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마트 행사로 집어온 3분 카레 대형 묶음을 뜯으며, 어묵탕에 한 조각 넣어볼까 사온 통무를 썰며 생각한다. 이거 다 못 먹을 텐데 누구 줄 사람 없을까? ‘그린냉장고’는 현대인의 머릿속에 한 번쯤 떠올랐을 아이디어, 마음에 스쳐 지나갔을 안타까움을 연결해준다.

서울대 경영학회 내 소모임 다인테이블은 서울시 관악구에서 ‘그린냉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최지윤(22)·정다혜(21)씨를 비롯해 매니저 7명이 ‘그린냉장고’를 관리한다. 지난해 12월 ‘책N꿈 어린이 도서관’ 앞에 1호가 설치되었고, 올해 2월 제로웨이스트샵인 ‘1.5도씨’ 앞에 2호가 들어섰다. 누구나 통조림·즉석밥·식재료 등을 냉장고에 넣고, 누구든 꺼내 갈 수 있다.

그린냉장고에 음식을 공유할 때는 비치된 스티커에 유통기한을 적어 부착해야 한다. 유통기한을 표시하기 어려운 식재료의 경우 매니저들이 주기적으로 신선도와 상태를 확인한다. 영업 파트너를 자처한 ‘책N꿈 어린이 도서관’과 ‘1.5도씨’에서도 수시로 냉장고를 체크한다. 먹거리인 만큼 좀 더 안전을 기하기 위해 냉장고 앞에는 CCTV가 설치돼 있다. 정다혜 매니저는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이 될 거라는 식의 악플이 많이 달린다. 결코 그렇지 않다. 냉장고에 식품이 들어오면 얼마나 금방 가져가시는지 우리도 깜짝 놀란다.

처음 그린냉장고를 시작할 때는 김치나 반찬처럼 집에서 만든 음식도 나눌 수 있었다. 반찬통에 붙어 있는 ‘맛있게 드세요’ ‘잘 먹었습니다’ 같은 메시지들을 타고 음식뿐 아니라 이웃의 정이 오갔다. 다소 위험하다는 의견이 있어 조리식품 공유는 현재 보류된 상태다. 최지윤 매니저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독일처럼 푸드 셰어링이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공유 냉장고를 이용해 동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린냉장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경’과 ‘취약계층’이다. 하지만 취약계층을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꺼내 가는 모습에 낙인효과가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그린냉장고를 이용하고, 낭비되는 음식을 줄여 환경을 지키는 활동으로 인식되기를 두 매니저는 바란다. 카카오톡 플러스 그린냉장고 채널을 통해 이용수칙, 위치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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