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경찰 폭력’이 다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을 대상으로 현란한 진압봉 초식을 선보인 경찰 간부에게 ‘사무라이 조’라는 별명이 붙고, 백골단은 보통명사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정부 여당은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고(사이버 모욕죄·인터넷 실명제), 국정원 직무 범위를 확대하며, 휴대전화 감청 등 통신비밀 보호 규정을 완화하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들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신문·방송 관련 개정안은 대자본과 거대 언론이 전체 여론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좌익들은 말로 하면 안 된다. 행동으로 진압해야 한다’며 ‘민노당·전교조·MBC 등 좌익 단체를 해산하라’고 주장하는 극우 집단이 기승을 부린다. 경찰 폭력·집회 및 표현의 제한·극우세력 준동은 ‘민주주의 후퇴’의 삼위일체이며, ‘파시즘의 징후’로도 읽힌다.
“민주주의의 적은 누구인가”
6월8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뉴라이트 계열의 사단법인 시대정신 개최)에서는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정당에서는 제왕적 총재가 부활하면서 사당화(私黨化)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후보 경선이 사라졌다. 제왕적 대통령이 부활하고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도 민주주의 후퇴의 징후이다. 임 교수는 정치 부문 외에서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읽어낸다. 경제·복지·교육 등에서 시장원리만이 강조되면서 공공성과 사회통합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위협이다. 그래서 임 교수에게 촛불시위는 “자기 파괴적인 시장의 운동에 저항해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민주수호 운동이 된다.
그러나 이런 논지가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에게는 “현행법상 불법 시위를,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민들은 (주권자로서)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인민은 그 헌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행 법규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것은 “법치주의·입헌주의의 후퇴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법의 지배(입헌주의)’ 차원에서만 진단할 수는 없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복성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미네르바 기소 및 장자연 관련 수사 등 사례에서 ‘법의 지배’라는 원칙 자체가 유린된 증거를 찾는다.
MB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 시스템’
그래서 이런 추상적 논의의 틀을 벗어나 이명박 정부를 구체적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나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등은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라는 패러다임으로 우리 사회를 읽으려고 시도한다. 예컨대 이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을 시장경제 일변도로 재편하면서, 민중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까지 훼손하거나 후퇴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명박 정부 이전인, 10여 년 전부터 추진되었다. 그러나 추진 주체가 김대중·노무현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의 후퇴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성향상 경찰 기구를 통해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을 분쇄하는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적 사회 분열을 해결하기 쉽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 시스템. 자본에는 약하지만 대중에는 강하고, 자본에 대한 규제는 폐기하지만 대중의 저항은 제도적 폭력으로 완강하게 저지하는 국가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파시즘의 조짐을 읽어내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6월 초에 발간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제9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대해 “그 자체가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한다. 문화이론 전문지인 〈문화과학〉 2009 여름호는 ‘파시즘 X’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파시즘적 경향성’을 짚어보려고 했다. ‘파시즘 X’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파시즘(독일·이탈리아·일본)과 다를 수 있는, ‘미지의 형태의 파시즘’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조건과 한 가지 전략이 공고히 결합하는 경우 이명박 정권은 언제든지 새로운 ‘파시즘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 두 가지 조건이란 바로 △한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하는 경우와 △대다수 국민이 탈정치화되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몰되는 경우다. 이런 정세를 우파가 잘 이용하기만 하면 “‘파시즘 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주장한다.
파시즘이 온다?
또한 파시즘의 미시적 징후들로는 △MB 악법 △이명박 지지도 △미디어 장악 시도 △뉴라이트 운동 △북한과 긴장관계 조성 △20대 청년층의 보수화 등을 들고 있다. 특히 20대 청년층의 경우 소비자본주의 아래서 풍족하게 자랐다. 그러나 경제 불황으로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물적 조건이 소멸하면서 좌절감과 분노, 불안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좌절과 불안이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 전화되면서 파시즘의 한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를 사실상 ‘독재자’로 규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을 제외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 정치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 등 원색적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런데 특정 세력에 대한 규정으로 파시스트, 파시즘, 경찰국가 등은 ‘독재’보다 훨씬 강한 개념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독재자’와는 타협하고 거래할 수 있지만, 파시스트와는 어렵다. 파시스트는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강한 규정들이 지식인 사회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이 위험수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1년4개월여 만에 엄청나게 많고 폭 넓은 정적 집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파시스트처럼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밑으로부터의 파시즘’이라는 대중운동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애국운동(우파 대중운동)’은 대중뿐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정부·여당으로부터도 진지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지식인 사회가 이명박 정부를 호명하는 방식들(파시즘·경찰국가)은, 극우집단이 다른 세력에 퍼붓는 저주(예컨대 친북 좌파)처럼 ‘배제의 논리’로만 작동할 수도 있다. 냉정하고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