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관련된 가상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1안은 2010년 6월2일 치러질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추모 열풍을 막을 경우에 대한 것이다. 선거 10일 전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은 서울광장에 모이리라 예상된다.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기간 때처럼 서울광장을 막는다면?

아마 야당은 노무현 추모 열풍을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 실정 심판’을 외치며 ‘심판 선거’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경우 ‘투표해서 서울광장을 되찾자’고 바람을 일으키면 한나라당은 서울광장을 지키려다 서울시청을 잃는 최악의 경우에 직면할 수 있다. 지자체 선거 특성상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구청장 선거, 광역의회·지방의회 선거는 물론 다른 지자체 선거까지 위태로워진다.

그렇다면 시민에게 서울광장을 열어주는 시나리오 2안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역시 답이 되지 않는다. 선거 막바지에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행사를 허용할 경우 ‘야당세’가 결집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을 들이대서 어느 정도 규제할 수는 있겠지만 야당 후보자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성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사IN〉이 정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6월2일 조사한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한나라당의 ‘서울광장 딜레마’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친노무현 후보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민주당 후보로 나설 경우 각각 45.9% 대 38.2%와 43.8% 대 33.8%로 모두 오세훈 시장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성신여대 손석희 교수와 같은 외부 인물을 영입해 후보로 내세우는 경우도 역시 42.3% 대 35.3%로 오 시장을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오세훈 시장이 이기는 경우는 추미애 의원(39.0% 대 27.0%)처럼 친노 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가 나오는 경우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36.6% 대 31.4%)이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39.3% 대 26.8%)가 출마하는 경우다. 여섯 가지 경우의 수 모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를 제3후보로 상정한 것으로, 노 대표가 10~25%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위협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오세훈 시장 측 역시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일 후 이뤄진 조사이기 때문에 추모 열풍이 반영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오 시장의 한 측근은 “이번 〈시사IN〉 조사(6월2일)도 〈중앙Sunday〉 조사(5월27~28일)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추모와 애도 정서가 극점에 달했을 때 조사가 이뤄진 것이라 ‘노무현 추모 변수’가 과도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오 시장 측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도 시정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고 오 시장 개인에 대한 호감도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며 ‘추모 정국’이 정리되면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중앙Sunday〉 조사에서 오 시장이 다시 출마할 경우 ‘지지하지 않을 것’(47.1%)이라는 응답이 ‘지지할 것’(46.4%)이라는 응답보다 약간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난 뒤에 이뤄진 〈시사IN〉 조사에서는 오 시장의 시정에 대한 평가가 더욱 야박해졌다. ‘시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35.7%)는 응답보다 ‘시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42.3%)는 답이 더 많았다. 특히 ‘매우 잘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9.3%에 그쳤지만 ‘매우 잘못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20.9%에 이르렀다. 오 시장은 주로 여성(특히 가정주부)에게만 호감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 조사가 선거 1년 전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자체 선거와 관련해서 선거 1년 전 조사에서 나타나는 일반 양상은 현직 단체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는 비슷한 양상이었다. 오 시장 지지가 압도적이었으며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야당에도 대적할 대항마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시사저널〉 사태’가 벌어지기 전, 〈시사IN〉 기자들이 〈시사저널〉에 있을 때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누가 지방을 움직이는가’라는 연속기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지자체를 돌며 영향력 조사를 했는데 차기 단체장 관련 조사를 병행했다. 이때 대다수 지자체에서 현직이 우위에 있었는데 유일하게 전북에서 예외가 발생했다.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이 강현욱 당시 전북도지사를 앞선 것이다. 이 조사 결과는 실제 선거 결과로도 이어져서 강 지사는 재선을 포기하고 김 전 시장이 전북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오 시장 측은 남은 1년 동안 대규모 시정 결과물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만회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일단 한강르네상스 사업 결과물이 상암·여의도·반포·뚝섬지구 등에서 곧 나타나게 될 것이고 ‘광화문광장’ ‘동대문파크’ ‘북서울 꿈의 숲’ 등이 차례로 완성되면 오 시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 판단한다. 오 시장의 한 측근은 “오세훈 시장은 일로 평가받을 것이고, 1년이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여성·노인·장애인 등 사회 약자에게 기울인 관심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 오세훈 시장의 경쟁자들은 이에 대해 다르게 판단한다. 이들은 ‘문제는 뉴타운이야’라고 말한다. 이들은 오 시장이 큰 허물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뉴타운 사업에 소극적이어서 재선에 치명적 결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 지역 현역 의원으로부터 비토가 많아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희룡 의원, 오세훈 경쟁자로 떠올라

그러나 한나라당에 오 시장을 대체할 뚜렷한 차기 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 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를 보면 오 시장이 28.9%로 멀찌감치 앞섰고 그 뒤를 원희룡(13.8%), 나경원(7.6%) 의원이 쫓아가고 있다. 그 뒤는 박진(4.8%), 유인촌(3.9%), 정두언(2.8%), 공성진(1.3%), 권영세(0.8%) 순서다.
 

한나라당 쇄신위원장 원희룡 의원(왼쪽)이 나경원 의원(오른쪽)을 제치고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2위로 올라섰다.

2위 그룹을 형성한 원희룡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중앙Sunday〉 조사와 순위가 바뀌었다. 〈중앙Sunday〉 조사에서는 나 의원이 14.1%로 9.1%인 원 의원을 앞섰지만, 〈시사IN〉 조사에서는 둘의 순위와 수치가 바뀌었다. 이는 원 의원이 한나라당 쇄신위원장을 맡아 당 지도부 사퇴와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 그리고 내각 개편 등 강한 쇄신안을 요구하면서 ‘개혁 주자’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원 의원 측은 이런 ‘쇄신위 효과’가 당분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청와대가 쉽게 쇄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샅바 싸움을 하는 기간에 계속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개혁 이미지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 의원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선호도(12.6%)가 좋은 반면 원 의원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선호도(4.5%)가 매우 낮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54% 지지를 얻고 있다.

그 밖에 박진·유인촌·정두언·공성진·권영세 등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당분간은 떠오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중 대중 인지도가 좋은 유인촌 장관이 다크호스로 꼽힌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유 장관의 경우 재산 형성 과정 등에 문제가 있고 문화예술계 단체장 숙청에 앞장서 평판이 좋지 않은 데다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 등으로 조각 때 인책성 교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서울시장 도전이 어려우리라 예상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홍준표 의원이 빠졌다. 홍 의원 쪽에서 “차기 서울시장 출마 의사가 없다”라며 후보군에서 빼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홍 의원은 차기 서울시당위원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경쟁자들은 여전히 홍 의원의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후보끼리 각축하다 지지부진해질 때쯤 홍 의원이 ‘제3 후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뒤늦게 출마 선언을 하며 바람을 일으킨 오 시장처럼 홍 의원이 ‘무혈입성’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오세훈 시장이 야당 후보에게 밀린다는 가상대결 결과는 한나라당 내 서울시장 후보 경쟁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해주리라 보인다. 결과를 알려주자 벌써부터 다른 후보 측에서는 “오세훈이 지는 카드라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반면 오 시장 측에서는 역으로 ‘대안 부재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제2 노풍’은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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