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억원대 연봉을 받던 스타 강사에서 교육운동가로 변신한 이범씨를 소개합니다.”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틀로 이범씨를 소개하던 사회자가 돌연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이범씨가 과학은 잘할지 모르겠는데 계산은 잘 못하는 듯해요.” 지난 대선 당시, MB 교육 공약에 분노해 난데없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래 선거에서 그가 지지하는 후보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을 두고 놀리는 얘기다. 청중이 ‘와~’ 하고 웃는 가운데 이범씨가 강단에 등장했다.

4월7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www.noworry.kr) 사무실에서 열린 강좌 풍경이다. 같은 시각 온라인으로 접속한 유료 수강자 600명 또한 모니터를 지켜보며 활짝 웃었다. 사교육 공포에 질린 부모들이 연대해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가자는 뜻에서 ‘등대지기 학교’라 이름이 붙은 이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강좌는 4월7일~5월26일 8회에 걸쳐 진행된다.
                                                                                                       -편집자 주


억대 연봉 학원강사에서 교육운동가로 ‘전향’한 이범씨가 4월7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등대지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전망부터 해보겠다. 2007년 대선 당시 MB가 자율형사립고 등을 늘리고, 사교육비는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교육 공약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이 이 공약의 위험성을 2~3년 뒤면 피부로 느끼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두세 달도 안 걸리더라(웃음). 말 그대로 쓰나미처럼 위기감이 몰려오는 상황인데, 도대체 이런 ‘교육 쓰나미 시대’가 왜 몰려오는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교육 전문가로서 전망해보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최근 대입 이슈부터 분석해보겠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새 대입 개혁안이 발표됐는데 그때 내가 이 제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데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내 예측이 귀신처럼 맞았던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웃음).

먼저 본고사 문제를 보자. 올 초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본고사 부활 얘기를 꺼내면서 소동이 있었는데, 나는 MB 임기 내에 대학들이 본고사를 본격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대입 완전 자율화가 이뤄지는 2012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대입이 자율화되어도 본고사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모교인 고려대가 앞장서 본고사를 부활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는 현 이장무 총장이 자신의 임기 내에 본고사를 부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못박은 바 있다. 서울대·고려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연세대도 독자 행보를 취하기 쉽지 않다.

다음은 고교등급제 문제. 요즘 고려대가 이 문제로 구설에 올라 있는데, 나는 대학이 이를 도입하는 데는 상당한 기술적 난관이 따를 것으로 본다. 고교등급제를 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반영해 내신 성적을 보정하는 방법. 그런데 이렇게 학력으로 아이들을 뽑을 거면 그냥 수능만 보면 된다. 굳이 공들여 내신을 보정하는 복잡한 방법을 쓸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선배들 실적에 근거해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는 방법인데, 이건 일종의 연좌제다. 명백히 위헌 소지가 있다. 그러니 어느 쪽 방법도 쓰기가 쉽지 않은 거다.

입학사정관제, 신흥 사교육 키울 것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신무기가 입학사정관제다. 더 엄밀히 표현하면, 입학사정관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의 교육 철학·행정에 익숙한 ‘관료파’에 대항한 ‘미국파’의 신무기라 할 수 있다. ‘실세차관’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이 바로 미국파의 수장 격이다. 미국은 사립대·주립대·커뮤니티칼리지 공히 입학사정관이 모든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란 대학이 성적순 선발 관행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성적으로 학생을 뽑을 거라면 입학사정관이라는 전문가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도 이주호 차관이 일선에 복귀하면서 입학사정관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에 정부가 예산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만큼 입학사정관제는 갈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 선발 과정이 완전히 블랙박스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명문 사립대 등이 이런 불투명성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의 통로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10년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을 통한 선발 비율을 가장 높게 잡은 대학이 고려대(23.5%)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 종종 기여입학 통로로 쓰이곤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그 대학을 나왔고 졸업 후에도 꾸준히 대학에 기부금을 냈다면 그 자녀를 합격시켜주는 식이다. 그뿐 아니다. 선발 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미국 대학도 수많은 소송·분쟁에 휘말리곤 했다. 그런데 미국 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불합격한 학생보다 대학 쪽 손을 들어주었다. 대학들이 저마다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고, 사회 구성원 또한 이를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학에도 과연 이런 철학이 존재한다 할 수 있을까? 귤이 회수를 넘어 탱자가 되듯, 입학사정관제가 한국에 도입되면 기이한 방식으로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 컨설팅·맞춤 관리 프로그램 등을 내세운 고급 사교육 시장이 확대될 위험도 크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한국 교육이 기형적인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지나친 선발 경쟁과 학교 관료화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심각한 것이 고교 다양화 300, 국제중 설립 움직임과 더불어 대학→고교→중학교 단위로 내려가는 선발 경쟁이다. 일본과 영국을 제외하고 대입 이전 단계에서 이렇게 선발 경쟁이 치열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미국도 사립학교가 발달했지만 이른바 ‘명문’ 사립고 재학생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그나마 학비가 비싸서 중산층 이하는 여기에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한국은 너도나도 이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서 사교육 시장만 커지는 추세다. 이렇게 사교육이 팽창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기회의 평등’이라는, 헌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둘째, 사교육비 지출로 인해 부모의 노후 생활 기반이 약해진다. 가계소득은 평균적으로 자녀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정점에 도달하고 그 뒤에는 하락한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가 중·고교에 다닐 때는 물론이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도 대학 등록금·학원비·어학연수비 등 막대한 사교육비를 쓰느라 노후를 보낼 자금을 날려버린다.

“선생님, 우리 애가 망했어요”

세 번째 문제는 사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게으르고 의존적인 학습 습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상담을 청해오는 엄마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중학교 때 전 과목 과외를 시키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라고. 공부를 잘하려면 동기·공부기술·꾸준함 3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그런데 중학교는 이중에서도 공부기술을 터득하는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학원에 의존해 보내게 되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도 꼭 우기는 엄마들이 있다. “우리 애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으니 ‘학원발’로라도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라면서. 그 엄마들이 아이가 고등학교 가면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선생님, 우리 애 결국 망했어요”라며(웃음).

사교육비를 잡으려면 일단은 ‘고교 다양화 300’ 같은 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할 것이다. 학교 현장도 변해야 한다. 설사 선발 경쟁이 약해진다 해도 학교 관료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좌파는 자꾸 학교 바깥에서만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데,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학원을 찾는 수요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오른쪽 상자기사 참조). 내가 학원 강의를 처음 할 때 놀랐던 것이 아이들에게 “학원 가서 물어봐”라고 말하는 교사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에 상담하러 온 학부모에게 “학원 좀 보내세요”라고 말하는 교사도 많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좌파·우파 공히 수동적인 ‘기회 균등’보다 적극적인 ‘교육기회 극대화’를 얘기할 때라고 본다. ‘무책임 교육’ 대신 ‘책임 교육’, ‘획일적 교육’ 대신 진정한 ‘맞춤식 교육’, ‘주입식 교육’ 대신 ‘창의적 교육’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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