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타이밍’이 중요하듯이 법도 마찬가지다. 최근 오래전 사건 두 건을 다루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달랐다. 한 사건은 제법 오래되었지만, 계기가 생겨 법정에서 억울함을 말할 기회를 가졌다. 결과도 좋았다. 반면 다른 한 사건은 늦어진 행동의 ‘타이밍’ 때문에 아주 간발의 차이로 법정에 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 사건은 혹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거나 세상이 바뀌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깨끗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법원은 다루는 모든 사건의 권리행사가 적절한 기간 내에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예컨대, 행정소송은 통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제기됐는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내에 제기되었는지 살핀다. 부정행위를 이유로 한 이혼 청구는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제기된 것인지 따진다. 법원이 아니더라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지방노동위원회에 낼 때에는 해고가 있었던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징계처분에 대해 교원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할 때에도 처분이 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해야 한다. 각 결정에 따른 이의제기 기간도 모두 다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심지어 앞서 예로 든 ‘기간’의 이름이나 성격이 다르다. 불변기간, 소멸시효, 제척기간, 형사사건의 공소시효…. 제척기간이라 불리는 어떤 기간은 시간이 지나면 죽었다 깨어나도 다툴 수 없다. 소멸시효라 불리는 기간은 일단 상대방이 항변을 하는지 지켜보고 재항변할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 상대방이 말하는 그날보다 훨씬 뒤 ‘그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세상만사와 마찬가지로 법에서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적절한 때를 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법은 똑같은 시간이라도 복잡하게 이름 붙이고 기간을 정해두었기에 ‘두고 보느라’ 제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사건 초기에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것도 이때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찰서에 가기 전에, 통지서를 받자마자 변호사를 만난다면 적절한 타이밍을 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법적인 타이밍을 정하는 데는 우물쭈물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법을 통한 권리구제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내가 잘못한 게 있든 없든 상대방과 법원의 질문에 신경 써서 답해야 한다. 또 법원으로 사건이 가는 순간, 신속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를 감수하고라도 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갈지 말지, 법정에서 내 이야기를 할지 말지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현대의 법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도 어느 정도 보호받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한 변호사의 얕은 믿음은 아직 근대의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식 위에 설계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법언에 어떤 균열도 주지 못했다. 결국 법의 ‘타이밍’도 권리 위에 잠잘지 말지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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