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3일 일본을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국 정상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REUTERS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공식 발족을 선언한 다자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두고 요즘 워싱턴 외교가에서 말이 많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 참여국들의 ‘실속’이 미지수인 데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도로 한국과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을 포함해 13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5월23일 공식 출범한 IPEF는 관세 철폐와 시장개방이 특징인 자유무역협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미국이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주도하는 오커스(AUKUS, 미국·호주·영국) 혹은 쿼드(Quad, 미국·호주·인도·일본) 같은 안보 동맹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은 있다. 역내에 점증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저지하겠다는 게 그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비슷한 ‘반중’ 경제협력체를 추진한 적이 있다. 2011년 11월 호주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외교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기겠다면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창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이란 말이 한때 유행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인 2016년 2월 일본·캐나다·호주를 포함한 11개국과 함께 TPP에 공식 서명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해 이듬해 1월 취임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미국 시장개방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TPP에서 전격 탈퇴하면서 오바마의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그런 측면에서 바이든이 제시한 IPEF는 오바마가 남긴 ‘미완의 유산’이라 할 TPP의 부활이자 ‘아시아 중심축 2.0’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IPEF를 통해 미국은 21세기 경제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참여국들이 더욱 빠르고 공정하게 경제성장을 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백악관은 IPEF 공식 출범에 때맞춰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백악관은 보도자료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국’이라고 선언한 뒤 관련 통계를 나열했다. 즉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고, 이들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직접투자가 9690억 달러(2020년 기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미국 내 3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자료는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향후 30년 동안 세계 경제성장의 최대 기여국이 될 것”이라며 IPEF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IPEF가 기본적으로 TPP처럼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바이든의 선언이 자칫 말만 요란한 공염불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처럼 시장개방 반대파들의 목소리가 초당적으로 커지고 있는 의회와 노동계를 의식해 IPEF에서 관세 철폐 혹은 시장개방 같은 자유무역 조항을 철저히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런 혜택이 빠진 만큼 IPEF의 매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닐 토머스 중국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IPEF를 통해 참여국들이 미국에 바라는 것은 더 많은 미국 시장의 개방이지만 이건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들어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찰스 프리먼 미국상공회의소의 아시아 담당 부사장은 〈폴리티코〉에 “IPEF에 참여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도대체 뭘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이 아무런 당근책 없이 미국 주도의 IPEF를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취약점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은 IPEF가 기존 자유무역협정이 다루지 못하는 공급망 와해나 청정에너지 등 새롭게 부상한 문제를 해소하는 데 적합하다며 장점을 부각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IPEF 의제를 무역, 공급망 복원력, 청정에너지 및 탈탄소화, 탈세 및 부패 방지 등 4개 주제로 나눠 참가국이 관심 분야에 자유롭게 참여해 상호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분야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하면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공급망 복원력’ 부문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와 기술이전 요건을 강화하는 조항을 참여국들에 요구할 경우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나의 중국’ 차원에서 타이완은 배제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인데도 미국은 IPEF에서 중국을 배제했다. 〈뉴욕타임스〉는 “IPEF는 미국이 역내 중국의 지배력에 맞서고 미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만든 경제 블록”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실을 참여국들이 모를 리 없다. 한국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IPEF 참여를 결정했지만 중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참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특정국, 예를 들어 중국을 배척하거나 겨냥하는 건 아닌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라며 ‘중국 배척론’을 경계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IPEF를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이런 말을 믿을 리 없다.

2020년 기준 중국과 연간 무역량이 5170억 달러를 넘어선 아세안(ASEAN), 즉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참여국들도 미국의 중국 배제에 불만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무하마드 루프티 통상장관은 “포용적 경제협력이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IPEF가 다른 나라를 봉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걸 원치 않는다”라며 미국을 공개 비난했다. 전략문제 컨설팅 회사 위키스트랫의 중국 분석가 레온 하다르 박사는 〈아시아 타임스〉 기고문에서 “아세안 회원국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이 미국과 중국 간의 신냉전 지역으로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중 양국과 긴밀한 외교적·경제적 유대관계를 가진 아세안 국가들이 양국 충돌 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세안 가입국들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계돼 있다. 실제 아세안 11개국은 중국이 주도해 지난 2월 출범시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공식 회원국이다. 여기엔 한국은 물론 일본·뉴질랜드·호주를 포함해 15개국이 가입돼 있다. 게다가 미국이 TPP를 탈퇴한 뒤 일본을 비롯한 11개국은 약 2년여 협상 끝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2018년 12월 출범시켰는데, 중국은 이 기구에도 가입을 신청한 상태다. 중국이 RCEP에 이어 CPTPP까지 가입하면 중국의 경제 영향권은 더욱 확대될 게 확실하다. 미국의 IPEF 노력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타이완을 IPEF에서 배제한 것도 패착이란 지적이 많다. 국내총생산이 지난해 말 기준 6890억 달러에 달하는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여덟 번째, 세계에서 열여덟 번째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특히 타이완은 전 세계 반도체 물량의 20%를 차지하는 최대의 반도체 생산국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안전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라도 참여가 당연시됐지만 결국 미국은 ‘하나의 중국’ 차원에서 타이완을 배제했다. 공화당·민주당의 상원의원 52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타이완의 참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