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일에 더 이상 윤리도 도덕도 들이대지 못하게 된 시대에 〈몽실 언니〉를 다시 읽었다. 나와 남을 구별 짓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정책과 집단에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거지’라는 말을 여러 가지 단어에 조합해보는 일이 무슨 놀이나 유행처럼 돼버린 나라에서 〈몽실 언니〉는 여전히 너무 슬프고 비참한 책이다.

주인공인 몽실이는 진정한 사전적 의미의 ‘거지’ 아이다. 전쟁통에 부모도 집도 잃었다. 동냥으로 얻은 쌀 한 줌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암죽을 만들어 갓난아기인 이복동생을 먹여 살렸다. 먹을 것과 몸 누일 곳을 찾아 30리 길을 절뚝절뚝 동생을 업고 왕복했다. 집이라 불리기 힘든 흙벽 더미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해 새우잠을 잤다.

몽실이의 가난과 불행은 몽실이의 잘못이 아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 하겠지만, 소설 속 몽실이는 불쌍하다 여기면서 실제 주변의 빈자와 약자에게는 혐오의 눈길을 떳떳이 보내는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언제가 더 나쁜지 모르겠다. 밥 한 덩이 주지 않고 내쫓을망정 측은지심은 지녔던, 전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 나은 건지, 기초 수급 아동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내 세금을 축내는 것은 용인하지만 감히 내 동네에 함께 살고 내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는 일은 마치 구정물이 옷에 스미는 것처럼 기겁하는 지금이 더 나은 건지.

저자 권정생은 1984년 〈몽실 언니〉 초판본 서문에서 말했다. “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것의 기원을 생각해보는 몽실이와 같은 사람이 더 많아진 세상에서야 〈몽실 언니〉는 조금 덜 슬픈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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