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전의 ‘slush fund’ 대응어도 잘못되어 있다. 가장 알맞은 우리말 대응어는 ‘비자금’이다.
누구에게나 영한사전(사전)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시절’이 있다. 그때는 외우는 영어 단어가 늘어나면 성적도 따라 오르고, 덩달아 어깨까지 으쓱했다. 그 바람에 사전에 대해 한 점 의심이 없었다. 사전은 곧 스승이요, 등대요, 과외 교사요, 나침반이었다. 지금도 대다수 학생이, 많은 성인이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정영국 교수(국제영어대학원)와 조미옥 박사(사전학 전공) 부부는 다르다. 그들이 보기에 국내 사전들은 오류투성이다. “3년간 〈혼비 영영사전〉을 번역하며 그 사실을 명명백백히 확인했다”라고 조 박사는 말했다.

혼비(A. S. Hornby·1898~1978)는 영국의 유명한 교육학자. 1948년 그가 펴낸 〈혼비 영영사전〉은 이후 사전계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하며 전세계에서 3500만 부 이상 팔려 나갔다. 조 박사는 지난 3년간 그 사전을 하루 10시간 이상 번역했고, 정 교수는 A4 용지 9000장 분량의 그 원고를 퇴고하고 또 퇴고했다. 그 덕에 부부는 최근 〈옥스퍼드 영한사전〉(이퍼블릭)을 출간했다. “세상에 100% 완전한 사전은 없지만, 〈옥스퍼드 영한사전〉에는 오류가 거의 없다고 믿는다”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다른 사전과 달리 속표지에 편역자 이름을 당당히 넣은 것도 그래서다.

‘경위’를 ‘경감’으로 오역

그러나 사전 편찬 과정에서 비교 분석한 국내 사전은 문제투성이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전의 일차 목표는 사용자가 모르는 영어 낱말의 뜻을 한국어로 알려주는 것. 따라서 사전 편찬자는 영어 표제어에 해당하는 가장 적절한 한국어 대응어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father처럼 아버지라는 절대적 대응어가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많은 영어 단어가 이같은 절대적 대응어를 갖지 못한다. 그 때문에 사전 편찬자들은 일부분만 의미가 겹치는 부분적 대응어를 찾아 제시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때로는 영일(英日) 사전을 중역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라고 조 박사는 말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stringy. 이 단어에 알맞은 우리말 대응어는 〈사람·신체 부위가〉 (아주 여위어서) 힘줄이 다 드러나는이다. 그래야 ‘a stringy neck’(힘줄이 다 드러나는 목)이라는 예문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국내의 많은 사전이 ‘아주 여위어’는 외면한 채, 오히려 튼튼하다는 뜻의 대응어를 제시한다. (사람이) 체격이 늠름한, 힘줄이 단단한, 근골이 튼튼한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 대응어를 써서 a stringy neck을 번역하면 ‘야위어 힘줄이 다 드러나는 목’이 ‘굵고 튼튼한 목’으로 둔갑하고 만다.

국내 A사전과 B사전 등은 inspector의 대응어를 경감으로 적고 있다. 그 탓인지 콜린 덱스터가 쓴 소설의 국내 번역본에서 주인공 Inspector Morse는 ‘모스 경감’으로 불린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경감은 chief inspector라 불린다. 그렇다면 inspector는? 경감보다 한 계급 아래인 경위를 뜻한다. commune의 대응어를 잘못 쓴 사전도 많다. 대부분 사전이 이 낱말의 대응어를 ‘(친하게) 이야기하다, 친하게 교제하다(사귀다)’라고 표기했는데, 잘못이다. commune의 알맞은 대응어는 교감하다이다. 그러니까 ‘(눈빛으로, 표정으로) 좋은 감정을 나누는’ 관계를 일부 사전에서 ‘친하게 이야기하는, 친하게 사귀는’ 관계로 잘못 규정한 셈이다. 

소인경·소구근이 뭐지?

이 정도 오류로 웬 호들갑이냐고?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영일(英日) 사전을 베낀 듯한 대응어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clove. 국내 영한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거의 다 ‘〈식물〉 (백합 뿌리 등의) 소인경(小鱗莖), 소구근(小球根)’ 따위 대응어를 제시한다. 소인경과 소구근이라니?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에도 없는 괴이한 단어들이다. 왜 이같이 생뚱맞은 낱말이 등장했을까. 간단하다. 영일 사전을 고스란히 번역한 탓이다. 정영국 교수는 “최근 통마늘로 번역하는 사례도 있지만,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따르면, clove는 마늘 한 쪽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A사전과 B사전은 자루눈(새우·게·달팽이 눈처럼 긴 눈자루 끝에 달린 눈)으로 해석할 수 있는 stalk의 대응어도 잘못 제시하고 있다. (동물의) 경상(莖狀) 기관, 육경(肉莖), 우경(羽莖)으로. 물론 이들 낱말도 일반 국어사전에는 없다. 일부 사전의 snowshoe 대응어도 생경하다. 그냥 쉽게 설피, 눈신으로 제시해도 될 대응어를 굳이 ‘동철(冬鐵) 박은 눈신’으로 표기한 이유가 뭔지….

ⓒ시사IN 오윤현‘나 홀로’ 3년 동안 〈혼비 영영사전〉을 번역한 조미옥 박사(왼쪽)와 그 원고 9000장을 퇴고한 정영국 교수.
이 외에도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대응어를 제시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easy-going도 그중 하나. 이 단어의 정확한 대응어는 (성격이) 느긋한, 태평스러운이다. 그런데 국내의 많은 사전에는 ‘게으른, 핀둥거리는; 안이한’ 같은 대응어가 포함되어 있다. ‘느긋한 태도’와 ‘게으른 태도’의 차이는 엄청나다. 우리말 대응어로 상황 판단이 빠른이 어울리는 shrewd 역시, 몇몇 사전에서 ‘빈틈없는, 약삭빠른, 재빠른, 예민한, 기민한’ 따위 대응어로 잘못 올려놓고 있다.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과 ‘약삭빠르고 예민한’ 사람의 차이를 생각하면,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는 셈이다.   

(물이나 비바람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바위를 뜻하는 boulder의 대응어를 잘못 제시한 사전도 있다. 둥글거나 작은 돌이 아님에도‘둥근 돌, 큰 알돌, 호박돌’로 소개한 것이다. 심지어 요즘 자주 쓰이는 landmark에 대한 대응어도 애매하다. 이 단어의 알맞은 대응어는 주요 지형지물, 멀리서 보고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는 대형 건물 같은 것. 그런데 많은 사전이 ‘경계표, 육상 목표(항해자 등의 길잡이가 되는). 획기적인 사건’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국내 영한사전에서 발견되는 오류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4만~5만 단어 중에서 이 정도 잘못이 무슨 흠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영한사전은 지난 119년간 거의 모든 사람이 믿고 따르는 스승이자 나침반이었다. 따라서 한 점 실수라도 있으면 곤란하다. 이제라도 ‘똑똑한 사전’ 경쟁이 붙어 더 많은 사전이 더욱 영특해지기 바란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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