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문화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을 유인촌 장관이 지켜보고 있다.
‘리비아모 리비아모 네이떼띠 깔리치, 께 라 벨레자 인삐오라…’ 소프라노 조은혜씨(32)가 테너 김진철씨(34)와 함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씨의 꿈은 이 노래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부르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오페라합창단의 일원이지만 주역이 되어 무대에 서겠다는, ‘프리마돈나’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조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가 아니었다. 거리였다. 그것도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앞 거리였다. 그녀의 공연 소식은 신문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을 장식했다. 거리에서 노래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것이 그녀의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3월31일부로 해고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지난 2월 초, 국립오페라단 이소영 단장은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를 발표했다. 이 단장은 2년차 이하 단원을 지난해 12월31일부로 해고한 데 이어 2년차 이상 단원은 3월31일부로 해촉하겠다며 민간단체인 ‘나눔과기쁨’에서 그들을 재고용해줄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때부터 단원들은 파업을 결의하고 거리에 나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42명 단원 중 다른 길을 찾아 떠난 12명을 제외한 3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연습비 명목으로 받은 한 달 급여는 70만원이었다. 여기에 공연이 있을 때마다 공연 수당을 따로 받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100만~120만원이었다. 1년 급여를 전부 합쳐도 3억원(공연 수당 포함하면 5억원),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이 며칠 동안 쓰고 온 2억원의 1.5배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이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비정규직의 전형이었다.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2007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화재 때 제대로 보험 혜택도 못 받았다. 해고도 쉬웠다.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해고가 되었다. 단원들은 개인 레슨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노래를 불러왔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였다. 

단원들과 함께 파업을 하는 반주자 오지영씨는 “성악가들은 몸이 악기인데 꽃샘추위에 하루 종일 밖에서 공연하고 시위하느라 다들 감기에 걸려서 쩔쩔매고 있다”라고 말했다. ‘프리마돈나’들의 슬픈 아리아가 울려퍼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는 ‘문화로 따뜻한 세상’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들은 전날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 공연장 앞에서 관객을 상대로 선전전을 펼쳤다. 현장에서 만난 베이스 김명도씨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드라마에서 ‘석란시향’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는데, 우리의 지금 모습이 그들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에 나오는 ‘예술맹’ 시장과 문화부 장관의 문화적 수준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날 확인할 수 있었다.

합창단이 집회를 진행하는 중간에 갑자기 유인촌 장관이 나타났다. 그는 집회를 중단시키며 단원과 함께 집회를 하는 공공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을 향해 “얘기하기 싫어, 나랑?”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단원들이 따졌다. “반말하지 마십시오.” 단원들의 격한 반응에 장관은 청사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회자가 “우리는 장관님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유 장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갔다.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유 장관을 따라가며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 이유를 물었다. 유 장관은 “저들은 집회 장소를 잘못 찾아왔다. 정은숙 전 단장의 집 앞에 가서 시위를 해야 한다. 인건비 책정에 대한 법적 근거 없이 불법으로 6년간 합창단을 운영한 사람은 정 전 단장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페라 전문 합창단의 필요성에 대해 묻자 유 장관은 “외국에는 이런 오페라합창단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외국에도 이런 오페라합창단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추궁하자 그는 재차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유 장관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30분 뒤 집회장을 찾은 또 다른 손님들이 외국의 오페라합창단 존재 여부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공연하기 위해 방한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성악가들과 스태프였다. 한 스태프는 “오페라합창단(Opera Corus)은 유럽에서 매우 일반적으로 존재하며 이탈리아에만 13개가 있다(외국 오페라합창단은 주로 오페라극장에 속하는데 오페라극장이 오페라단과 같은 구실을 한다)”라고 확인해주었다. 

유인촌 장관 “외국에는 오페라합창단 없다”

이들은 집회를 중단시킨 유인촌 장관과는 달리, 예술적인 방식으로 시위대에 예를 표했다. 함께 합창을 한 것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 전원이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해고되었다고 설명하자 그들은 합창단 대열에 합류해서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함께 불러주었다. 이날 단원들의 ‘합창 시위’를 지휘한 사람은 전 국립오페라합창단 지휘자 고성진씨였다. 합창단처럼 그를 비롯한 연출부 스태프 9명도 전원 해고된 상태였다.

1국3팀 체제였던 국립오페라단은 현재 국장과 팀장 2명을 비롯해 많은 직원이 사표를 냈다. 이 중 친동생이 운영하는 기획사에 동영상 광고를 비싸게 의뢰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 퇴출된, 음악잡지 기고 경력이 전부인 청와대 행정관 출신의 전 사무국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고된 상태였다. 스태프도 단원도 없이 사무국만 남은 국립오페라단의 현재 상태는 사설오페라단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시사IN 한향란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합창시위’에 외국 성악가들도 즉석에서 동참했다.
국립오페라단이 이런 내홍을 겪는 것을 음악계 관계자들은 ‘정은숙 전 단장(배우 문성근 씨의 형수) 지우기’라고 해석한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6년여 동안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맡았던 정 전 단장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무리한 인적 청산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 지우기’는 문화부 소속 문화예술단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김윤수 전 관장의 흔적이, 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김정헌 전 위원장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인적 청산을 통한 유 장관의 ‘과거 지우기’는 ‘노무현 사람 지우기’ ‘민예총 지우기’ ‘서울대·한예종 지우기’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정은숙 전 단장과 같은 ‘노무현 사람’이나 김대중 정부 이후 문화예술계 주류로 부상한 민예총 출신들이 밀려나고 있고, 예산 삭감과 감사 등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압박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유 장관은 문화부 내에서도 국정홍보처 출신 직원 90여 명을 대기발령하고 호남 출신 촉탁직 간부들을 관련 규정을 바꿔 해촉하는 등 인적 청산 작업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유 장관의 ‘지우개 행정’이 사람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지워지지 않았다. 문화부가 9월3일 발표한 ‘새정부 문화정책 기조 및 예술정책’과 지난해 말 발표한 ‘문화체육관광 10대 과제’는 참여정부 문화정책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 정책보좌관이었던 조한기 씨는 “참여정부 초기 문화행정을 이끈 이창동 전 장관은 처음 1년 동안 문화예술계의 미래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은 그 1년 동안 과거를 지우는 일에만 골몰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새로운 것도 있다. 뉴라이트의 문화정책이 덧칠해졌다. 문화부 정책 기조를 살펴보면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지난해 초 펴낸 〈대한민국 일류문화국가-선진화 정책 시리즈〉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대한민국관’으로 명칭이 바뀐 ‘국립현대사박물관’ 을 설립하기로 한 것은 뉴라이트의 현대사 인식을 반영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명 탤런트 출신인 유 장관이 유난히 강한 부분도 있었다. 바로 정책 홍보 쪽이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시절에도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통해 ‘이명박 띄우기’에 일조했던 유 장관은 역시 홍보에 강했다. 3월3일 그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000명이 넘는 임명자를 불러놓고 문화예술 강사 발대식을 갖고 문화부의 ‘일자리 창출’을 홍보했다. 유 장관은 국립오페라합창단 문제도 이전 정부의 잘못이라고 홍보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유 장관이 ‘불법 국립오페라합창단 조성’ 원죄의 대상으로 지목했던 정은숙 전 단장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정 전 단장은 “오페라합창단을 만든 것은 나의 ‘과’가 아니라 ‘공’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할 때마다 합창단을 구걸할 수 없어서 임시로나마 합창단을 만들었다. 외부 합창단을 쓸 때는 보통 10~15회 연습하던 것을 합창단이 생긴 뒤로는 30~35회 연습해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수많은 공연을 통해 이들은 오페라 전문 합창단으로 거듭났다”라고 말했다.

유 장관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문제 삼는 것에 대해 그는 “예산을 마련하고 단원들을 상임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예산도 제도화도 결국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도 단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예산이 없어 연습비 70만원밖에 지불하지 못했는데도 단원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6년을 버텨줬다. 그런 단원들을 칭찬하기는커녕 쫓아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소영 현 단장은 “이 문제의 핵심은 편법 예산 집행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들의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정규직으로 4대 보험이 되는 민간 단체를 소개하며 대안까지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단원들은 무책임한 아웃소싱이라며 거부했다.

정은숙 전 단장 “합창단에게 상 줘야 한다”

많은 음악 관계자와 클래식 팬들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 소식을 안타까워한다. 이남진 한국음악비평가협회장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국립오페라단 오페라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주역들이 못한 경우에도 합창의 앙상블로 공연 뼈대를 지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음악 평론가 탁계석씨는 합창단 해체 소식에 울분을 토하며 ‘누가 그대들을 울렸는가’라는 헌시를 지어 애도했다.

서울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인 지휘자 정명훈씨는 2003년 오페라 〈카르멘〉을 함께 공연한 뒤 “이런 합창단은 드물다. 프랑스에도 없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2007년 대구 국제오페라축제에서 ‘오페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합창단의 집회 현장에서 함께 합창을 했던 베르디 극장의 성악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목소리가 아주 좋다. 길에서 노래 부를 실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에 대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견해는 ‘그것은 그들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그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한 우리 잘못이다’라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무대를 잃은 단원들을 위해 3월27일 국회 공연을 주선해 주었다. 

단원들을 해고한 국립오페라단이 청년 인턴을 고용한 것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단원 42명을 해고하고 청년 인턴을 100여 명 고용했다. 이것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냐? 이것은 ‘저질의, 일자리 죽이기’ 정책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국내 최고의 오페라 전문 합창단이 요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는 ‘아침이슬’ ‘님을 위한 행진곡’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와 같은 노래들이다. 민주당 문방위 의원들은 이들의 슬픈 아리아가 그칠 날을 고대하면서 국회 공연을 할 때 함께 ‘합창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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