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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전, 중국 우한을 보며 ‘설마’ 했다. 신종 감염병의 위력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때였다. 체육관에 임시병원이 급조되고 거리는 텅 비고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주민들이 마스크와 실리콘 장갑으로 무장하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지켜보며 떡하니 입만 벌릴 뿐 조만간 우리도 겪을 일이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던 때, “마스크는 시작일 수 있다. 앞으로 병상, 의료인력, 장비 같은 의료자원이 얼마나 부족해질지 미리 살펴봐야 한다”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그에 따른 취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설마’ 했다. 미국 뉴욕,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하루 수천 명씩 확진자가 쏟아지던 봄에도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방치된 관들과 공원에 세운 야전병원 등을 보며 ‘여기는 안전해서 다행이다’를 먼저 생각했다. ‘설마’를 ‘혹시나’로 바꿔 대비하지 못했다. “우리라고 왜 하루 1000명, 2000명씩 나오란 법이 없겠는가?”를 외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기사로 전하면서도 나부터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었다. ‘설마, 우리가 저렇게 될까.’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허비하고 겨울이 왔다. 요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하던 모든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위기의 단계별 시나리오를 기사로 쓸 때 마지막 단락에 ‘트리아지(triage·치료 우선순위 분류)’를 언급한 적이 있다. 산소부족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두 명이고 산소호흡기가 단 한 대만 있다면 누구에게 씌울 것인가를 묻고 결정하는 종류의 작업이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 실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이런 일이 벌어질지.

흐려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또 다른 최악을 가정해야 할 때다. 이제는 ‘설마’를 흘려보내면 안 된다. 앞으로 하루 3000명, 4000명 아니, 1만명씩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정말 입에 담기도 싫지만, 백신의 효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런 불길한 시나리오에 플랜 B를 만들어놓는 일이 꼭 헛수고만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뼈저리게 배웠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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