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공범 중 한 명인 아서 패터슨(가운데)이 2016년 9월13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소위 ‘검수완박’ 법에 대해 말을 보탤 필요가 있을지 망설였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고단한 국민의 생활과 큰 관계는 없어 보여,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넘치는 권한을 갖고 있는 공무원인 검사들이 직급별로 모여서 회의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검사들이 모두 나서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것도 납득이 안 됐지만,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니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검사들이 수사를 못하면 ‘인권완박’이 되는 듯이 말하는 건 참기가 어렵다.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범인이 너무 분명했던 1997년에 발생한 그 사건이 20년이 지난 2017년에야 진범의 처벌이 확정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검사의 잘못이었다. 최초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살인의 공범으로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 둘을 기소하자고 올린 의견을 굳이 검사가 당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대상자를 제외하고 공소 제기하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했다. 아서 패터슨의 아버지가 주한미군 군무원이었기 때문이다. 기소된 에드워드 리는 무죄로 석방되고, 진범(아서 패터슨)은 검사의 잘못으로 출국정지가 해제된 틈을 타 1999년 출국했다.

2015년 수원지검의 그 검사는 사과하지 않았다

검찰이 다시 진범에 대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건 그로부터 10년 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상영된 뒤인 2009년이었다. 결국 유족들은 2019년에야 “최초 수사기관의 수사 진행 및 그에 따른 불기소처분에 관한 담당 검사의 판단은 그 당시의 상황과 수집된 자료들에 비추어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국가배상을 받았다.

물론 마지막까지 진범의 처벌을 위해 공소 유지를 해준 것도 검사다. 말하고 싶은 것은 ‘검사여야만’ 수사를 잘할 수 있다거나, ‘검사가 없으면 피해자들이 억울’할 거라고 검사들이 목소리 높여 떠드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수원지검의 한 공안검사가 여성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운 채 조사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던 변호인을 끌어냈다. 헌법재판소가 검사조사실에서 조사할 경우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도주·폭행·소요·자해 등의 위험이 구체적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보호 장비를 사용할 수 있고, 그 이외에는 방어권 행사를 위해 보호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원칙을 천명한 지 10년이 지난 때였다.

결국 위헌적인 그 검사의 처분은 법원의 준항고 결정으로 취소되었고, 쫓겨난 변호인에 대한 퇴거 처분도 취소되었다. 그 검사는 그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2016년 나랏돈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으로 장기 연수를 떠났다. 복귀한 그는 2022년 전주지검 형사3부장으로 ‘검수완박’이 수사 공백을 초래한다며 기자들한테 설명했다. 자신이 저지른 ‘인권완박’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수사권 옹호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소소한 법 얘기로 이 지면을 꽃피우고 싶었는데, 눈감기엔 검사들의 거짓말이 너무 크고 심하다.

기자명 하주희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