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왼쪽)은 모두 세습 의원이다.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전격 사임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비서가 체포된 지 달포 만의 일이다. 자민당은 오자와 대표의 도중하차가 총선에 득이 된다고 판단되면 선거 일정을 대폭 앞당길 태세이다. 반면 열세가 호전되지 않는다고 보면 총선 일정을 여름 이후로 미룰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종 시한은 중의원 의원 임기가 만료하는 9월 말이다.

일본은 지금 “백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연히 경기부양책이 차기 중의원 총선거의 최대 초점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기 부양보다는 ‘세습 제한’과 ‘정치헌금 규제’를 양대 초점으로 부각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의원직 세습 문제’가 선거전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요미우리 신문이 집계한 것을 보면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의원 303명 가운데 이른바 ‘세습 의원’이 3분의 1을 넘는 107명이다. 여기서 ‘세습 의원’이란 형제자매·부모·조부모 등 3등신(3대) 이내의 혈족과 배우자가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배우자의 형제자매·부모 등 2등신(2대) 이내의 인척을 국회의원으로 둔 사람을 말한다.

각료 17명 중 11명이 ‘세습 의원’

아소 내각의 각료 17명 중에서도 절반이 넘은 11명이 ‘2세·3세 의원’이다. 주요한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아소 다로 총리 외조부는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이다. 부친은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상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장남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조부와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은  ‘3세 의원’이다. 고이즈미는 차기 중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거구는 2남인 신지로에게 대물림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 부친 신타로가 외상을 지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의 장남이다.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전체 중의원 의원 111명 가운데 16명이 세습 의원이다. 사임한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는 건설상을 지낸 부친의 이와테 선거구를 물려받아 20대 후반에 국회에 진출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은 증조부 때부터 시작해서 4대째 대물림해 오고 있다. 그의 증조부는 중의원 의장, 조부는 총리, 부친은 외상을 지냈다. 게다가 친동생 구니오는 현재 아소 내각의 총무상이다.

그렇다면 세습 의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지반(후원회 조직)’ ‘간판(지명도)’ ‘가방(자금력)’, 이른바 ‘3종 세트’를 친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세습 후보가 선거전에서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 사회가 정체기에 접어든 것은 국회의원직이 가업(家業)으로 대물림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의원 세습 탓에 민주주의 약화”

민주당 정치개혁추진본부의 오카다 가쓰야 본부장도 최근 한 강연회에서 “세습이 일본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의 약 8할이 세습 의원의 입후보 제한에 찬성함에 따라 “현직 의원이 은퇴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3등신(3대) 이내의 친족이 계속해서 동일 선거구에 입후보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규정을 정권 공약에 명기할 방침이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오른쪽)는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의 장남이다. ‘세습 의원 입후보 제한’에 반대하는 아소 다로 총리(왼쪽) 역시 세습 의원이다.
세습 후보의 입후보 제한 움직임에 대해 자민당의 대응은 엇갈린다. 세습 의원의 대표 주자인 아소 다로 총리는 “내가 중의원 의원에 처음 출마한 것은 부친이 국회의원을 그만둔 25년 뒤이다. 양자가 된 사람도 세습 조항에 걸리는가”라고 반문했다. 부친이 중의원 의원을 지낸 고무라 마사히코 전 외상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덩샤오핑의 말을 인용하면서 “2세 의원이든 자수성가한 의원이든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가 좋은 정치가다”라고 반발했다.

증조부가 중의원 의장, 조부가 총리, 부친이 외상을 지낸 하토야마 구니오 총무상도 “직업 선택의 자유에 저촉되기 때문에 법적 규제는 불가하다”라고 말한다. 모리 에이스케 법무상은 자신의 집안이 다이쇼 15년부터 85년간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내왔다는 점을 밝히면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입후보를 배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자민당의 ‘비세습파’는 민주당의 입후보 제한에 동조하는 편이다. 어렵게 대학을 나와서 국회의원 비서를 거쳐 중의원 의원에 당선한 스가 요시히데 선거대책 부위원장이 바로 그렇다. 스가 부위원장은 국회의원의 세습 제한을 지향하는 의원연맹인  ‘새로운 정치를 개척하는 모임’을 5월21일 발족할 방침이다.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의 아들인 고노 다로 의원을 회장으로 추대해 입후보 제한뿐 아니라 국회의원 정수를 1할 이상 삭감하는 안도 함께 마련할 예정이다.

세습 후보의 입후보를 제한하는 문제가 차기 중의원 총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세습 후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출마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사히 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차기 중의원 총선거 입후보 예정자 881명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133명이 세습 후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민당의 세습 후보 비율은 33%를 넘었다. 또 약 8할은 부모의 선거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가부키·다도·꽃꽂이와 같은 전통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물림. 차기 중의원 선거는 그런 세습 관행이 국정 무대에서도 허용될 수 있는지를 가리는 한판 승부가 될 전망이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