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강의하신 분들 보니 거의 자녀 교육에 성공하셨더라. 나는 성공 사례가 아니다. 잘못한 점이 많다. 다시 학부모 노릇하라고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아이들이 벌써 다 커버렸다. 큰애가 대학생이고, 둘째가 고3이다.

먼저, 한국 교육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보시라. 역시 한 분도 없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거다. 이걸 내 식으로 정리하면 투입 대비 산출이 너무 낮다는 거다. 한국의 교육열은 아무도 못 따라간다. 학습에 들이는 시간이며 사교육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이는 비용에 비해 산출은 낮다. 중·고교 때 PISA(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수위를 다툰다는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바보가 된다. 국가 경쟁력도 낮고, 대학 경쟁력도 낮다. 자살률은 세계 1위다.

ⓒ전문수조기숙 교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가 5월4일 ‘입시 담당 교수가 제안하는 입시지옥 탈출 솔루션’을 강의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파악해서 처방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목소리가 있다. 먼저 보수는 입시 지옥의 원인을 평준화와 3불(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정책에서 찾는다. 반면 좌파 지식인이나 전교조는 신자유주의와 경쟁 위주 교육에서 찾는다. 원인 진단이 다르니 해결책도 다르다. 보수는 3불 폐지를 주장하고, 좌파는 일체의 경쟁과 서열화를 반대한다. 보수의 이상은 미국이고, 진보의 이상은 유럽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가〉(2007)를 쓴 것도 미국에 가서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며 겪은 실상이 기존에 알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는 미국의 입시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떠들지만 실제로 보니 미국 학교의 90%는 공립학교였다. 한국 언론이 주로 다루는 명문 사립형 기숙학교는 10%에 불과했고, 그중 50%는 종교계였다. 시험으로 학생을 뽑는 학교는 극소수였다. 내가 이른바 10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들 곧 빌 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제리 양 등을 조사해봤는데 이 중 빌 게이츠를 뺀 나머지는 모두 공립학교를 다녔다. 평준화가 수월성 교육을 망친다는 보수의 주장이 거짓인 셈이다.

그렇다고 좌파들이 주장하는 유럽형 모델이 정답이냐?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유럽은 다르다. 무엇보다 유럽에는 계급사회 전통이 존재한다. 독일 교수한테 왜 너네 학생들은 그렇게 똑똑하냐고 물으니 “똑똑한 애들만 대학에 가니까 그렇다”라고 대답하더라. 아버지가 노동자면 자녀도 대학 가는 걸 싫어한다. 노동자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굳이 대학 가서 찬밥 될 이유가 없다는 거다. 프랑스 또한 대학이 평준화됐다고는 하지만 그랑제콜 출신 소수 엘리트가 나라를 움직이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핀란드는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하다. 국민 개인의 조세부담률은 40~60% 수준이다. 그런데 인구 4500만명에 조세부담률이 23% 수준인 한국이 핀란드 모델을 따라 한다?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양쪽 다 문제가 있는데도 한국 사람은 좌파 쪽보다는 평준화를 해체하자는 보수주의자의 주장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과거 이런 줄 세우기식 교육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신분 상승에도 용이했다. 사법고시 등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는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는 환상이 남아 있는 듯하다. 여기에는 학벌 사회·불신 사회라는 특유의 구조적 문제도 얽혀 있다. 교사도, 대학도 못 믿겠고 0.001까지 성적으로 줄 세워 뽑는 것이 그나마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는 거다. 그런데 과연 성적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가장 공정한 것일까? 미국 대학은 왜 시골 1등과 명문고 1등을 동등하게 쳐주는 것일까? 학생의 잠재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날품팔이하는 부모 밑에서 1등 한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준다. 그런 환경을 이겨낸 아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체제에서 살아남는 교육도 무시 말아야

좌우 공히 엉터리 진단과 해결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선택할 길은 세 가지다. 현 체제에 충성하거나, 탈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충성파는 열심히 학원 다니며 제도 내에서 살길을 찾고, 탈출파는 대안학교나 외국 유학 같은 탈출구를 찾는다. 기존 틀은 못 참겠고 그렇다고 내 나라 떠나기도 싫은 사람들은 이런 시민단체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거고. 나는 이 중 현명한 부모가 선택할 길은 충성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녀 교육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현실을 무시해서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며 만능 선수로 키우는 엄마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아이를 자유방임형으로 키웠다. 학원 안 보내고 공부하라는 얘기도 따로 하지 않았다. 왜? 내가 그렇게 컸으니까. 내가 멋대로 커서 학교에 잘 안 가고 공부도 안 했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 만족했기 때문에 아이들한테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우리 때는 그렇게 해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수업 안 듣고  ‘땡땡이’ 치더라도 고3 후반에 공부 열심히 하면 막판 뒤집기가 가능했다. 그때는 대학 진학률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과외하는 애들도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세상 바뀐 걸 몰랐다. 뒤늦게 철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공부를 시작했다. 유대인 자녀 교육법을 보니, 일단 성공적으로 큰 아이들은 부모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은 부모 중 주로 아버지가 자녀 교육을 담당한다. 아버지가 질문을 많이 해서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다. 유대인 부모는 또 자녀의 재능을 일찍부터 찾아주어 체제 내에서 성공할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가장 나쁜 부모가 자유방임형이다. 관리형(매니저형) 부모는 그보다 낫다. 가장 성공하는 부모는 리더형 부모이다. 아이에게 적절한 지적 자극을 주면서 동기를 부여해주는 부모가 돼야 한다. 리더형 부모가 되려면 사회문제를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입시 지옥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건 국민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처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교육에 고통받고 있음에도 나만 안 시켰다가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슬을 끊지 못한다. 야구 볼 때 맨 앞사람이 일어나면 뒷사람도 다 일어나게 돼 있다. 더 잘 보고 싶은 사람은 의자 쌓아놓고 올라가고. 그러다 의자 무너지면 모두 압사한다. 이게 지옥이다. 지옥에서는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다. 대통령 하나 잘 뽑는다고 바뀔 일도 아니다. 국민 전체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의사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정책은 따라오게 돼 있다. 쇠고기 파동 때 보지 않았나? 국민이 강하게 요구하면 정부는 바꾸는 시늉이라도 한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세기와 21세기는 다르다. 사교육으로 무장한 아이보다 사교육받지 않은 아이들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21세기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은 정답보다는 나만의 답을 찾아내는 학생, 도전적이고 창의력이 있는 학생, 이웃과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는 학생이다. 사회가 이렇게 바뀔 수 있도록 부모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부모가 교육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합쳐야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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