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미국에서 연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 65세 이상 인구가 3만6000명에 이른다는 기사를 접했다. 미국의 65세 이상이 짊어진 학자금 대출 잔액은 약 18조8000억원, 미국의 전체 학자금 대출과 이자를 포함한 잔액은 1000조원이 넘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약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비싼 학비에 노후마저 저당잡힌 삶, 성실하게 살아도 빚을 떠안고 살아가는 현실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중산층 붕괴 문제에 매달려온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신랄한 경고를 보낸다. 나아가, 중산층은 사라지고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만 남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 탕감과 공립대학 무상교육을 위한 초부유세 도입을 주장한다.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에는 중산층 붕괴에 대한 저자의 고뇌, 정치가로서의 신념, 개인적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미국의 성실한 중산층이 어떻게 갑작스러운 사고나 비극적인 불행 없이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몰락을 경험해야 했던 대부분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도박에 빠졌다거나, 큰 병에 걸렸다거나, 재산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우리 대다수는 가난해졌고, 자녀들은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 세대보다 못살게 되는 첫 세대를 맞은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몰락의 이유를 중산층을 보호하지 않고, 금융자본과 큰 기업만 대변해왔던 정치에서 찾고 있다. 고소득자를 위한 감세를 하는 동안 저소득자들을 위한 적절한 대출은 줄어들었으며, 각종 사회보장 정책과 인프라 예산은 효율과 비용이라는 명목하에 대폭 삭감되거나 민간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희망을 말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던 시절, 사회로부터 큰 지원을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직업훈련을 받고, 전문대학을 다닐 수 있었으며, 결국 하버드 법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개인적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적절한 직업교육과 적절한 학자금 대출이 성실한 개인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치다. 불평등 정도가 심한 국가일수록 민주주의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삶을 억누르는 불평등의 문제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정치에 질문을 던지게 할 것이다. 불평등과 중산층 붕괴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으면 언제나 패배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희망을 찾아 나서는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닐까?

기자명 박원순 (서울시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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