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으로 법원과 검찰을 계속 경험하지만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처음 경험한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실무수습 기간 중 형사부 판사들과 공판 검사가 함께 모이는 식사 자리였다. 부장판사는 재판 절차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공판 검사를 꾸짖었다. 부장판사는 “이렇게 하시면 예고 없이 무죄판결 선고합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판 검사는 앞으로 잘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 장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변호사로 형사사건에서 경험하는 공판 검사들의 모습이 매우 불량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른바 주요 사건이라 분류되는 사건,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공소 제기 후 공소 유지를 수사만큼 알뜰히 챙긴다.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에도 수사 검사가 서울까지 올라와 공판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미담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통상적인 사건에서는 어떠한가? 사건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검사가 공판에 참여하며, 6개월 또는 1년에 한 번씩 바뀐다. 이런 상황이 범죄 피해자들에게는 당황스럽다. 현행 형사사법 절차에서 피해자는 절차에 참여해 진술할 권리만 주어진다. 공판 검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 눈에 비친 공판 검사는 미덥지 못할 때가 많다.
교사가 중학생을 성추행해, 아이들의 신고로 세상에 알려진 ‘청주 스쿨미투 사건’. 공판 검사는 법정에서 피해 신고 학생의 신원을 노출시켜 2차 피해를 받게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판 검사를 징계할 것을 검찰총장에게 요구하는 일까지 있었다.
혼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공판 검사의 모습은 어떨까? 2020년 7월24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 진행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사용자는 무죄를 주장했고, 증인으로 나선 동료 내국인 노동자들은 초과근무수당을 모두 지급받았다며 이주노동자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공소사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을 한 증인을 상대로 공판 검사는 질문 하나 던지지 않았다. 결국 사용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축소된 ‘직접 수사권’보다 더 중요한 검찰의 권한
검찰청법 제4조 제1항은 검사의 직무를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 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의 직무는 ‘직접 수사’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공소 제기 및 유지는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은 행사할 수 없는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다. 검찰의 독점적 권한 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법원 합의부 판결문에는 재판장인 부장판사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검찰 공소장에는 그 공소 제기를 승인한 부장검사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형사 판결문에도 수사 검사, 공판 검사 이름만 기재된다. 부장검사라면 뒤에 숨어 있을 게 아니라 소속 검사들이 공소 제기한 사건의 책임자로서 법정에 나와 공소 유지를 끝까지 맡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검찰청법 개정으로 직접 수사의 범위가 줄어들어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검찰은 아우성이다. 검찰이 안타까워할 건 잃어버린 ‘직접 수사권’이 아니라 부실한 공소 유지 등으로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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