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한창 제670호 마감 작업 중이던 7월9일 오후, 긴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되었다는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느껴졌다. 서울시장이 실종됐다고? 곧이어 정황을 알지도 모를 취재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확인되지 않은 여러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몇 시간이 지났다. 밤늦게, 박 시장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비보가 도착했다.

당시로서는 관련 기사를 담을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 마감을 마친 새벽에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의 시신을 실은 차량이 들어갈 영안실 입구에 시민들과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차량에서 처절한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변은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어떤 시민들은 “일어나라! 박원순”이라는, 그때로서는 이미 허망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외침을 토해냈다. “시장의 시신을 싣고 있지 않은 위장 차량”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극우 유튜버들도 현장에 있었다.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멍하게 쳐다봤다. 슬프다기보다는 아득함을 느꼈다.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가 지난 30여 년에 걸쳐 한국의 시민운동과 인권, 정치에 남긴 족적은 엄연한 실체다. 최근엔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야심만만한 사회개혁 프로그램까지 잇따라 내놓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존재감의 사람을 더 이상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실감할 수 없었다.

박 시장은 사건 전날인 7월8일, 하급자인 서울시 직원을 성추행해서 심각한 고통에 빠뜨린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였다. 전 생애에 걸쳐 쌓아올린 업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한 심각한 혐의다. 업적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박 시장에 대한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를 두둔하기 위해 성추행을 희화화하거나 피해자의 신상을 캐서는 안 된다. 고인이 생전에 중시했던 가치를 오히려 욕보이는 행위다. 박 시장의 죽음으로 공소권 자체는 사라졌으나, 객관적인 진상규명의 필요성은 남았다. 그것에서 교훈을 얻어 한국 사회는 남성과 여성, 혹은 직장 내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다시 설계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데 기여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랬던 그가 결국 남성과 상급자로서의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길로 빠져버린 것일까? 특히 진보적 삶을 지향해온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겸허해져야 할 일이다. 박원순 같은 사람마저 평생 일구어온 가치를 지키는 데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