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2019년 12월19일 청년유니온과 청년활동지원센터가 주최한 ‘비진학 청년 사회진입’ 관련 연구 발표가 열렸다.

시행 4년 차를 맞은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사업)은 지난해 정책 대상을 조금 변경했다. 애초 ‘만 29세 이하 미취업 청년’에서 ‘졸업 및 중퇴 후 2년 이상의 만 34세 이하 미취업 청년’으로 바꾸었다. ‘졸업 및 중퇴 후 2년 이내 청년’으로 설정한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의 정책 대상과 중복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취업 기간이 길수록 더 높은 점수를 주고, 특정 연령대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20대 초반·20대 후반·30대 초반 연령별로 쿼터도 두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결과가 일어났다. 청년수당 참여자 가운데 고졸 이하 비율이 37.5%(2018년에는 18.8%)로 훌쩍 뛰었다. 특히 20대 초반 그룹에서 도드라졌고 미취업 기간이 긴 30대 그룹에서도 대거 합류했다. 이렇게 들어온 고졸 이하 ‘비진학’ 청년들은 대졸 청년 주축이던 기존 청년수당 참여자들과 많은 것이 달랐다. 필요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도 다르고 원하는 진로 탐색·상담·커뮤니티 프로그램도 달랐다. 같은 정책을 4년간 펼쳐온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도 적잖이 당황했다. ‘청년 정책이 아직 모든 청년을 포괄하지는 못했구나.’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신규 유입자들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청년유니온에 의뢰한 ‘비진학 청년 사회진입 지원방안 모색’ 연구보고서가 그 첫 번째 탐구 결과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20~29세 대학 비진학 청년 15명을 만나 진로 모색과 관련된 경험과 욕구를 듣는 FGI(Focus Group Interview·집단심층면접)를 진행했다. 취업 여부·연령별에 따라 4그룹으로 나눴지만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청년 15명은 소속과 나이를 초월한 공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기사에 등장한 청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어제까지 학생이었다가 오늘 갑자기 사회로 내던져졌을 때 비진학 청년들은 어떤 세상을 만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사회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곳, 무서운 아저씨들이 가득한 곳, 5개월 일해도 10만원을 주고는 그것도 많다고 하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세상이었다. 이런 첫 사회 경험의 충격이 비진학 청년들을 장기간 방황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니까 두려움이 있었어요. 내가 돈 받고 일할 수 있을까, 학교처럼 실수가 용납이 안 돼서 두려움이 컸죠(김지웅·28·프리랜서 작가).” “어른들이랑 같이 일한다는 게 공포였어요. 회식 자리에서 아저씨들이 막 대하는데, 일할 때도 어려서 그런지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매일 일 나가는 게 무서웠어요(심나윤·23·마케팅 비정규직).” “스무 살이고 막내이다 보니 네다섯 달 활동하고 받은 게 10만원이었어요. 소개해주신 분께 말했더니 처음 시작한 애한테 10만원 준 게 많은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연극을 접고 부모님 댁에 잠시 내려갔어요(염지희·28·IT 업계 비정규직).”

경험이 적고 빈약한 비진학 청년들은 많은 경우 ‘프리터’(일정한 직업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20대를 채워나갔다. “일단 카페. 그리고 홀 서빙. 연구원 인턴으로 일했고. 행사 알바 좀 많이 다녔고. 되게 다양한데 페스티벌, 막노동하듯이 이런 것도 다니고(이혁민·26·취업 준비).” “단기랑 현장직을 제일 많이 했어요. 행사 스태프나 무대감독이나 노가다라고 불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스무 살 되자마자 돈 벌려고 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었어요. 알바 3개월씩 하다가 금방 그만둔 것 같아요. 계약서 쓰고 4대 보험 들고 하는 건 의류 매장에서 두 달(최민재·23·미취업).”  

비진학 청년, 문화자본 쌓을 곳 없어

이런 프리터 생활도 어떨 땐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서빙, 화장품 판매 등 전문적인 게 필요 없는 일이어도 대졸자만 뽑고 고졸은 안 뽑는다고 써놓은 게 전보다 많아졌더라고요(박다정·23·미취업).” “카페 알바 조건에도 4년제 대졸 있으면 ‘재수 없어’ 하면서 넘긴다던가…(이영화·22·시간제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고졸’ 이렇게 설정해놓고 봐요. 그런 데서 괜히 신경 쓸까 봐 스스로를 차단하게 되더라고요(심나윤·23).”

애써 무시하고 회피하며 돌아가다가도 진로 계획을 세우다 보면 꼭 대학이라는 벽에 막힌다. “치위생사가 되고 싶은데 대학을 나와야지 자격증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더라고요(민경진·21·미취업).” “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다가 항공서비스 쪽으로 갈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국내 항공사는 다 대학을 나와야 해서 외항사를 알아봐야 해요(이혁민·26).”

‘가성비’를 따지며 자신 있게 비진학을 선택한 청년들도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밖 20대 초중반 청년이 배움과 교류 같은 문화자본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나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해진 루트인 ‘수능-대학’을 따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대학에 간 친구들 보면 대학에서 노는 풀이 다르더라고요. 관심 가는 금융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대학생만 대상으로 하더라고요. 대학에 다녔다면 가능성이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요(손지윤·20·카페 아르바이트).” “예술계는 정말 판이 좁아요. 학연과 지연으로 굴러가는. 제가 했던 연극도 A 대학 사람들이 모인 거고, 영화도 B 대학 사람들이 모인…. 저는 외부인인 거죠. 그들의 커뮤니티에 끼지 못하는 상황, 배척받는 상황이 있었고(염지희·28).”

비진학 청년들이 그래서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 외로움이다. “친구는 대학 가서 재미있게 많이 노는데, 나는 한두 명이 덩그러니 앉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차이가 느껴졌어요. 회사 다니다가도 그만두면 연락이 끊기고 하니까. 붕 떠 있는 느낌(심나윤·23).” “아르바이트가 혼자나 둘이 하는 거여서, 20대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바글바글했던 고등학교에서 바로 혼자 있게 되는 게. 일하고 나면 공허하고 그래서 종교에 의지했어요(이영화·22).”

이영화씨는 또 말했다. “학생 할인이 있는데 ‘고등학생’ ‘대학생’이라는 단어들도 상처였고. 학생이 아니면서 20대 초반인 나는 어디에 낄 수가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나는 이 나라에서 어떤 존재일까 싶어서 울기도 하고. 배제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라가 나를, 없는 사람으로, 존재를 지워버린다고 해야 하나. 대학교를 안 간 20대 청년들은 설 자리가 없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을 가는 것이 너무 디폴트값이라서 그걸 치르지 않은 청년들은 이후에 어떤 걸 배워야 하는지 어떤 걸 해나가야 하는지 사회에 턱하니 놓여 있는(박다정·23)” 상황에서, 비진학 청년들이 원활한 진로 모색을 거쳐 노동시장에 안착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정책 방향이 필요할까? 연구팀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 청년 정책이 조기 개입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시기를 잠재적인 정책 대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 고등학교 졸업 직후의 청년들이 자연스레 정책을 접하고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도, 취업자도 아닌 고립된 상태로 청년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무를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다. 특히 ‘커뮤니티 형성’이 정책 개입의 핵심이어야 한다. 비진학 청년도 배움과 또래 교류, 문화자본 축적이 가능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또한 연구팀은 비진학 청년의 진로 모색-노동 이행 기간을 좀 더 길게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 국토교통부의 청년 행복주택 등 대표적인 정부 청년 정책의 신청 자격이 ‘졸업 및 중퇴 이후 2년 이내’라는 제한을 두었다. 졸업 후 2년 이후면 진로 모색을 끝내고 대체로 안정적 노동에 안착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졸업 2년 후 청년’과 ‘고등학교 졸업 2년 후 청년’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비진학 청년에게 지금 당장 진로 모색을 끝내라는 주문은 너무 가혹하다. 연구팀은 청년 정책을 설계할 때 비진학 청년이 대졸 청년보다 더 긴 이행 기간을 가진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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