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은 초췌했다.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통로 양쪽으로 도열한 중국 취재진이 난리를 피웠다. 다들 그가 할리우드에 있을 거라고 여겼다. 장궈룽(장국영)의 장례식장에는 못 올 거라고 했다. 장궈룽의 자살은 몰락해가던 홍콩 영화계의 죽음이었다. 홍콩 영화계는 1990년대 전성기를 끝으로 쇠락했다. 더 이상 좋은 영화를 찾지 못한 홍콩 영화인들은 하나 둘 할리우드로 떠나버렸다.

어쩌면,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홍콩에서의 성공에 도취된 홍콩 스타들은 할리우드로 눈을 돌렸다. 홍콩은 작고 아시아는 시시했다. 할리우드 메이저들도 그들을 유혹했다. 엄청난 출연료와 월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허영이 할리우드의 미끼였다. 저우룬파는 할리우드에서 1998년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를 찍었다. 장궈룽은 홍콩에 남겨졌다. 그리고 장궈룽은 2003년 4월1일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뛰어내렸다.

지금 한국 영화계의 풍경은 그때의 홍콩과 닮았다. 2000년대를 수놓았던 한국 영화의 절정기는 끝나가고 있다. 전성기의 홍콩에게 그랬던 것처럼 할리우드는 한국의 배우와 감독들을 꼬드긴다. 할리우드의 가장 큰 연예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에는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유력한 한국의 창작자가 여럿 속해 있다. 할리우드만 먼저 옆구리를 찌른 것도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배우와 매니지먼트들이 앞장서서 할리우드 진출을 도모했다.
 

〈블러드〉에서 전지현은 칼을 휘두르는 흡혈귀 모습만 보여주었다.

배우의 욕망과 ‘비즈니스의 허영’ 겹치니…

그럴 만했다. 전지현과 장동건과 배용준과 이병헌과 정우성은 분명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미국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미모와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한류로 시장성까지 증명했다. 비즈니스로만 봐도 유럽이나 미국 시장을 노려보는 게 당연했다. 한국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광고 모델이 될 수도 있었다. 이미 현실이었다. 이제까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광고 모델은 주로 홍콩 배우였다. 최지우나 송혜교는 어느새 천후이린(진혜림)이나 장바이즈(장백지) 같은 홍콩 여배우들을 대신하게 되었다.

비즈니스보다 더 강렬했던 건 배우 개개인의 욕망이었다. 박중훈은 2003년 조너선 드미 감독과 〈찰리의 진실〉을 찍었다. 그는 〈찰리의 진실〉 미국 시사회장에 절친한 후배 장동건과 김승우를 데려갔다. 박중훈은 1981년 할리우드에서 〈캐논볼〉이란 싸구려 레이싱 영화를 찍었던 청룽(성룡)과 닮았다. 그때 청룽은 단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제나 신중하고 열심인 배우 이병헌한테도 할리우드는 배우 인생에서 반드시 도전해보고 싶은 큰 목표다. 전지현은 홍콩 영화계의 실력자 빌 콩의 눈에 들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와 살을 섞어온 홍콩의 영화 대부는 한국에서 나타난 엽기적인 스타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장동건은 첸카이거 감독과 〈무극〉을 찍었다. 그는 존경하는 세계적 거장과 영화를 찍으면서 네 발로 기어다녔다.

욕망이 너무 간절해서 문제였다. 지금의 할리우드 메이저 경영진들은 한국 배우와 홍콩 배우를 구분하지 않는다. 아시아 배우는 무조건 칼을 휘두르거나 주먹을 써야 한다. 할리우드로서는 연기 잘하고 콧대 높은 배우는 알 파치노와 로버트 데니로로 충분하다. 슈퍼스타는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부부)’면 된다. 아시아 배우한테 바라는 건 연기가 아니라 액션이다. 전지현은 〈블러드〉에서 칼을 휘둘렀다. 예외가 없다. 비는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하는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닌자로 나온다. 이병헌도 〈G.I 조〉에서 역시 칼을 휘두를 모양이다. 장동건도 〈전사의 길〉에서 검을 짊어진 무사로 나온다. 배우한테 연기를 요구하는 한국의 질 좋은 시나리오를 마다하고 선택한 결과들이다. 욕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비는 〈닌자 어쌔신〉에서 닌자 역을 맡았다.

여기에 비즈니스의 허영이 겹치면 더 문제가 된다. 전지현의 〈블러드〉는 국제적 합작 영화일 뿐이지 할리우드 메이저가 직접 제작한 미국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영화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쇼비즈니스 면에서는 할리우드라는 게 중요하다. 허영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한국에서 예전 같지 않은 인기를 할리우드라는 포장지로 만회하려고 하면 〈블러드〉처럼 피를 본다. 그러나 지금도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소식은 무슨 무공훈장처럼 미디어를 떠돈다.

그런데도, 배우들은 할리우드를 원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것이나, 박세리가 LPGA에 간 것처럼 더 큰 스타가 되려면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한국에서 20대와 30대를 보내며 경력과 실력을 쌓고 40대에 접어든 한국 스타들에게 할리우드는 전성기가 끝나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다. 하지만 할리우드라는 거품에 취해 허둥대다가는 한국 관객에게조차 버림받기 십상이다.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해서 배우가 희생하는 것은 한국 관객들이 사랑했던 자신의 매력이다. 대신 할리우드가 원하는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춘다.

한국 영화의 1차 전성기는 끝나간다

비는 말했다. “〈스피드 레이서〉가 한국에서 흥행을 못하면 한국에서 비의 인기가 별로더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겠어요?” 〈스피드 레이서〉는 한국에서 실패했다. 비가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비가 아니어서였다. 〈스피드 레이서〉에는 한국 관객이 사랑하는 수더분하고 인간적인 비의 모습이 없었다. 〈블러드〉에도 전지현은 없고 칼을 든 흡혈귀만 있었다. 단지 할리우드라는 이유만으로 배우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배우들이 지금 이곳이 아니라, 다른 어떤 곳을 먼산 바라기 한다는 건 한국 영화의 첫 번째 전성기가 끝나간다는 징조다. 한국만이 아니다. 할리우드에는 한국 배우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바다를 건너온 홍콩과 중국과 스페인과 프랑스와 영국과 일본의 유명 배우가 즐비하다. 또 예외 없이 스타를 빼앗긴 그들 나라의 영화는 허약해졌다. 그렇게 ‘친구’들이 떠난 홍콩에서 장궈룽은 죽음을 선택했다.

 

 

 

장동건(오른쪽) 역시 할리우드로 간 다른 한국 배우와 마찬가지로 〈전사의 길〉(왼쪽)에서 검을 짊어진 무사로 나온다.

박중훈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관객에게 이미 박중훈이란 배우는 식상해요. 하지만 할리우드 관객에게 난 신인이잖아요. 뭐든 새롭게 할 수 있어요.” 그에게 할리우드 진출은 배우 생명 연장의 꿈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어렵게 다시 얻은 제2의 전성기를 할리우드에서 허송했다.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나서 전도연은 이런 말을 했다. 당연히 너도나도 그녀에게 유럽 진출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연기를 하면 제대로나 할 수 있겠어요? 전 제가 잘할 수 있는 연기를 한국에서 더 잘하고 싶어요.” 그녀는 다음 영화로 〈멋진 하루〉를 선택했다. 멋진 선택이었다.

 

기자명 신기주 (〈포춘코리아〉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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