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뒤를 쫓는 취재를 하고 나면 그이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내가 이해한 그의 삶을 기사에 온전히 담지 못할 것 같아서다. 기사에는 기사로서 좋은 글을 쓴다. 가령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혹여 기사라는 테두리에 그의 삶을 납작하게 눌러버린 건 아니었는지 자주 의심이 든다.

소설 〈9번의 일〉에 등장하는 주인공 ‘9번’은 기사에는 등장하지 않을 법한 인물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히 하거나 ‘옳은’ 일에 앞장서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티려 아등바등할 뿐이다. 회사는 그를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그만두게 할 요량이다. 거듭 퇴직을 제안하고 재교육을 통보한다. 그런 그는 전 지역 이곳저곳으로 떠밀려 다니면서 아예 아무런 업무 지시를 받지 못하는 투명인간이 되는데, 그래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배치된 곳은 시골의 통신탑 건설 현장이다. 그곳에서 ‘78구역 1조 9번’이라는 소속과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름 없이 ‘9번’으로만 불린 그는 영락없이 ‘회사 인간’이 된다. 9번은 주민의 항의를 무시하고 통신탑을 세워야 한다. 노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몸에 사슬을 두르고 차량을 가로막으며 저항한다. 급기야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9번은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뭘 더 양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모티브는 KT 해고 노동자다. 하지만 ‘이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김혜진 작가는 주인공의 변화를 통해 ‘일을 할수록 자아가 훼손’되는 비극을 담담히 보여준다. 늘 그렇듯, 이번 작품에도 선과 악이 없다. 정의, 올바름, 정당성에 안주하지 않고 한 사람의 내면을 그려냈다. 여느 기사보다 훌륭한 르포르타주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