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쏙 들어오는 두께에 가볍고, 표지마저 귀여운 이 책을 펴는 일이 조금 두려웠다.
저자는 2020년 2월 고기를 끊었다. 채식 생활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 생선과 유제품도 웬만해서는 먹지 않는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독서가 그 계기였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나의 육식 생활에 회의감이나 죄책감이 들면 어쩌지. 치킨을 끊은 삶이란 맥주 없는 삶만큼이나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기우였다. 이 책은 죄책감이 아니라 식욕을 자극했다. 고기가 들어간 육개장 대신, 채소로 국물을 내서 토란 줄기와 취나물의 식감을 살려 ‘채개장’을 끓이는 법을 읽으며 입맛을 다셨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알토란의 맛이 처음으로 궁금했다. 바게트에는 우유와 달걀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밀가루·물·소금·이스트로만 만든 이 빵의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을 묘사한 대목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희한한 건 저자가 멀리하고자 하는 고기나 해산물 요리가 등장하는 일화에도 군침이 돈다는 점이다. 퇴근길 마트에 들른 애인이 살 많은 수게를 골라 사서 손수 찌는 장면이며, ‘빨간 소주’에 안주로 한 점 한 점 고기를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맛나게 읽었다.
그건 아마 저자가 사려 깊은 눈으로 주변과 세상을 살피기 때문일 테다. 그는 서문에서 정육점 사장님, 수산시장 노동자 등을 언급하며 “나를 대신해 살생의 노고를 감수해온 분들에게 나의 어리석은 말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그 ‘사려 깊음’이 인간과 사회를 넘어 더 넓은 곳으로 저자를 이끌었구나, 짐작해본다. 이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삶의 원칙을 가꾸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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