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의 한 건물에 작은 뉴스룸 하나가 열렸다. 아직 택배 상자가 쌓여 있고 전선들이 얼기설기 늘어져 있다. 이 신생 사무실의 문에는 그러나 아주 유서 깊은 언론사의 제호가 찍혀 있다. ‘The New York Times.’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7월 홍콩지사의 디지털부문 일부 사업을 서울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뉴욕, 런던, 홍콩 등에 주재하던 기자들이 〈뉴욕타임스〉 서울지사에 속속 모여들고 있다. 로레타 찰튼(36) 기자도 지난해 연말 뉴욕 브루클린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찰튼은 미국 주간지 〈뉴요커〉를 거쳐 2018년부터 〈뉴욕타임스〉에서 일했다. 〈뉴요커〉에서 주로 음악 칼럼을 썼고, 〈뉴욕타임스〉에서는 전국부 데스크와 인종·정체성 문제 등을 다루는 뉴스레터 편집자로 활동했다. 백인 남성들에게 납치·고문·살해당한 뒤 강에 버려진 어린 흑인 소년 에멧 틸의 유산(遺産), 미국 노예제도, 경찰의 폭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뉴욕타임스〉를 통해 세상에 내보냈다.


앞으로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뉴스를 총괄하기로 되어 있지만 원래 그의 관심사였던 문화와 인종, 성차별 이슈에 관한 관심을 서울에서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서울 발령이 결정된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한국 음악 연구였다. 구글과 유튜브에서 ‘판소리’와 ‘가야금’을 검색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케이팝 가요를 들었다. 한국의 예전 계급제도와 노비제도에 관한 책들도 찾아 읽었다.


찰튼에게 서울의 첫인상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지만 그것이 그리 흉측하지는 않은 도시’였다. 전 세계의 도시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에 가장 흥미로운 서울의 풍경은 지하에 있었다. 거대한 지하철 시스템, 지하 주차장, 지하 쇼핑몰과 푸드코트의 광대하고도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그는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지한다. “도시를 걷는 거의 모든 순간 내 발 아래에서 누군가 차를 주차하고 쇼핑을 하고 소주를 마시는” 서울을 생각할 때, 지하철역에 비치된 방독면을 발견했을 때 찰튼은 혹시 전쟁과 재건 시대의 유산이 서울 도시 구조에 스며든 건 아닐까 궁금해졌다.


외신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기를 넘어, 그와 〈뉴욕타임스〉 서울지사 기자들은 이제 한국에 거주하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작은 뿌리를 내리고 한국과 세계의 뉴스를 전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찰튼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자음과 모음을 깨쳤지만 아직 한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으려면 갈 길이 멀었어요.” 하지만 그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정인지에 남긴 가르침으로 각오를 다졌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습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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