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안철수 교수.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한다는 점에서 이 두 사람을 능가할 이가 있을까? 안철수와 박원순. 의사에서 경영자로, 다시 교수로 일하는 안철수(카이스트 석좌교수). 변호사에서 엔지오 활동가, 사회적 기업인을 거쳐 지금은 민간 싱크탱크를 운영 중인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안정되었는가 싶으면 이내 불안정을 선택해온 이 두 사람이 만나 기업가 정신(Entrepr– eneurship)을 논했다. 안 교수는 최근 희망제작소에 개설된 ‘안철수의 좋은 MBA’ 과정(5주)을 통해 대기업 경영자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로 오독되어온 기업가 정신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 냈다. 이 대담은 지난 5월27일 이종태 경제·국제팀장의 사회로 진행했으며, 이후 〈시사IN〉은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는 기업·기업인을 발굴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안철수(안):실물경제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경제 위기의 주범이 되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기술도 단순 반복적인 일을 줄여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노동을 하자고 발전해온 것인데, 지금은 기술 개발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사람이 기술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모든 사회문제는 어떤 ‘창’을 통해서 불거진다. 예를 들면 벤처 거품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벤처기업으로 불거진 것이지, 벤처 그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번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근본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창을 통해 계속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원순(박):이번 금융 위기가 단지 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 질서의 본질 문제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그동안 지구에 존재하는 유한한 자원에 기초해 성장해왔는데 자원은 과연 계속 공급되는 재화인가. 둘째, 무역은 무조건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사용하는 생산품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라고 한다. 막대한 수송비에도 불구하고 싸니까 중국제를 쓰는데 이는 중국 노동자의 희생에 바탕한 것이다. 특히 한국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데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셋째,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간다고 믿어왔는데 과연 그런지 자문해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의 시대에 어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가?

안:대개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면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아는 게 많다. 기업의 ‘기’자를 ‘바랄 기(企)’자로 쓰는 경우, 비즈니스맨십이나 경영자 마인드를 뜻한다. 반면 ‘일으킬 기(起)’자를 쓰는 경우는 기존에 없던 직업을 만든다는 의미다. 전자는 현상 유지와 기득권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정신’이라는 말과 매치가 안 된다. 기업가 정신의 본래 의미는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기득권에 도전해서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도전과 혁신의 정신이다. 실직자가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것도 대단한 기업가 정신이다.

박:기업가 정신은 단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계층이나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도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부분이 생겨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기업이 시장 내에서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고, 정부와 기업이 서로 경계를 침범하며 융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초기 자본주의 역사에서 막스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윤리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기업의 혁신 노력은 결국 이윤 창출을 위해서가 아닌가?

안:모든 사람이 기업의 목적을 수익 창출이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를 보고 성능이 좋으면 소비자는 그 회사가 값을 부르는 대로 산다. 결국 수익은 기업 활동을 잘하면 나오는 결과이지 수익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수익을 목표로 불량식품을 만든다고 그게 팔리겠나.

기업이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기업의 고용 수준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200만명이었다면 지금은 130만명에 불과하다. 지금은 글로벌한 일자리가 많이 생겼는데도 고용이 과거보다 줄었고 앞으로 더 줄 것이다. 정부에서 대기업에 고용을 늘리라고 하지만 이것은 세계 추세를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오히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쪽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자리들이 건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개인의 힘으로는 안 된다. 대기업도 혼자 성장한 것이 아니지 않나. 이들은 더욱 사회적 약자 그룹이기에 정부·대학·시민이 나서서 도움을 줘야 한다.

“둘러보면 일자리가 넘친다”라는 박원순 이사.
박:미국의 MBA 과정이나 대학 수업에는 사회적 기업이나 엔지오 영역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돈 많이 버는 기업의 수익 성과나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만 가르친다. 기업의 수익성, 경영의 효율성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사회 공헌이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실제 그렇다. 에디슨이 세운 제너럴 일렉트릭(GE)만 하더라도 최근 환경산업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또 소비자 쪽에서는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본의 식품회사 유키지루시는 오스트레일리아산 쇠고기를 국내산으로 속여 팔아 결국 문을 닫았다. 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기업도 하나의 공적 영역이다. 기업가 정신에서 사내 혁신과 공공성은 점점 그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둘 다 중요해지는 추세로 진화하고 있다.

안:우리는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반대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다. 100개 창업하면 99개가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게 실리콘밸리의 힘이다.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면 실패한 기업가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결국 이들은 1000배의 성공을 거둬 이전의 99번 실패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성과를 낸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도 생겨나고 가치도 창출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 실패하면 절대로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재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만 마련되어도 기업가 정신은 살아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 인프라가 필요할까?

안:우선 투자의 개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투자는 이익이 나면 함께 나누고, 손해를 봐도 함께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다. 이면 계약을 통해 빚을 지면 물어내라고 한다. 특히 사업 초기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투자자와 경영자가 함께 참여하는 개념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반면 ‘눈먼 돈’(정부의 직접 지원자금)은 문제다. 원래 덤핑은 잘나가는 회사가 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안되는 회사가 덤핑을 한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계속 눈먼 돈이 공급되니까 망하지 않는다. ‘좀비 이코노미’라고 하는데 좀비 하나가 멀쩡한 사람들을 물어 모두 좀비로 만들 수 있다. 눈먼 돈을 없애야 시장이 작동한다. 실리콘밸리의 핵심은 퇴출도 잘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주는 것이다.

박:내 눈에는 일자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다. 대기업이나 공무원직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농촌이 블루오션이다. 단지 농사를 짓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요즘에는 가공·유통·관광까지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예술과 농업이 결합한 사례도 있다.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농업이 최고의 예술’이라면서 회사 홈페이지에서 농산품 판매를 시작했다. 농업과 관광, 농업과 IT, 이런 창조적 융합이 필요한 시대다. 정권마다

모내기 체험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 박원순 이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눈을 돌려보라며 농촌이 최대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농업에 얼마나 많은 지원금을 쏟았나. 하지만 다 농민의 빚이 되었다. 직접 지원보다는 중간 지원기관을 늘려 지속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다리 구실을 해주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은 창의적이고 도전의식을 갖춘 ‘특별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얘기 같다.

박:전제가 잘못됐다.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는데 사회 구조가 사람을 위축시키고 방해하는 경향이 크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현재 상황을 뛰어넘으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도전해야 길이 열리지 않겠나. 지구 반대편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하고 호기심으로 충만한 시대가 있었다. 누구나 해외로 나가고 진취적인 정신이 빛났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개척정신이 사라진 것 같다. 프런티어의 도전 대상은 히말라야 등정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창업이나 사회운동 등 미답의 경지가 굉장히 많다.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안: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1년쯤 됐다. 많은 분이 요즘 20대를 일러 ‘괴물 세대’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고 도전의식도 컸다. 그런데 어쩌다 20대가 안정추구형이 됐을까 생각해보면 사회 책임이 크다. 사회가 더 큰 압력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누르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특별한 사람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조사해보면 성공한 기업가 중에는 겁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 더 많았다.

이런 학생이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분야가 있지만 1년 동안 고민만 하더라. 나는 그 학생에게 이런 얘기를 해줬다. 강물이 얼마나 빠른지 알려면 양말·신발 벗고 뛰어 들어가야 알 수 있다고. 방향을 한번 잘못 잡으면 복구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들 망설이는데 그 시간도 소중하다. 효율성 기준으로 따지면 나처럼 비효율적으로 산 사람도 없다. 의사·프로그래머·경영자·교수를 거쳤지만 이전의 경험, 지식을 다음 직업에 활용한다는 면에서 보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삶의 태도이다. 인간의 한계를 경험케 한 의대의 엄청난 공부 양이 인내심과 책임감을 길러줬고, 의료봉사 활동이 컴퓨터 무료 백신을 개발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 당시 삶의 태도로 인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만약 강물에 뛰어들어서 실패를 할지언정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다음의 선택에서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전망이나 안정은 덧없는 것이다. 삶의 본질은 불안정성이다. 살아 있는 세포는 불안정하다. 이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그러면 언제 안정될까? 세포막이 터지고 죽으면 평온하고 깨끗해진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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