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은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지난 10년간의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1년이 지나면서 이러한 자신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의 구속은 현 정부의 반동이 단지 좌파 혹은 진보 진영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보수 세력의 굳건한 지지를 받지만 진보 세력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2007년 보수단체 집회장을 찾은 박 전 대표(오른쪽).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높아질수록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이하 존칭 생략)가 이익을 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3김 이후 한국 정치에서 유일한 대중정치인이다. 박근혜는 영남 지역과 50대 이상 유권자에게 많이 쏠려 있기는 하지만 전체 유권자 안에서도 15%가 넘는 ‘개인 지지도’를 갖고 있다. 이는 30년 동안 한국 정치를 좌우했던 3김 중에서도 김종필은 갖고 있지 못한 자산이었고, 정치 지형으로부터 독립적인 순수한 개인 지지도라는 면에서는 김대중을 능가한다.

박근혜의 ‘인기’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과 ‘묻지 마 지지도’라는 의미에서 ‘팬클럽’ 정치라는 21세기적 현상이 빚어냈다. 박근혜가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은 복합적이다. ‘친박’ 그룹의 일원인 이혜훈 의원의 말처럼 “퍼포먼스가 좋았던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대”와 “부모가 모두 불행한 죽음을 맞은 가족사에 대한 연민”이 공존한다. 이 유산에는 광범위한 민주화 세력에게 거부되는 부정적 면도 당연히 있다. 어찌되었건 박근혜의 유산은 정몽준 의원이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과는 달리 ‘스토리’가 있다. 이 풍부한 스토리들은 접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며 박근혜 지지층의 정서적 토대를 만들어낸다.

박근혜 특유의 신비주의도 ‘팬클럽’의 확대에 기여한다. 박근혜의 정치는 짧은 몇 마디 말과 오랜 침묵으로 구성된다. 박근혜는 괴한의 피습을 받아 쓰러진 이후 병상에서 내놓은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충청권의 판세를 역전시켰고, 당내 반대파가 주도한 공천에 맞서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선언으로 정국을 뒤흔들었다.

박근혜의 대중적 인기와 달리 진보 진영의 평가는 “독재자의 딸이며,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보수적이며, 콘텐츠가 부족한 감성형 지도자”로 집약된다. 1966~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전통에 서 있는 진보 진영이 박근혜를 강하게 비토하는 것은 언뜻 자연스럽다. 나아가 한나라당에 강력한 거부감을 가진 진보 진영이 2004년의 위기에서 한나라당을 구해낸 박근혜를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의 평가가 다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사진기자단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왼쪽)와 박근혜 전 대표(오른쪽)는 지지 세력이 겹친다.

아직 진보 진영 평가는 낮아

먼저 ‘독재자의 딸’이라는 딱지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박근혜씨는 유신권력의 중심에 실제 서 있었던 사람이며 박씨의 정치적 입지는 그때 마련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도 “박근혜씨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으므로 연좌제라고 볼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친일파의 자식이 대통령이 된다는 게 물론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로 반대한다는 것은 연좌제의 하나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한 교수는 “박근혜 대표는 2004년 총선을 지나면서 박정희의 정치가 아닌 박근혜의 정치를 시작했다”라며 박근혜를 그저 ‘독재자의 딸’로만 보는 것은 진보 진영의 게으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 교수가 말한 ‘박근혜의 정치’는 정치권에서도 받아들여진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점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오늘의 박근혜를 규정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박근혜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 역시 다소 과장되었다고 보인다. 박근혜는 2002년 이회창 총재의 ‘독단’에 항의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현재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 중에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난 정치인은 박근혜가 유일하다. 물론 박근혜는 이를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주변 보수 정치인들 역시 이를 거론하지 않음으로써 이 사건은 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측근의 평가를 모아보면 박근혜가 남북 관계에 대해 한나라당 주류의 인식과는 다른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박근혜가 보수 이미지에 갇히게 된 것은 2004년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논쟁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취한 사실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실용주의를 내세운 탓이 크다. 자연스럽게 보수 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이계에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가 포진해 있고, 친박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이런 이미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근혜가 이명박 현 대통령에 비해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박근혜는 ‘예측 가능한 보수’

박근혜는 2004년과 2006년의 전국 선거에서 자신의 지론이었던 상향식 공천 약속을 지켰고, 최근 들어서는 경제 정책에서도 온정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유의할 점은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논쟁 당시에도 박근혜는 국가보안법에서 고무·찬양과 같은 독소 조항을 빼자는 쪽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현 집권 세력에 비해 박근혜는 ‘예측 가능한 보수’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연이은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의 매력 혹은 약점이 부각되는 바람에 차기 대선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났다. 그러나 진보 혹은 민주·진보 진영의 처지에서 이렇게 후보자의 개성이 강조되는 선거가 꼭 유리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진보가 다수 서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면 스타를 앞세우기보다 정상적인 정책 대결이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는 아직도 3년 이상 남았고,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박근혜에 대한 지나친 ‘딱지 붙이기’보다 그를 보통의 보수적 정치 지도자로 보는 것이 민주·진보 진영에게는 더 도움이 되는 출발일 것이다. 뛰어난 장수는 이기기보다 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자명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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