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6월은 양귀비 수확의 계절이다. 4~5월에 붉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6월이 되면 이 열매가 익는데 칼로 열매를 가르면 짙은 보라색 유액이 흘러나온다. 그 유액을 채취해 건조시키면 아편이 되고 화약약품을 첨가하면 헤로인이 된다. 1년에 한 번 이렇게 수확을 하므로 아프가니스탄은 지금 아편 성수기이자 농번기이다.

아편 생산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대표적 자금줄이다. 그동안 탈레반은 유엔과 아프간 정부의 단속으로 힘들어하는 아프간 양귀비 재배 농가에 무력 지원을 아끼지 않고 아편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며 수수료도 챙기면서 민심도 얻는 등 군자금 마련의 기본을 마련했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 자료에 따르면, 아프카니스탄은 지난해 생아편 8200t을 생산해 전 세계 아편의 92%를 차지했다. 이 중 생산량의 70%인 5700여t은 정제 과정을 거쳐 820t 상당의 헤로인이나 모르핀으로 제조되어 전 세계에 유통된다. 탈레반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아편 사업은 세계 경제공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번창하고 있다. 탈레반은 아편 재배 농부들의 중간 창구 구실을 하면서 각종 아편 관련 수출입까지 주관한다. 페르시아만 국가와 중앙아시아, 심지어는 러시아 마피아에 아편과 헤로인을 수출하고 제조 약품 등의 수입까지 담당한다.

탈레반은 아편 재배 농부들의 보호자이자 아편 구입자 구실을 한다. 위는 양귀비 밭에서 작업하는 아프간 농부.
아편은 막 재배하면 농산물에 지나지 않지만 여기에 화학약품을 첨가하면 가격이 더 높은 헤로인으로 제조할 수 있다. 아편 농사와 함께 헤로인 제조 사업도 번창하고 화학약품을 아프가니스탄에 수출하는 각 나라의 업자도 덩달아 호황을 누린다. 아프가니스탄 바로 위 북쪽에 있는 타지키스탄의 신문 ‘아시아 플러스’ 기자 압둘로는 “중국이나 러시아 인근 국가에도 이 사업은 바로 ‘현금’이다. 헤로인 제조를 하기 위한 화학약품인 무수초산과 무기 밀수, 폭탄 제조 원료 등 탈레반이 주문하는 모든 것이 바로 현금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탈레반이 신용을 지킬 수 있게끔 바로 현금 지급을 하는 것은 각국에 퍼져 있는 환치기 조직 덕분이다.

최근 헤로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약품인 무수초산(Acetic Anhydride)이 오스트레일리아나 중국 등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인근 지역으로 많이 수출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바로 수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란이나 중앙아시아, 파키스탄을 통해서 중간 업자에게 수출되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간다.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에도 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외사수사과 국제범죄수사대는 국정원·서울세관과 공조 수사를 통해서 지난해 다섯 차례에 걸쳐 과산화수소수로 위장한 무수초산 50t을 아프카니스탄에 밀수출한 혐의로 파키스탄인 3명과 화공약품 도매상인 김 아무개씨(52) 등 4명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9명을 검거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가을에는 무수초산 12t을 이란을 경유해서 아프카니스탄으로 밀수출하려 한 혐의로 탈레반 조직원 칼리드(47·아프카니스탄) 등 2명을 검거한 바 있다. 그는 안산시의 한 화공약품 공장에서 체포되었는데 경찰청은 엔진오일로 위장한 무수초산 12t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탈레반의 ‘글로벌 경제력’

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오기덕 주임은 “이들의 범행은 파키스탄 사법당국이 3월13일 카라치에서 무수초산 14t이 아프간 무역상에 전달되는 것을 적발하면서 들통 났고 이것이 한국에서 수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유통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하왈라’라는 환치기 조직이 자금 지불을 담당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무려 1000억원대에 달하는 환치기 장부와 이 중 상당수가 탈레반의 자금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밝혀진 것만 그렇다. 더 많은 환치기 조직이 한국에 있는데 정확한 수치는 알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즉, 한국도 탈레반의 자금 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제 한국까지 결부될 만큼 탈레반의 경제력은 글로벌 사업이 된 것이다.

아프간 정부와 미국 등은 탈레반의 돈줄인 마약 유통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위는 지난 4월26일 아프간 정부가 압수한 마약 6.5t을 태우는 모습.
탈레반의 자금력은 아편 사업뿐만이 아니다. 걸프만 각 국가에서 탈레반에 보내는 기부금도 한몫한다. 걸프만 국가 중에서 수니파 이슬람 국가의 부호들이 ‘알라의 사업’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탈레반에 많은 돈을 대준다. 파키스탄 유력지 〈돈〉의 라자 기자는 “이들은 겉으로는 탈레반 지원자금이라고 하지 않는다. 모스크나 학교를 짓는 자금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탈레반 군사자금으로 지원된다. 금액도 상상을 초월한다. 반미 감정이 강한 이들은 탈레반이 미국과 맞선다는 생각에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탈레반은 부자 무장단체라고 할 수 있다. 아편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탈레반 활동 그 자체로도 수니파 이슬람의 동정을 얻어 지원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탈레반을 열심히 돕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특히 양측이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수니파 안에서도 가장 우파 계열인 와하비즘(극단적인 이슬람주의)을 신봉한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탈레반 지도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정신적 종주국이자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 게다가 탈레반을 통해 와하비즘을 확산하고 수니파에 반대하는 이슬람 시아파의 확장세를 저지하기 위해 거의 전원이 왕족인 사우디 석유 부호들이 탈레반에 적극 자금을 지원한다. 앞서 말한 환치기라는 금융거래 형태가 증거를 남기지 않고 자금을 보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기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에는 안성맞춤이다. 공식적으로 탈레반의 테러리즘을 배격하고 미국과 견해를 같이하더라도 이런 환치기를 통해서 비밀리에 탈레반에 자금을 보내는 것이다.

 2007년 필자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도시 페샤와르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인은 이런 도네이션(기부) 사업을 중개하는 중간 업자였다. 그는 “각국 부호에게 도네이션을 받아서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 배분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명함은 건설업자로 되어 있었다. “건설장비 대금으로 가장하고 거래를 하거나 환치기 ‘하왈라(아랍말로 ‘산뢰’를 뜻하는 말. 환치기를 이름)’를 이용한다. 나는 알라의 일을 하는 중간책이므로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했다. 필자가 “탈레반에 직접 군자금을 조달하느냐?”라고 묻자 그는 “나는 자금만 조달한다. 그들(탈레반)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하든 나는 몰라도 된다. 이 돈을 지원하는 부호들도 그들이 알라의 사업을 한다고 믿는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탈레반은 자금이 마르지 않고 왕성한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과의 2차전을 앞둔 미국이다. 지난 6월5일 미국은 걸프만 국가들로부터 탈레반 세력에 유입되는 자금의 출처를 추적하는 등 조사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라고 국무부의 리처드 홀부르크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담당 특보가 밝혔다. 홀부르크 특보는 사흘간 파키스탄 방문을 마치고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걸프 국가에서 탈레반 세력에 유입되는 자금은 탈레반이 지금까지 핵심 자금줄로 활용해온 연간 3억 달러 규모의 아편 판매 자금보다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과거에는 아편 판매 자금이 탈레반의 주요 수입원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 돈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 규명해나갈 것이고 2주 내로 미국 재무부 직원들을 내 사무실에 파견해 정밀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심증은 있지만 정황은 없는 걸프 국가들의 탈레반 자금 지원 상황에 대해서 미국 정보관리가 우려를 표명한 적은 있었지만 홀부르크 특사의 이번 언급은 앞으로 미국 정부가 탈레반 세력의 자금줄 차단을 위해 걸프 국가들에 압력을 강화하겠다는 최초의 의지 표시로 읽힌다.

파키스탄 천연자원도 돈줄로 활용

이러한 미국의 강력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려고 한다. 파키스탄 일간지 더 뉴스는 “탈레반이 정부로부터 빼앗은 에메랄드 광산 등 파키스탄 스와트의 천연자원을 ‘돈줄’로 활용한다”라고 지난 5월12일 보도했다. 아프리카 군벌의 군자금으로 악용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나 버마의 루비처럼 스와트의 ‘블러드 에메랄드’도 탈레반의 손을 거쳐 세계 귀금속 시장으로 팔려간다. 탈레반은 올해 2월 에메랄드 광산을 장악한 이후에만도, 약 300만 달러(약 37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탈레반은 ‘피자 가트’ ‘샤모자이’ ‘구자르 킬리’ 등 유명한 에메랄드 광산을 차례로 장악해갔다. 이 중 약 1320만 캐럿의 에메랄드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자 가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탈레반은 캐낸 에메랄드를 국제시장에 밀수출하는데 주로 타이·이스라엘·스위스 등지로 팔려나간다.

또 이들은 파키스탄 북부의 대리석 채굴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4월에는 지아트라의 대리석 채석장을 점령했다. 지아트라는 파키스탄 정부가 2013년까지 매년 5억 달러 수출 실적을 기대했던 곳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대리석 수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던 이곳에서 탈레반은 대리석 적재 트럭의 통행세로만 매달 1만5000달러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인도 전쟁·분쟁문제학회’ 등은 주장했다. 또한 탈레반은 2007년 8월 이후, 스와트 지역에 있는 미안담 숲 등의 풍부한 목재를 베어다 팔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이 불법 벌목으로 한 해 약 8억 달러를 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탈레반은 ‘돈이 되는’ 모든 것을 군자금 조달을 위한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한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새로운 전쟁에 대해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탈레반의 자금이 바닥나지 않는 한 앞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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