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20년 8월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 학생들이 의사 정원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 본과 4년생들에게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기회를 추가로 준다. 매년 하반기 한 차례 치러지던 시험을 올해는 상반기에 한 차례 더 시행한다. 지난해 9월,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에 반대하는 의사 집단휴진에 동조하며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했다.

표면적으로는 운영상 두 차례로 나누어 시험을 보지만, 추가로 열리는 1월23일 실기시험에는 지난해 실기시험을 거부한 의대생 2700여 명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구제’인 셈이다. 올해 실기시험 예정 인원인 본과 4년생 3200여 명은 2021년 9월에 열릴 실기시험에만 응시할 수 있다. 지난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는 의대생 14%(423명)만 응시했다. 이때의 합격자가 2021년 1월7~8일 치른 필기시험에 통과하면 의사 면허를 획득한다. 반면 지난해 실기시험을 거부한 이들은 필기시험을 치르고 2주 뒤 곧바로 실기시험을 본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국시 거부 여부와 관계없이, 시험에 합격한 의대생은 3월부터 의료 현장에 배치된다.

여론은 반발했다. 의대생에게 추가 시험을 부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시험과 달리 의사 국시만 응시 거부자에게 특혜를 제공한다’ ‘자기들이 싫다고 한 걸 왜 정부가 구제하느냐’ 등 싸늘한 반응이 나왔다.

이 같은 반응에도 정부는 의사 국시를 강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법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의사 국시 90일 전(1월23일 국시를 시행한다면, 90일 전은 지난해 10월 말)에 시험 일시와 장소, 응시원서 제출 기간 등을 공고해야 한다. 현재 내놓은 ‘구제’ 방안은 시행령과 어긋난다. 보건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공고 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응시는 없다’고 밝혀온 정부가 여론 일각의 비난을 감수하고, 법령까지 바꿔가며 결정을 뒤집은 까닭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코로나19 3차 대유행을 든다. 지난해 12월31일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진의 피로도가 날로 심화하고 있으며 공공의료 분야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필요성도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더 복잡하다. 먼저 의사 면허라는 독특한 제도를 볼 필요가 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40개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동일하다. 법조와 마찬가지로 의료는 ‘자유로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조정된다’는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영역이다. ‘치료받을 권리’가 현실에서 온전히 보장받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공공성을 떼어놓고 의료시스템을 설계할 수 없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로 간주되는 까닭에 대부분 국가에서는 의사 수를 인위적으로 정해서 그들이 ‘의료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도록 허용한다.

이렇게 정부는 의료 수요를 파악하고 의료 공급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 면허제는 양날의 칼이다”라고 말했다. “잘 관리되면 수요와 공급을 조화시킬 수 있지만, 이번 사태처럼 관리가 안 되면 의료 공백이 생긴다.” 다른 직종의 경우, 파업이 일어나면 사용자 측은 새로운 인력의 투입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의료 부문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의료 인력의 수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서울의 대형병원 한 곳에만 매년 100여 명의 인턴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시를 거부한 2700명의 빈자리를 메우려면 레지던트나 교수가 그만큼 더 뛰어야 한다. 집단 휴진 때 그랬던 것처럼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틴다’. 결국 이 같은 사정을 아는 의료계 내부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단호한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결국 ‘양보하고 말 것’이라고 관측해왔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정부가 애초에 버틸 생각이 없었다고 본다. 코로나19 핑계를 대지만, 신규 의사 2700명이 배출된다고 해서 상황이 당장 나아질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20년 12월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의사 국시 시행방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쓰든 백약이 무효할 것

정부는 올 1월에 배출되는 의료 인력을 서울의료원, 적십자병원 같은 공공병원과 지방 병원에 배치하는 계획을 고안했다. ‘공공의료 강화’ ‘취약지 의료 공백 방지’ ‘필수의료 분야 인력 확충’을 위한 설계다. 이번 ‘구제’로 배출될 의사는 2700여 명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전국 병원의 인턴으로 배치할 정원을 2000명으로 예정했다(공중보건의, 재수생,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는 이들을 뺀 수다). 지방 병원과 공공병원이 인턴 정원의 50%(1000명)와 32%(640명)씩을 각각 뽑게 된다. 당초 지방 병원 40%, 공공병원 27%이던 비율을 조금씩 더 늘렸다. 보건복지부가 병원마다 인턴 정원을 배정하면 해당 병원이 모집을 공고한다.

정부 방안대로 운용이 가능할까? 냉정하게 보면 정부가 정원을 늘려도 면허를 딴 의사가 인턴을 지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관련 환자의 80%를 공공병원에서 전담하고 있다. 김윤 교수는 ‘코로나19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의대생 국시 재응시 발표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의사 국시를 허용해서 배출된 의사가 공공병원에서 인턴을 하길 희망할까? 공공병원에서 수련하는 인턴은 엄격하게 보면 5% 정도다. 지난해 인턴 3182명 중 공공병원에 배정된 인원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 공공병원에서는 일부 전공의가 ‘코로나19 환자만 보는 상황에서 다른 질환에 대해 배울 수 없어 수련을 망친다’고 보건복지부에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당장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가장 원만하게 가용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은 공중보건의뿐이다. 이들은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가 취약한 지역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다. 정부는 의사 ‘구제’ 방안을 내놓으며 “공보의 380명이 부족하며 취약지의 필수의료 제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전국 보건소, 보건지소, 교정시설, 정부기관에 공중보건의 19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한 의료 공급을 공중보건의로 겨우 메운다. 현재 이 가운데 약 20%인 380여 명이 차출돼 공공병원과 생활치료센터 등 코로나19 감염관리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다.

정부는 국시 거부 의사를 구제하면서 코로나19 국면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명분과 ‘신규 의사 배출 정상화’라는 실리를 얻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보기에는 사실상 백기 투항하는 모양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시를 허용하면서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정치적 대응일 뿐이다. 국시 거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의료계 집단 휴진에서 비롯됐다. 이때 의료수가 책정 문제, 지방 인력난, 의사 수 확충 등 오랫동안 묵혀 있던 상당한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가 당장 의료 체계에 개입할 방법은 없다. 어떤 정책을 쓰든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공공의료 강화를 목표로 ‘통 큰 양보’를 한 정부가 얻을 실익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손에 쥔 카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의 길을 어떻게 향해 갈지,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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