것이 다 정해진 수순이었고 올 일이 왔을 뿐이라는 의미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그냥 단순히 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액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온기가 있게. 피부를 이렇게 들어 올려서 삼각형을 만든 다음에, 바늘로 찌른다기보다는 피부를 바늘 쪽으로 가져온다는 느낌으로. 병원에서 주사 놓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놓아주고 있다.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나빠지는 건 신장뿐만이 아니어서 진작부터 신장약과 더불어 관절약, 심장약, 간 보호제, 치매약, 항산화제를 밥에 섞어 먹이고, 이 약들을 먹인 지 한 시간 이후에는 인 흡착제라는 약도 먹인다. 아침 약과 저녁 약의 조합이 다르고 2주에 한 번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약을 조절해가며 먹여야 하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피하수액 주사를 놓는 데에 두 번째로 어려운 점은 역시나 이틀에 한 번씩 커다란 바늘을 작은(그렇게 작진 않지만) 개의 몸에 찔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망설이면 안 된다. 너무 힘을 줘도 안 된다. 바늘이 피부를 관통해서 다시 몸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혈관이나 근육을 찌르지 않도록 각도 조절도 잘해야 한다. 바늘이 개의 두툼한 피부를 툭, 하고 뚫고 들어갈 때 개는 살짝, 때로는 크게 움찔댄다. 어떤 날은 유난히 아픈지 움찔대는 데 그치지 않고 자꾸만 내 품에서 벗어나려 애쓰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개가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아야 하는데, 한 손에는 주사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개의 몸에 꽂은 바늘을 고정한 채로 두 다리와 팔꿈치, 턱 등등 온몸을 동원해 간신히 일을 치르곤 한다.

피하수액 주사를 놓는 데에 첫 번째 어려운 점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어째서 이틀에 한 번씩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는지 개에게 설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개가 영문을 모른 채 하여튼 견딘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건 나로서도 적잖이 마음이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웬만하면 곁눈으로만 힐끗 보고 지나치려 애쓴다. 하지만 불행히도 개에게 직접 주사를 놓으면서 주사 맞기 싫어하는 개를 외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일에 관해서는 개도 나도 도리 없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저기, 그렇게까지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만약 어떤 분기점에서 갈라져 나간 다른 평행우주의 내가 어느 날 지금 이 우주의 나를 본다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째서 굳이 다 죽어가는 개를 억지로 살리려 애쓰는 거냐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이다. 동감이다. 나도 그러고 싶진 않다. 하지만 잘 살아가는 개가 다 죽어가는 개로 변하는 과정은 버튼 누르듯 똑딱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개는 여전히 맛있는 걸 먹을 때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돼지 소리를 낸다. 차에 타면 창밖의 바람을 느끼고 싶어 애써 몸을 일으킨다. 저녁 여섯 시가 되도록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현관 앞에 서서 침묵시위를 벌인다. 열역학 제2법칙이 개의 육신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지만 아직 개는 포기하지 않았다.

약은 먹일 수 있어요. 개가 싫어하지 않거든요. 근데 이틀에 한 번씩 등에 주삿바늘을 꽂는 건 행복하지 않대요. 이거 안 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까요? 이번 주에 다시 동물병원에 가면 수의사 선생님께 여쭤볼 생각이다. 말하다가 추접스럽게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매일 연습 중이다.

기자명 정우열(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