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12일 주한미군의 사드가 배치 예정인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 주민들이 사드배치 반대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SNS에 올린 ‘여섯 글자’ 공약이 수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박근혜 정부가 경북 성주를 사드(THAAD) 포대 예정지로 발표한 2016년 7월13일부터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완료한 2017년 9월7일까지 서울과 성주를 여러 번 오갔다. 참외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트랙터로 비닐하우스를 밀어버렸고, 유기농 먹거리를 교환하던 단체 대화방은 밤새도록 사드 관련 뉴스와 정보를 주고받는 창구가 됐다. 2016년 여름 주민들 손에 들린 촛불이 매일 밤 성주군청 마당을 밝혔다. 거센 반대에 당황한 정부는 당초 성주읍 성산포대였던 예정지를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변경했다. 소성리는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2016년 8월 소성리를 찾았을 때 도금연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교재를 펴놓고 다른 할머니들과 한글 교실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가 길어지며, 촛불집회 때마다 맨 앞에 자리를 잡고 다부지게 팔뚝질을 하는 그에 대해 아는 것도 늘어났다. 고향은 성주 초전면 봉정리이고, 소성리로 시집온 뒤 ‘봉정댁’이라 불렸으며, 자식들이 어렸을 때는 산을 넘어 고향을 찾기도 했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말하는 봉정리는 못해도 서울과 평택쯤 되는 거리처럼 들렸는데 지도 앱을 찾아보니 소성리와 야트막한 동산 하나를 맞대고 있는 바로 옆 마을이었다. 글로벌 군수기업 록히드마틴이 생산하고 미·중 갈등과 국제 정세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사드가 팔십 평생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의 마을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삶에 불쑥 끼어든 그 풍경이 순간 몹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윤석열 후보가 단 여섯 글자로 발표한 ‘사드 추가 배치’ 뒤에는 어떤 이들의 삶이 있다. 비단 사드뿐만이 아니다. 대선후보의 공약은 모두 그렇다. ‘여성가족부 폐지’ ‘탈원전 백지화’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다짜고짜 SNS에 공약을 올리는 방식이 각광을 받자 상대 후보까지 그 흐름에 가세했다. 유권자들의 삶이 가진 무게에 비춰본다면 여섯 글자는 너무 가볍다. 그리고 무례하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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