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오후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김해 봉하마을의 한 건물 옥상에서 노사모 회원들이 보수 언론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찰’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보수 언론의 첫 반응은 역시 그들다웠다.

동아일보(동아)는 5월24일자 사설에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권력 비리였다. 죽음이 국가 이미지를 손상하고 청소년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썼다. 조선일보(조선)는 한술 더 떠 “홍위병에 가까운 세력들이 노 대통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한 전방위 공격을 퍼부었다. 그 결과 대통령 권력은 감시·견제·비판으로부터 해방되면서 결국은 권력 자체의 비리의 무게로 붕괴됐다”라며 죽음의 근본 책임을 사실상 노 전 대통령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과연 조선 측 주장대로일까? 참여정부 때 조선을 비롯한 보수 언론만큼 감시·견제·비판 구실을 ‘충실히’ 그리고 ‘확실하게’ 했던 언론이 또 있었을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비판받아

이는 수치상으로도 여실히 확인된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최영재 교수가 2005년 2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조선으로부터 가장 많은 공격을 당했다. 1면에 게재된 노 전 대통령 관련 기사 중 50%가 부정적인 논조로 나타나 전두환(0.8%), 김영삼(16.0%), 김대중(28.1%) 전 대통령을 압도한 것이다. 사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조사에서 조선은 89%, 동아는 93%가 부정적인 논조로 분석되었고, 이 역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치였다.

물론 비판은 언론의 본령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이 과연 얼마나 사실에 근거했는지, 설득력과 일관성이 있는지, ‘사적 감정’을 배제했는지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보수 언론은 별로 항변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참여정부 측이 드는 대표 사례는 이른바 ‘부동산 세금 폭탄론’이다. 보수 언론은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보유세 폭탄 현실화되나”(조선) “세금폭탄에 집값 견딜까”(중앙) “부동산 세금폭탄 2%만 때린다는 거짓말”(동아)이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2007년 종합부동산세 개인 주택분 납세자는 전체 1777만 세대 가운데 2.1%로, 이 중 63.5%가 2채 이상 다주택 보유자다”라며 사실 왜곡은 물론이고 ‘재산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시장경제의 기본도 무시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예의 ‘같은 사안, 다른 보도 태도’가 확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8월 터진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 비리 관련 보도를 보자. 당시 조·중·동은 사건이 처음 보도된 8월1일부터 8월6일까지 기사·사설을 모두 합해 각각 10건·13건·9건을 지면에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과거 노 대통령 친인척 비리 의혹이 터져나왔을 때 비하면 매우 소극적인 것이었다. 민언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3년 5월 한나라당이 친형 노건평씨에 대한 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조선은 5일 동안 모두 21건의 기사·사설을 쏟아냈다. 김옥희씨 건과 달리 전혀 객관적 근거가 없었고 결국 수사 대상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조선은 심지어 2006년 8월에는 권기재 전 청와대 행정관의 사행성 게임 비리 개입 의혹과 관련해 “서로가 알았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게 당연”하다며 ‘권양숙 여사와 20촌 관계’인 사실을 문제 삼기도 했다.

최소한의 이성·지성이 있는가

물론 보수 언론 쪽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정치인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다. ‘최후의 독재권력’ ‘조폭’ ‘부실한 상품’ 등 가장 높은 수위의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참여정부는 “정부는 정부의 길을,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가야 한다”라는 원칙 아래 ‘사술’을 쓰지는 않았다. 보수 언론을 제압하기 위해 부도덕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썼다는, 눈에 띌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광고 수주액 이야기가 나오지만, 참여정부 때 정부 광고를 많이 받은 신문사 1·2·3위가 중앙(248억원)·조선(205억원)·동아(198억원)였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최소한의 이성’도 의심되는 경우가 숱했다. 특히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된 이후 조선 김대중 고문이 휘두른 필봉은 가히 우리나라 최고 보수 논객다웠다. 그는 지난 3월30일자 칼럼에서 “노무현씨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후임 정권에 약을 올린 대통령이다. 어쩌면 노씨와 그의 사람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정도는 노씨 등이 너무 까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라고 조롱한 데 이어 4월27일자 칼럼에서는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 수준이다.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쓴 것이 더 부끄럽다”라고 한층 더 조롱의 수위를 높였다.

이 칼럼에 대해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은 이렇게 개탄한다. “그렇다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처럼 수천억원대의 뇌물을 받아야 덜 창피하고, ‘2류 기업’인 태광실업이 아니라 재벌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야 덜 부끄럽다는 말인가. 언론의 이 같은 반지성적인 태도는 독자들을 더욱 절망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비단 보수 언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진보·개혁 언론에 대해서도 ‘책임론’을 거론하며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위기에 휩쓸려 별 근거도 없이 ‘죽이기’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너무 쉽게 단정하고 너무 쉽게 각을 세워 선정성만을 추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물론 〈시사IN〉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을 가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싫고, 아무리 밉더라도’ 정도에 어긋남이 없는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게 조·중·동을 닮지 않는 길이다.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