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cker영국 잉글랜드에서는 7~1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고 이 결과로 학교 순위를 매겨 공개한다. 위는 영국의 한 초등학교 교실 모습.

최근 영국 전국교사연례회의에서 교원연합의 일부 초등학교 교사들이 SATS라 불리는 일제고사를 거부하기로 결의해 교육 당국과 이견을 보였다. 이들은 일제고사가 학생의 학력 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시험 부담만 가중할 뿐이라며 일곱 살과 열한 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의 폐지를 주장했다. 영국 교육 당국은 우리처럼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를 사법 처리하지는 않지만, 이같은 시험 거부 행위는 불법이라며 다른 동료 교사들의 동참을 적극 만류했다.

SATS라 일컫는 영국의 초·중학교 일제고사는 1991년 보수당에 의해 영국 본토와 웨일스에서 6~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되었다. 이전의 평가방법은 학생에게 정해진 과제를 주고 문제풀이 과정을 채점하는 형식이었으나, 1991년 케네스 클라크 당시 교육부 장관은 전체 학생이 한 교실에 앉아 동시에 시험지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 이래로 현재까지 영국 본토에서는 해마다 7세(Key Stage 1), 11세(Key Stage 2), 14세(Key Stage 3) 학생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른다. 가장 문제가 되는 시험은 11세에 치르는 일제고사이다. 이 결과로 학교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제고사와 학교 순위 공개는 현재 잉글랜드에서만 운영된다. 웨일스에서는 9~10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차 교과 ‘능력 평가’에 수리·언어·문제해결 시험을 보지만 결과는 학교 내에서만 공유된다. 북아일랜드 역시 교사 평가 방식으로 교내에서 시험과 채점이 이루어진다. 스코틀랜드는 준비가 되었다고 교사가 판단한 어린이에 한해서만 읽기·쓰기·수학 시험이 치러지고 이 역시 교내에서 채점과 평가를 수행한다.

영국에서 일제고사 거부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시험이 교과 운영을 방해하며, 학업 기준 신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아동의 학습능력 증진을 지체한다고 주장한다. 한 교사는 일제고사를 ‘교육의 불모지’로, 학교 순위 공개를 ‘대대적인 정부 지원 사기극’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교사는 일제고사가 학업 능력이 부진한 아이에게는 ‘아동 학대’에 가깝다고 평했다.

일제고사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험 때문에 학생들이 항상 스트레스를 받아 배움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험 결과가 학교 순위 공개에 쓰여 교육적·사회적 파장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일제고사는 과잉 살상 행위”

전직 고등학교 화학 교사인 로레인 맥밀런의 주장을 들어보자. 그는 학교 순위를 결정하는 교육평가원의 시스템 자체가 교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결정되기 때문에 교원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했다. 영국 어린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평균 70회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대부분 9세가 넘으면 이미 시험에 면역이 된다고 한다. 그는 영국의 일제고사를 ‘과잉 살상 행위’라고 말한다.
 

ⓒFlicker짐 나이트 영국 교육부 장관(위)은 SATS가 여러 가지 효용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은 우리 교육 현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해마다 수많은 시험지를 채점하려면 그만큼 빨리 채점할 수 있는 시험 문항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문항들은 다양한 문장력과 사고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험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결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없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인 크리스 키츠는 일제고사 자체보다는 그 결과에 따른 학교 순위 공개와 여러 가지 사회·교육적 파장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학교 순위에 결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편리한 시험 유형을 개발한다. 그에 따라 시험 문제의 수준은 낮아지고 학생들은 실제 능력보다 과분한 점수를 받게 된다. 지난해에 케임브리지 대학이 A+제도를 도입하려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학교 순위를 받기 위해, 잘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너무 높은 점수를 주는 바람에 A를 받는 학생이 매우 많아졌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이 순위 경쟁 때문에 문제 학생에게 자퇴를 권유하기도 한다.

반면 교육 당국 및 일부 학부모는 학교 순위 공개를 적극 지지한다. 짐 나이트 영국 교육부 장관은 SATS의 효용성을 다음 세 가지로 밝혔다. 첫째, 학생과 학부모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고, 둘째, 학부모와 교사에게 자기네 학교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게 하며, 셋째, 대중에게 영국 전체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잘 운영되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자녀 3명을 모두 국립학교에 보내는 변호사 로버트 위덜리 씨 역시 SATS나 학교 순위 공개에 찬성한다. 부인인 헬렌은 세 자녀의 학교에서 학부모 대표로 활동 중이다. 위덜리 부부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케임브리지의 국립학교에 보내는 데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사립학교에 보내면 지역 사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사회정의와 고립된 엘리트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지역의 국립학교는 대부분 전국 학교 순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출신인 위덜리 부부는 케임브리지에 옮겨와 정착하게 되었다. 위덜리 씨는 시험 자체나 학교 순위 공개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너무 잦은 시험이나 공정하지 못한 채점 결과 그리고 자녀들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다.

2008년 상원 교육위원회는 일제고사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일제고사가 아동 교육에 해가 되는 몇 가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교실에서 교사들의 능력이 적절히 발휘되지 못하고, 교육이 시험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교과과정이 협소해졌으며, 교육 재원이 부적합하게 분배되었다. 상원 교육위원장 배리 시어먼은 교사들이 시험 준비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교육과정과 학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안으로 상원은 지역적 적합성, 전국적 모니터링, 그리고 개별적 성취도 평가 등 다양한 형태의 평가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영국은 1991년 전국 일제고사를 도입했으나, 시험 결과 및 학교 순위 공개로 인한 교육적 폐혜를 실감하고 여러 지역에서 이를 폐지하거나 다른 평가방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일제고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 순위를 전국적으로 공개하는 지역은 잉글랜드뿐인데 이 역시 최근 교사들의 반발로 조만간 변화가 예상된다. 영국의 현재는 한국의 미래인가?

기자명 런던·송지영 (자유 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