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
※ 글 싣는 순서

세상에서 가장 길고 사색적인 길, 산티아고

세상에서 가장 높고 신비한 길, 네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 제주

서명숙 〈시사IN〉 편집위원(왼쪽)은 2006년 스페인 산티아고에 다녀온 뒤 ‘느리게 걷기, 느리게 생각하기, 느리게 살기’를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제주도뿐 아니라 온 나라 전역에 자동차 없이 걷는 길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나는 걷는다〉에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이렇게 썼다. 올리비에만이 아니다. 걷는 사람들은 말한다. 걷고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노라고. 길에서 지혜를 찾고, 구원을 얻었노라고. 그래서 멈출 수 없었노라고.

걷기는, 그 중에서도 느리게 걷기는 가장 급진적인 문명 전복 행위이기도 하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삶은 효율을 향상시키되, 주변을 돌아보는 힘을 떨어뜨린다. 자동차 속도를 높일수록 시야가 좁아지듯 삶에 가속을 붙일수록 남는 것은 파편화된 욕망과 개인뿐이다. 그래서 시인 이문재는 말한다. “느림에서 돌봄이 나오고, 나눔이 나오며, 더불어 살기가 나온다”라고.

ⓒ시사IN 한향란
걷기는 느림의 철학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전략이기도 하다. 〈시사IN〉이 ‘걷기’를 창간 캠페인으로 제안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혼자도 좋고, 여럿도 좋다. 걷고, 느끼고, 사유하는 일련의 행위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시사IN〉은 걷기의 ‘치명적 중독’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자 한다.

그 첫 작업은 본지 서명숙 편집위원이 세 번에 걸쳐 연재하게 될 걷기 예찬기이다. 평화의 섬 제주를 ‘자동차 관광지’에서 ‘도보 순례자들의 성지’로 탈바꿈시키고자 사단법인 제주올레(‘올레’는 좁은 골목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를 발족시킨 서씨는,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어 발굴한 ‘흙길 1차 코스’를 지난 9월8일 일반에 처음으로 개방한 바 있다. ?

 

바다는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푸르른 몸뚱어리를 뒤척였다. 소머리를 닮았다는 우도와 난공불락의 성채를 연상케 하는 성산봉이 엎드려 우리 일행을 맞았다. 고개를 돌리니 아스라이 지평선에 떠오르는 제주의 오름들…. 이틀 전까지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 사흘이나 쏟아졌다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하늘은 높고 맑았다. ‘바람의 딸’ 한비야가 외쳤다. “녹색과 검정이 이렇게 기막히게 어울린다는 걸 처음 알았네.” 2007년 9월8일 제주도 서귀포시 시흥리 말미오름 정상에서였다.

산티아고에 마음을 빼앗긴 3년 세월

옆에 선 사람들의 표정을 죽 둘러봤다. 비취빛 바다, 곡선으로 굽이치는 오름, 구불구불 이어지는 현무암 돌담길을 내려다보면서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내 행복은 열 배, 백 배로 부풀어 올랐다. 산티아고 길에서 품은 꿈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길은 사람의 생각을, 때로는 인생길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스페인 도시 산티아고 레 콤포스텔라에 마음을 빼앗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오래된 친구인 담배를 떠나보내고 걷기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 15년 넘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뒤로는 걷기에 더욱더 빠져들었다. 걷기는 몸과 마음에 붙은 군살을 내리는 최고, 최선의 운동이자 가장 값싼 운동이었기에.

ⓒ시사IN 한향란돌담과 흙길로 이어진 제주올레 시범길을 걷는 사람들.
걸으면 걸을수록 아쉬움이 커지고 갈증은 심해졌다. 가다 보면 걷는 길은 끊어지거나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매연과 소음, 자동차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걷는다는 건 명상보다는 극기 훈련에 가까웠다. 평화롭게 마냥 걸으면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던 중 한 여자 후배의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는 브라질 교포 여성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산티아고는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기다려다오, 곧 찾아가리니.

그러나 계획은 몇 번이나 미루어졌다. 그 사이에 〈오마이뉴스〉에 재취업한 나는 첫 월급을 타자마자 ‘산티아고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별로 큰돈이 들지 않는 순례길이었으니, 돈 모으기보다는 유예된 꿈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던 셈이다.

열망만큼 질긴 습관에서 벗어나기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는 프랑스 국경 마을로 가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그 길을 마음에 품은 지 3년 만인 지난해 9월이었다.

그러나 습관 역시 열망만큼 질긴 구석이 있었다. 피레네 산중에서도 내 귀에는 고국에 두고 온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는 그곳에서 화면만 켜면 ‘짜잔’ 뉴스가 뜨는 초고속 인터넷이 간절히 생각났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고, 대자연이 병원이었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면서 인터넷 중독증과 휴대전화 집착증은 서서히 치유되었다. 내 눈과 귀는 대자연의 소리와 풍경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도보 여행의 최대 장점은 ‘오감’을 두루 자극해주는 것이라는 한비야의 말이 갈수록 피부에 와닿았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미풍에 몸을 내맡기고 길섶에 핀 키 작은 들꽃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급적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자동차 여행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온종일 걷고 난 뒤에 마을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한 조각씩 떼어 먹는 굳은 빵은 특급호텔 코스 요리 못지않았다. 오십 평생 봐온 일출과 일몰보다 산티아고에서 본 횟수가 더 많지 싶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는 자연만이 아니었다. 내 몸은 기대보다 튼튼했고 두 발은 생각보다 빨랐다. 되도록 느릿느릿, 게으르게, 사방을 이리저리 해찰하면서 걸었는데도, 출발할 때는 아득하게 느껴지던 그곳에 가닿아 있곤 했다. 오로지 자신의 두 다리에 의지해서 지도상에 나타난 지점과 지점 사이를 이동하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었다.

자연의 도전이 거셀수록 자신에 대한 신뢰는 높아졌다. 길을 나선 지 20일쯤이 지났을 무렵, 한 산중 마을에서 아침부터 세찬 장대비를 만났다. 도보 여행자들끼리 택시를 대절해서 배낭만 부친 뒤 폭우를 뚫고 걷기 시작했다.

ⓒ시사IN 서명숙야곱이 걸었다는 순례길,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나는 내 고향 제주도를 떠올렸다. 산티아고 돌담길(오른쪽)은 제주도 돌담길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한참을 묵묵히 걷다 보니 빗줄기는 잦아들었고 무거운 배낭에 익숙해진 등은 홀가분하기보다 도리어 허전했다. ‘비도 덜 맞고 마을에 빨리 도착할 겸 아예 달려가볼까?’ 제주도 한라산 5·16도로와 흡사한 구절양장 산길을 8km쯤 내처 달렸다. 빗줄기에 몸은 축축이 젖어들었지만 정신은 한없이 자유로웠다. 평소 불만스러운 구석이 많았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총연장 8백km나 되는 길을 36일이나 걷다보니, 숱한 길동무들과 만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작은 마을에서 의자를 내놓고 해바라기를 하는 스페인 할머니들, 농사 지은 멜론을 두 통이나 안겨주던 농부 아저씨,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알베르게를 빠져나오자마자 캄캄한 산중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내게 손전등을 비춰준 멕시코 남자 필리페, 한국에서 2년간 원어민 영어 강사를 하면서 익힌 찜질방 한국어로 나를 웃기던 미국 아가씨 재닛, 길고 긴 황톳길이 한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코스에서 맨땅 위에 막대기로 ‘힘내라 수기(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나를 ‘수기’라고 불렀다)’라는 응원 메시지를 남긴 프랑스 남자 등등,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순례자〉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를 우연히 만난 것도 그 길 위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누린 더 큰 행운은 영국 여자 제시카와의 만남이었다. 순례가 끝나기 사흘 전에 만난 그녀와 나는 급속히 친해졌다. 아침에 카페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는데 점심 무렵 산중 마을 멜리데로 가는 길가 잔디밭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는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멜리데에서 명물로 꼽히는 ‘불포(문어)’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단다. 맛난 것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확인한 우리는 금세 오래된 친구처럼 친해졌다.

그녀와 나는 위장을 확실하게 비운 채로 멜리데에서도 가장 문어 요리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았다. 맛난 현지 음식을 맛보면서 행복지수가 한껏 높아진 나는 ‘산티아고 순례에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앞으로 5년마다 한 번씩 땡빚을 내서라도 이 길을 찾겠다’고 큰소리쳤다.

“자기 나라에 카미노를 만들자”

제시카는 차분하게 듣더니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길을 하나씩 만들어야 해. 우리가 산티아고에서 깨닫고 얻은 것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말야. 다 우리처럼 스페인까지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행운을 먼저 누린 우리가 행운을 나눠줘야지.”

충격이었다. ‘왜 우리 땅에 걷는 길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다닐 생각만 했을까? 내 고향은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제주도 아닌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자주 제주도 옛길을 떠올렸던가. 그래, 제주도에 길을 한번 만들어보는 거야! 철저하게 안티 공구리(시멘트 포장을 거부한다는 뜻)로 말이야.’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고향 제주도에 ‘바당올레 하늘올레’를 만들어 걷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리라는. 이번에 선보인 ‘말미오름에서 섭지코지까지’는 그 꿈을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다음 호에 계속).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