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10월9일 보수 단체가 예고한 대규모 ‘한글날 집회’는 경찰이 차벽과 펜스로 광화문광장을 봉쇄하면서 무산되었다.

10월9일 오전 9시,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버스는 세종대로사거리를 우회했고 광화문광장 쪽 지하 출입구 7개가 막혔다. 세종대로사거리 방면 새문안로 6개 차선 중 한 개를 제외하고 모두 통제되었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과 펜스 1만3200개가 곳곳에 설치돼 인도 출입이 가로막혔다. 일부 보수 단체가 예고한 대규모 ‘한글날 집회’는 불가능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 지역에 신고된 집회 1200여 건 중 10명 이상이 모이거나 금지구역에서 집회를 신고한 139건에 대해 금지 통고를 보냈다. 일부 단체는 법원에 금지 통고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10월3일 개천절 집회 당시 차벽으로 둘러싸였던 광장은 철제 펜스로 넓게 에워싸였다. 경찰은 90곳에 설치되었던 검문소가 57곳으로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180여 개 부대와 경찰 병력 1만1000명이 응집한 광장은 개천절 때처럼 삼엄했다.

이곳을 지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경찰은 시민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인근 건물의 직원, 거주자만 세종대로사거리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밖의 시민은 통행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시민 편의를 위해 마련한 셔틀버스 탑승을 유도했다. 하지만 도로가 막혀 있는 데다 사람이 몰려서 20분 이상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금지된 집회는 ‘기자회견’으로 변경되었다. 기자회견은 집회와 달리 별도의 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다. 오후 1시, 보신각 앞에서 사랑제일교회 변호인단 및 기독자유통일당 등이 ‘자유·법치 파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연재 변호사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옥중서신을 대독했다. “기본권인 자유는 최소한만 제한할 수 있는데 정부는 원천 금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찰 뒤에 숨어 국민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있다.”

오후가 되자 1인 시위에 나선 이들이 눈에 띄었다. 광장이 통제된 까닭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세종대로에 인접한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외치거나, 그보다 떨어진 곳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4·15 총선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모두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이들은 즉각 경찰에 둘러싸였다. 대다수 1인 시위자들은 유튜브 방송을 켜놓았다. 광화문광장 일대를 중계하는 보수 유튜버도 많았다. 한 유튜버가 “애국 국민을 못 나오게 한다. 망할 이 정권은 곧 끝날 거다”라고 말하자 일부 시청자들이 후원금으로 화답했다. 광화문광장 현장을 보러 나온 진보 성향 유튜버와의 설전도 있었다. 어떤 문답에 대해서도 보수 유튜버들의 결론은 같았다.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총살당했다.”

광화문광장이 봉쇄되자 짜증을 내는 시민이 적지 않았다. 주한 일본 대사관 뒤쪽 건물에서 일하는 김 아무개씨는 “‘광화문 일대를 통과하려면 3~4회 이상의 검문을 거쳐야 한다’는 공지를 건물 관리소로부터 받았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5회 이상 검문당하고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봉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10월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안종화)는 8·15 비상대책위원회가 낸 옥외집회 금지처분 효력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집회로 인해) ‘코로나19의 감염 예방 및 확산 방지’라는 공익을 실현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야기될 수 있고, 이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명백한 위협에 해당한다.”

헌법적 가치와 국민 보건의 절충

장하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0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8·15 광복절 집회로 신뢰가 훼손된 상황이라 주최 측이 신고한 대로 (질서가 유지돼) 개최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8월15일, 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는 100여 명이 참가하는 집회 신고를 냈다. 서울시는 집회 금지를 명령했지만 법원이 옥외집회 금지처분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신청을 인용하면서 집회를 허용했다. 하지만 실제 집회에는 사랑제일교회 교인 등 전국에서 2만~3만명(경찰 추산, 주최 측 추산은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이 광복절 집회는 코로나19 2차 확산의 단초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의 대응이 과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통행 제지는 과거에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차벽을 만들어 통행을 제지한 조치에 대해, 2011년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행동자유권 침해’로 봤다. 이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팬데믹 국면에서 벌이는 집회가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에 해당하는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갈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0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20년 경찰 차벽의 위헌 여부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 위기’라는 상황을 전제로, 8·15 광화문 집회의 파장을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라고 적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0월8일 “차벽 설치는 ‘마지막 수단’에 해당하지 않아 적합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 평화적 집회 및 시민의 통행을 모두 제지한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하지도 않는다”라고 논평을 냈다.

방역과 자유 사이 절충을 꾀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9월23일 인천지법 행정1-2부(재판장 이종환)는 몇몇 조건을 전제로 한 종교단체의 옥외집회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감염병 예방’이라는 국민 보건을 고려했다”라고 밝히면서 △집회 장소 입구에서 체온 측정 후 37.4℃ 이하인 참석자에 한해 참석자 명부 작성, 손소독제 사용 후 입장을 허용할 것 △집회 참석자는 KF-80/94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미착용자의 입장을 허용하지 말 것 △참석자는 집회가 종료되면 곧바로 차례대로 해산할 것 등 구체적인 조건을 달았다. 주최 측은 법원이 제시한 조건을 지켰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팬데믹 국면에서 집회의 자유를 위해서는 집회 참여자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복절에는 보수 단체 집회 외에 민주노총의 ‘8·15 노동자대회’도 진행되었다. 2000여 명이 모인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참석자들은 방역수칙을 지켰다. 감염자는 한 명 발생했다. 같은 날 보수 단체 집회발 확진자가 10월12일 현재 647명 나온 결과와 대조된다. 주최 측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시국에 방역을 해치지 않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은 어떻게 그어야 할까? 8·15 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18일과 25일, 1000여 명이 참여하는 광화문 집회와 야외 예배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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