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전경련의 만남.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 감면 따위 조처를 해줬지만 경기 악화로 투자는 물론 세수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규모가 도박판의 판돈 올리듯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추경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에서 추가 편성 따위 조처가 불가피할 때 책정하는 예산이다. 가령 전쟁이나 자연재해, 경기 침체 같은 다급한 경우가 그 불가피한 사유에 해당하지만 관행적으로 매해 5조원 안팎의 추경을 편성해왔다.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추경 예산은 평균 3.8조원. 그에 비추어 올해 추경은 20조∼30조원 수준 또는 50조원 이상으로 그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울트라슈퍼 추경’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2009년 예산(약 284조원)이 국회를 통과한 지 겨우 석 달 만에, 그것도 본예산의 10∼20%에 이르는 규모라 사실상 예산을 다시 짜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공식 방침은 나오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추경안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관계 부처 협의, 당·정 협의 등을 거쳐 3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제가 크게 나빠지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확대 재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는 최근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부자 증세’ 예산안과 대조를 이루며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규모 추경이 논의되자 “2% 부자 감세로 세수를 줄여놓더니, 이번엔 불황 극복을 위한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며 빚을 내달라는 것 아니냐”라는 반발이다. 

우선 감세 규모를 따져보자. 그런데 이상한 일은, 국회가 감세 규모를 96조원으로 계산한 반면, 정부의 그것은 겨우 35조원이라는 것이다. 무려 60조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는 국회가 기준연도 대비 방식을 사용한 반면 정부는 전년 대비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월급 100만원 받는 회사원 홍길동씨. 1월에는 60만원을, 2월에는 70만원, 3월에는 90만원을 받았다고 치자. 홍길동씨의 월급은 3개월 동안 모두 얼마가 줄어든 것일까? 80만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국회의 기준 연도 대비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전년 대비 방식으로 계산하면 1월은 40만원이 줄고, 2월은 1월에 비해 10만원이 늘고, 또 3월은 2월에 비해 20만원이 늘었으니 총 10만원 감소(-40만+10만+20만)한 결과가 나온다. 정부 방식은 수년 동안 누적되는 감세 규모를 작게 계산해 재정 건전성 악화를 베일에 가리게 하는 수단인 셈이다.

일단 ‘나라 빚’ 늘리고 보겠다?
 

ⓒ시사IN 윤무영종부세 완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정부는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세수 감소는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올해만 보면, 기획재정부 기준으로 세수가 약 11조6000억원 감소한다. 중앙정부에 의존적인 지방정부, 그중에서도 비수도권의 재정 구조는 감세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특히 타격이 심한 분야는 사회복지 예산. 절대 금액은 늘었지만 전년도에 비해 증가율은 현저히 떨어졌다. 가령 광주는 22.6%에서 12.6%로, 부산은 18.1%에서 8.2%로 증가율이 줄어들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사회복지 예산의 축소 규모가 더 컸다. 경상남도는 23.2%에서 6.2%로 전년도에 비해 증가율이 대폭 줄었다. 대표적인 ‘부자 감세’ 항목인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올해 감면액은 각각 3조6500억원, 1조4560억원. 종부세는 전액이, 그 외의 국세는 약 20%가 지방교부세로 배분되므로 계산해보면 2조1582억원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덜 내려간 셈이다. 정부가 종부세 완화에 따른 지자체의 반발을 염려해 올해에 한해 편성한 예비비 1.9조원으로는 충당이 안 되는 액수다. 형편이 이러하니 지방정부에게 이전처럼 사회복지 예산의 증가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악화는 감세로 인한 재정 공백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당장 대기업의 영업 실적이 나빠지면서 올해 법인세 수입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종부세는 물론이고 소득세, 부가가치세 따위 세수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률을 감안해 세수를 추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올해 예산안은 성장률을 4%로 가정한 것. 하지만 경기는 갈수록 나빠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4%로 전망했고, 더 비관적인 수치도 제시된다. IMF 전망치를 기준으로 하면 세수는 당초 예상보다 14조원 줄어든다(성장률 1% 감소에 따라 세수 1.75조원이 감소한다고 가정). 통상 줄어든 세수는 국채 발행으로 메우는데, 이미 기존 예산안에도 19조7000억원에 이르는 적자 국채가 포함되어 있어 국채 발행 규모는 34조원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0조원 추경을 편성한다면, 적자 국채의 규모는 60조원대에 이르러 재정건전성에 심한 타격을 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국가 채무 비중은 현재 3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82.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여유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단기간의 가파른 채무 증가는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국채 돌려막기’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4월 임시국회, 추경을 둘러싸고 여야는 또 한번 크게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재정 운영에 대한 정부의 반성, 기업 경영진의 책임 규명 등이 전제되어야 사회적 설득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은 감세 규모를 축소 혹은 유예한 뒤 재정의 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국회 예결위 소속의 이용섭 의원은 “5년 동안 35조원 감세한다는데, 20조원이면 2000만원 연봉 일자리 10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다. 현재 85만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는 규모다. 일자리의 질도 고려해 SOC(사회간접자본) 분야의 단순노무직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늘려 정책 신뢰성을 높여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역방향이다. 윤증현 경제팀은 양도세를 대폭 완화하고 종부세를 아예 폐지하는 부동산 감세를 시사했고, 국토해양부는 4대강 정비사업을 확대해 추가 예산을 편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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