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지난 10월 스스로 목숨을 거둔 택배기사 A씨는 한평생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컴퓨터 조립과 수리를 배워서 가게를 차렸지만 외환위기 여파를 맞아 파산했고, 신용불량을 회복하기 위해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 일하고 주말에는 피자와 치킨을 배달하며 버텼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 A씨는 택배기사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는 11개월 전, ‘지금처럼만 경제력을 유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택배업을 시작했다. 차량 할부금, 유류비, 보험료를 냈고, 아프면 대체 기사를 구해 임금을 주면서 배송을 완료했다. 물건이 파손되거나 분실되면 그 비용도 모조리 배상했다. 다른 택배기사처럼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면 이 모든 비용을 다 감당하고 먹고살 돈을 벌 수는 있었을 텐데, A씨가 일하던 구역은 그만한 물량이 나오지 않았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주인공 리키와 A씨의 삶은 닮은 구석이 많다. 리키는 주 6일 하루 14시간씩 일하면 빚도 갚고 집도 살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었지만, 점점 비참해지기만 한다.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는 리키는 자식과도 멀어진다. 우등생이었던 리키의 아들은 ‘미래에 희망은 없다’며 집을 나간다.

영화에는 리키가 배송 시간에 쫓겨 화장실 대신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A씨의 동료 택배기사에게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인지 물었다. 그는 얼버무리면서 혹시 모르기 때문에 빈 페트병을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다른 택배기사 동료들은 거기에 소변을 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면서.

일한 만큼 버는 구조는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신분’ 때문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택배기사가 책임져야 한다. 택배기사들은 과도하게 노동하고 인간적인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켄 로치 감독은 ‘성실하게 일하는 리키 가족이 행복할 시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영화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다. 택배기사가 수취인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표현이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 이 메시지는 우리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1년 전 개봉한 영화의 물음에 우리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질문은 하나 더 늘었다. 정말로 이런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가?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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