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화예술운동과 연대 서명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고, 문화예술의 자유가 확고히 보장되는 날까지 확대될 것입니다.” 현장 미술인들의 말이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성명에 1000명이 넘는 미술인이 동참했다.   

요즘 현장 예술가들의 화두는 바로 ‘유인촌 장관 퇴진’이다. 블로그 ‘달리는 꽃’을 운영하는 작가 최진욱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정치검찰과 다름없는 유인촌 장관의 퇴진을 요구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블로그 ‘D-Life의 부부성악가’를 운영하는 성악가 부부도 유 장관에게 장관직을 사퇴하고 ‘전원일기’로 돌아가라는 요지의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현장 예술가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부지기수로 볼 수 있는데, 예술대 학생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차이가 있다면 집단으로 한다는 것이다. 홍익대·중앙대·서울대 등 18개 대학 예술대학생회로 구성된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은 6월10일 ‘예술계열 대학생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일방통행을 지속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근본적 정책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요즘 광화문 문화부 청사 앞은 늘 문화예술인들로 북적인다.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이 매주 집회를 열고, 최근 문화부가 감사를 발표해 총장이 사퇴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과 학부모는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인다. 조만간 미술인·영화인·문인·대중음악인으로 구성된 ‘문화행정정상화와 예술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문화예술인 모임)’도 기자회견을 벌일 예정이다. 유 장관을 성토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장이 문화부 앞에 선 셈이다.

왜 이렇게 난리인가? 유인촌 장관은 나쁜 장관인가? 문화부 공무원에게 물어보면 유 장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어느 정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장관에 속한다. 정책에 대한 개념화 능력이 좋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서 유능한 장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유 장관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지나쳐서 문제다. 여기서 능력이란 바로 사람을  밀어 내치는 능력과 특정 세력을 배척하는 능력이다. 유 장관의 집중 견제를 받고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줄줄이 물러났다.
 
문화예술계, ‘유인촌 퇴진론’ 확산

조금 시끄럽기는 했지만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현장 문화예술가의 밥그릇을 건드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꼬였다. 미술계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 장소였던 인사미술공간의 운영방식을 바꾸고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기능을 축소하는 것에 반발했다. 이외에도 각종 국제교류전 지원이 끊기자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변화 방향은 이전에 위탁 운영되던 것이 공모제로 바뀌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작가 고승욱씨는 “기존 지원사업이 공모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현장 미술가들은 공모제로 바뀌는 것의 의미를 잘 안다. 특혜와 비리의 온상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문화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과 유인촌 장관(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

영화계도 상황은 비슷했다. 시네마테크·인디스페이스·미디어액트 등 젊은 영화인을 위한 공간 운영방식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위탁 운영을 하던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을 배제하기 위해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위탁 운영에서 공모제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화부가 영화진흥위원회를 앞세워 ‘좌파 성향 영화인’이 활동하는 단체로 알려진 스크린쿼터문화연대·한국독립영화협회·영화인회의·영화산업노조 등의 힘을 빼기 위해 지원사업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며 많은 현장 영화인이 반발했다. 영화인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이 사업들은 이미 진행되던 민간사업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민간의 성과를 지원한 것이다. 이것을 공모제로 바꾸는 것은 특혜를 주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영화계에서 요즘 문화부의 집중 감사를 받고 있는 곳은 각종 영화제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지연 사무국장은 “정부가 연간 1000만원 남짓 지원하는 조그만 영화제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 요즘 영화계는 폭풍 전야다”라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최종 목표가 부산국제영화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비 중이다. 

문화부가 ‘좌파 적출’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감사에 문화예술 현장 활동가들은 치를 떨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인 송경동 시인은 “조선시대에 왜 역적으로 몰고 삼족을 멸했는지 알 것 같았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니까 삼족을 다 턴 것이다. 정부 감사를 한번 감사해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예종 U-AT 통섭과정은 집기를 살 때 의자를 더 구입해서 낭비했다며 지적받았다. 사무실 연구원 수보다 의자가 2개 더 많다는 것이었다. 책임자였던 심광현 교수는 “그럼 회의할 때는 전부 의자를 가져와서 하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적 사항이 대부분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은 시설물을 번호키로 달아놔서 보안에 소홀했다고 지적을 받았고, 또 번역을 할 때 두 번 해서(한 번은 감수)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당하기도 했다.

‘지원은 안 하고 간섭만 하는 정부’

문화예술계 현장 활동가들은 이런 ‘저인망식 감사’에 분노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그런 기준이라면 유인촌 장관이 새로 임명한 단체장은 한 명도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지난 10년간의 문화예술 정책기조가 ‘지원은 안 하되 간섭은 한다’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 1인시위 모습(맨 위)과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실정을 비판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위).

대중음악계 역시 불만이 고조된 상태다. 문화부가 한국대중음악상 지원금을 끊어서 애를 먹기도 했고, 인디레이블 지원사업도 축소되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아직 기반이 확실하지 않은 현장 예술가들이 힘들어졌다. 클래식 역시 문화부의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반발해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조처가 문화예술 현장 활동가의 단체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들에게는 경제적 산소호흡기를 떼는 정책 변화였지만 지금까지는 밥그릇 때문에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불만은 높았지만 이를 모아낼 주체가 없었고 또 모일 계기도 없었다.  

이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이었다. 하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사태였다. 문화부 집중 감사를 받고 한예종 황지우 총장이 사임하고 진중권 객원교수가 공격받고 심광현 교수에 대한 징계 이야기가 나오는 등 정부의 간섭이 본격화하자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서사창작과를 폐지하고 이론과를 축소하는 등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한예종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자 젊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분노한 것은 이런 ‘한예종 죽이기’가 문화미래포럼이나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의 주문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부 감사의 지적 내용은 지난해 9월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심포지엄에서 나온 내용과 비슷했다. 6월15일 문화미래포럼이 주최한 〈21세기 신문화법 제정〉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로 나선 장원재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과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연기예술학과)는 한예종 민영화를 거론하며 한예종을 흔들었다.

이렇게 비등점을 넘긴 문화예술 현장 활동가를 행동하게 만든 또 하나의 계기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서거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분노의 알갱이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6월9일 작가 선언(188명), 6월13일 미술인 선언(705명), 6월16일 영화인 선언(224명) 등이 줄을 이었다. 

개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순식간에 수백명씩 모이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 참가자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두 가지가 가장 힘들다. 하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이 우르르 모인다.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장르별로 모여 이명박 정부를 성토한 이들은 함께 모여 이명박 정부의 비정상적인 문화행정 문제로 좀 더 예각화해서 제기하기로 하고 문화예술인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상상력에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자회견, 문화예술인 시국토론회, 1인 시위 등을 벌여 정부를 압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시국선언 뒤 본격 문제 제기할 예정

이들은 ‘문화예술을 망치는 이명박 정부에 문화예술적 방식으로 주장을 전달하자’며 다양한 전달 방식을 고민 중이다. 이미 ‘용산참사 140일 해결 촉구 및 6·10 항쟁 22주년 현장 문화제 -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140인 예술행동’에서 현장 예술가들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시인은 참사 현장에 벽시를 쓰고 화가는 벽화를 그리고 공연자는 추모공연을 하는 등 문화예술 시위를 한 바 있다.

이들의 선배도 이런 방법을 지지한다. 미술인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술인회의 창립 주역인 성완경 교수(인하대)는 “내용이 형식을 만들어간다. 형식은 자유롭게 하라”고 말했다. 민중미술인협회 소속인 김용호씨는 “조직을 만들지 마라. 젊은 사람 위주로 움직여라. 발칙하게 가라. 그러면 우리는 따라간다”라고 말하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이처럼 예술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화부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다. 6월17일 한예종의 이의 신청에 대한 조처 내용을 살펴보면 ‘6개원의 이론학과 폐지는 없다’ ‘서사창작과 등 기존 학과는 폐지하지 않는다’ ‘교수 인사 및 징계 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한다’ ‘국립예술 교육기관으로 태어날 수 있는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등 다소 완화된 조처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부의 화해 제스처에 대한 예술활동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진정성이 없는 말 바꾸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유인촌 장관에 대한 비판 공세를 더 높이기로 했다. 이들은 유 장관이 곧 있을 개각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며 ‘문화예술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유 장관 비판에 집중할 예정이다. 유인촌 장관이 이들 예술가의 ‘예술 대공세’를 버텨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