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시간, 노 전 대통령에게 독서는 위안과 기쁨이었다.
퇴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고시 준비하던 때로 돌아간 듯 공부의 기쁨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3월9일에 쓴 글에서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발견했을 때, 깊이 생각하여 새로운 이치를 깨달았다 싶을 때, 혼자 생각한 이치를 훌륭한 사람이 쓴 책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저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거리기도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고 ‘형님’이 구속되면서 칩거 생활에 들어간 노 전 대통령은 공부 패턴을 달리했다. 더욱 맹렬해졌음은 물론이고, 참모들과 함께 공동연구·공동집필 방식으로 고민을 발전시켜갔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기억하는 ‘노무현 학생’은 이랬다. 

“굉장히 학습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빠르고 중학교 때 읽은 고전, 자연과학 서적을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다. 학습량도 많았다. 어려운 이론서를 2~3일에 해치우고 참모들이 올린 리포트도 꼼꼼히 읽었다. 학자들이 공부하는 방식과 달랐다. 책의 내용을 동어반복하지 않았다. 자기 식으로 소화해 말했다. 토론 중에 가끔 허공을 바라보셨는데 한참을 몰입해 있다가 나온 말은 툭 던지듯 간단했다. 고집도 무척 세다. 한 주제를 가지고 끈질기게 토론한다. 막 성질은 내지만 대화는 계속 이어갔다. 대통령이 ‘마, 고만합시다’ 해야 끝이 난다.” 또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가르치려는 태도는 금물이다. 책 한 권을 권하더라도 ‘이 책의 이런 내용은 대통령님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아요’라며 자연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봉하로 내려가서도 노 전 대통령은 독서광이었다. 최근까지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면서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이 최근 읽은 책은 로버트 라이시의 〈국가의 일〉과 〈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달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강정인 〈민주주의의 한국적 수용〉, 알렉스 스테픈 〈월드 체인징〉, 기 소르망 〈진보와 그의 적들〉, 필립 볼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 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 패트리셔 애버딘 〈메가트렌드 2010-새로운 세기를 주도하는 7가지〉, 제레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제프리 삭스 〈빈곤의 종말〉, 고은 〈개념의 숲〉 등이 있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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