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얼마 전 뉴스를 틀어놓고 일을 하다가 들리는 이야기가 정말인가 싶어 나머지를 꼼꼼히 지켜본 적이 있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다. 익명의 학부모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이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관리가 안 되잖아요.” 그 한마디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방금 저 사람이 말로 나를 세게 때렸구나. 물리적 폭력이 가해진 것과 같은 통증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10년쯤 전에 방학을 이용해 4주간 초등학생 논술 캠프에서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담임인 나에게 곧잘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아파트에 살아요?” “차는 뭐예요?” “골프 칠 줄 알아요?” 나는 아파트에 살지 않았고, 차를 소유하지 않았으며, 골프라면 박세리 선수가 웅덩이에 들어가 공을 쳐낸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아파트에 살지 않고 차가 없으며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물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처럼 되면 어떡해요?”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배제한다. 가장 먼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된다. 정신이 가난한 사람 말고 물질적 빈곤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내가 바라는 실천적 존엄이란 스스로 천박해지지 않는 것이다. 타인이 어떤 집에 사는지, 수입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민으로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주거지가 다른 아이들을 분리해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은 혐오와 무지가 결합된 차별이다. 빈곤 속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동일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아이와 어른이 뒤섞이고 대립하는 탁아소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이들과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분리되고 서로 만나는 접점이 사라진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형편”을 지켜본 보육사의 첨예한 기록이다. 브래디 미카코는 “인간성이 자본보다 열등하다고 규정한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라고 쓴다.

우리는 인간이 자본보다 열등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는?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또 다른 우리는 남는다. 우리가 남긴 것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혐오와 차별을 남김 없이 가지고 떠날 수 있다면. 나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불가능한 꿈을 하나씩 품고 산다고 할 때의 그 꿈 말이다.

기자명 유진목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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