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얼음 호수 장면을 기억하는가. 조선 궁의 후원에서 좀비와 인간이 전투를 벌인다. (※스포일러 주의) 가운데 작은 인공섬을 둘러싸고 빙판이 쫙쫙 갈라지는 장면을 보며 신지선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 대표(37)는 일반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아, 저기가 설정상 아마 경복궁 향원지(香遠池, 경복궁 후원에 위치한 인공 연못)겠구나.’

신 대표는 한국 정원 ‘덕후’다. 한국 정원이 좋아서 10년 가까이 그것을 연구하고 강연과 투어 등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조경학을 전공하고 조경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뒀다. 먹고살아야 하니 조경 기사 자격증을 따고 문화재 수리 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책으로만 외우니 영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직접 봐야겠다 싶어서 차에 책과 카메라를 싣고 전국의 정원 문화유산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필기시험 대비 심화 암기’를 위해 떠난 여행이 신 대표의 인생을 바꾸었다.

신 대표는 경북 영주시 부석사 올라가는 길, 아홉 단마다 놓인 3m 높이의 석축 앞에서 얼어붙었다. 9세기 ‘막쌓기’라는 공법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크고 작은 돌들을 불규칙하게 쌓아서 이토록 튼튼하고 아름다워질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알고 ‘막’ 쌓았는지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웠다. 경북 경주시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는 호수 가장자리에 배치된 1000여 개의 큰 돌들 사이 규칙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경사와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는 그 배치에 분명 공간 연출자의 의도와 정성이 담겨 있었다. 대다수가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집중하고 동궁과 월지 야경에 환호할 때 신 대표는 ‘한국적 공간의 맥락’과 ‘한국 전통문화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매료됐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잘 모른다는 게 속상했고 알리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신 대표가 정의하는 정원이란 단순히 꽃과 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한 문화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건축물이 배치된 지형과 위치, 방향과 모양새 자체가 모두 정원의 일부다. 정원은 건축물을 한층 빛나게 해주는 배경일 뿐 아니라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 바라보고 사유하던 공간의 핵심이다. 신 대표는 조선시대 농업 백과사전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정원 조성 방법을 예로 들었다. “정자 하나를 만든다고 할 때 어디에 지을지, 어떻게 숲을 조성하고 물길을 만들고 울타리를 지을지 다 정한 다음 정자를 만들어요. 정자를 만든 목적은 그 안에서 주변 경치를 보기 위함인데 우리는 바깥에서 건물 하나의 겉모습만 보며 옛 공간문화를 단편적으로 관람하고 있어요.” 문화재 복원을 할 때 주변은 다 무시하고 건물 하나만 덜렁 복원한다고 우리의 전통 공간문화가 되살아나기 힘든 이유다.

신 대표는 한국 전통 정원이 품고 있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일이 다음 우리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복과 판소리가 ‘범 내려온다’의 힙한 글로벌 콘텐츠가 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정원 역시 언젠가는 고리타분한 옛것의 벽을 깨고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알고 사랑해준다면.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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