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시사IN 윤무영

소송에서 이기고도 실제로 돈을 못 받으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이 없다. 돈을 실제로 받아내는 것을 ‘집행’이라고 하는데,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라고 광고하는 곳에 연락해봐도 소용이 없다. 채권추심업체라고 하더라도 감옥 갈 각오로 ‘어둠의 경로’를 택하지 않는 이상, 법적 절차 이외에 해줄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이기고도 돈을 못 받을 염려가 있으면 소송을 하기 전에 미리 가압류나 가처분을 할 수 있다. 부동산이나 계좌에 대해서 다 가능하고, 혹시 소송 중에 재산을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해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해둘 수도 있다.

물론 채무자 명의의 재산이나 돈이 정말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는 다 소용이 없다. 판결 확정 후에도 지급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집행 절차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흔히 잘 알고 있는 계좌, 급여 등 채권의 압류 및 추심결정, 부동산에 대한 경매 신청 등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재산도 찾아야 하고, 압류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고, 절차도 복잡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게 낫다. 다들 한 번쯤 경험하듯이 돈 받을 권리가 있어도 직접 수령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문제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다. 최근 내가 수도권의 한 학교법인에 당한 것처럼 ‘설마’ 하다가 당하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학교법인을 상대로 재임용 거부를 당한 교수 두 명이 2014년 소송을 시작했다. 1심, 2심 패소 후 대법원에서 승소해 파기환송되었다. 고등법원 재판을 한 번 더 받고 최종적으로 2021년 10월20일 이긴 걸로 확정된 사건이었다. 무려 7년 동안 잘못된 해임이 지속되는 바람에 두 교수가 겪어야 했던 경제적·정신적 고통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들이 합쳐서 받아야 할 그동안의 손해배상금이 약 4억원이었다. 7년간의 고통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걸 가지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을 하고자 했다.

‘권리’임에도 실제로 향유하기까지의 어려움

학교법인은 판결이 확정되었음에도 판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학교법인은 문제가 될 때마다 자신들은 수도권에 있는, 재정이 충분한 학교라며 교육부와 법원에 봐달라고 했다. 정작 지급해야 할 판결금은 차일피일 미루었다. 학교 스케줄을 핑계 대는 게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학교법인이 확정된 금원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설마’ 했다.

그런데 최근 도착한 공문에는 4억원 중에 2000만원을 다음 달에 주고, 매달 2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런 식이면 190개월, 15년이 지나서야 판결금을 다 받을 수 있고,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 때문에 또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 이 학교법인이야말로 사학비리 기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적립금을 엄청나게 쌓아두고도 교육과 학생들에게는 돈을 안 쓰는 곳이다. 법원이 학생들에게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할 정도였다.

‘설마’ 하며 믿고 있다가 늦었지만 전문성을 발휘해서 받아내야 했다. 분명히 ‘권리’임에도 이를 실제로 향유하기까지는 어려운 일이 세상 곳곳에 있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 권리가 있지만 지하철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처럼. 그 ‘집행’ 노력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것도 아니다.

기자명 하주희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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